> 실무자 에세이
숭의목공예마을 나무장인들의 삶을 기록하다
「나뭇결 따라 살아온 삶」 출판기념회 들여다보기
양지원 (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 팀장)
「나뭇결 따라 살아온 삶」을 발간하며
「나뭇결 따라 살아온 삶」은 숭의목공예마을의 나무장인 열아홉 명의 삶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내기 위해 시작한 목공 일이 평생의 업이 된 목공장인들의 생애를 담은 구술사이다. 이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배다리, 숭의운동장, 도원역 인근 등 목공예 상가들이 밀집해있던 지역의 변화를 알 수 있고, 그 안에 사용하는 나무의 종류, 접착제와 사용하는 기계들이 달라지는 과정을 들여다보며 인천 나무산업의 흥망성쇠의 이면까지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지난 2022년 8개월 동안 미추홀시민기록단이 직접 나무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을 정리하며 숭의목공예마을을 수시로 방문했다. 우리가 한창 기록하던 시기에도 2분의 장인이 은퇴하시고, 1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옆에서 바라봐야 했기에, 이 기록과정의 시급성이 우리의 어깨 위에 자리하는 시간이었다. 기록을 시작한 지 일 년을 꼬박 채워 지난 2023년 3월 20일 학산소극장에서의 출판기념회를 통해, 숭의목공예마을에서 평생 목공 일에 몸담아 온 장인들의 삶을 지역에 전했다.
출판기념회에 전시된 「나뭇결따라 살아온 삶」 도서
ⓒ미추홀구청
나무장인들이 한자리에 모이기까지
출판기념회를 준비하며 이 자리에는 ‘주인공’들을 꼭 모셔야 한다는 고민이 뒤따랐다. 혹여나 생업에 폐가 되지 않도록, 모든 방향은 나무장인들을 위한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집중되었다. 주인공분들이 주인공을 위한 자리를 피하면 안 되기에, 기록단과 문화원 실무진은 함께 출판기념회 초청 소식을 전하고 잊을 만하면 또 전하는 나름의 작전을 펼치기도 했다. 나무장인분들이 출판기념회를 내 자리가 아닌 것처럼 느끼실까 걱정되어 행사 당일 아침에 한 집, 한 집 발로 뛰며 꼭 같이 가야 한다며 독려해주신 마을매개자의 노력도 있었다.
목공장인분을 찾아뵙고 기록의 취지를 설명하고, 함께 해주십사 안내해 드리던 시기를 생각하면, 숭의목공예마을 나무장인분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던 어려운 일이었다. 비단 기록 과정 안에서의 일만 아니라, 동종업이 밀집된 개인 사업장으로 이루어진 숭의목공예마을에서 사장님들이 다 같이 모이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라 했다.
출판기념회 시간이 다가오고, 장인들이 정갈한 모습을 하시고 짝을 지어 도착하기 시작했다. 목공예 마을 밖에서 만나는 장인들은 톱밥이 묻은 작업복을 입지 않고, 공구를 손에 쥐지 않은 새로운 모습이다.
나무장인들의 삶 이야기를 듣다
무대를 가득 채워 앉은 숭의목공예마을의 나무장인들
ⓒ미추홀학산문화원
출판기념회가 시작되고 관계자들의 인사와 도서가 만들어진 과정을 소개하는 시간을 지나, 드디어 기록의 주인공인 숭의동 목공장인을 만나보는 시간이 되었다.
목공장인들이 무대 위로 올라, 한 자리에 둘러앉았다. 19명의 삶의 시간을 올린 듯 무대가 가득 채워졌다.
나무장인들은 한 사람씩 책이 나온 소감과 본인의 삶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를 하실까?’라는 궁금증도 잠시 몇 시간의 인터뷰에 들려주셨던 장인들의 치열한 삶이 눈빛, 표정, 한마디 말로 축약되어 현장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전공예사 강오원 장인(좌) 모던목공방 조한일(우) 장인이 소감을 말하고 있다.
ⓒ미추홀구청
“숭의동에서 목공업을 91년도부터 지금까지 한자리에서 (하고) 있는데, 근데 제가 이제 거의 은퇴 시기입니다. 저의 인생에 있어서 살아온 것을 책으로 해서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고 뿌듯합니다.”
– 이복섭 (1964년생, 보령목공)
“살다 보니 이제 나이가 사실 조금 많아서 슬픈 생각밖에 안 듭니다. 앞으로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는 동안에 공예에 손을 놓지 않고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이제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내가 가르친다고 해서 배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참 안타까운데…. (말을 잇지 못하며)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 숭의동에 젊은 인재들이 와서 배워서 대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 강오원 (1963년생, 고전공예사)
“다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나무가 좋아서 여태까지 나무를 만지고 살고 있는데요. 앞으로 제가 손에 힘이 있는 한 나무를 만지고 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인규(1955년생, 미추홀공예사)
“목선반만 50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사람입니다. 깎아 먹는 직업이라, 이게 돈을 못 번다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우리 옛날 노인분들이. 지금 문제는 우리 후배들 양성이 안 돼요. 우리 시대가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책을 편찬해주셔서, 우리에게 유산이 되어서 대대로 이어져 좋은 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원철성 (1950년생, 대우공예사)
우리의 삶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과 내가 이렇게 책에 실릴 줄 몰랐다는 놀라움, 그리고 목공예, 나무에 담긴 깊은 애정까지 밝힌다. 담긴 애정만큼 후계가 없는 목공예 거리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밝혔다. 젊은 장인들은 미래에 대한 도전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출판기념회 축하공연을 직접 해보고 싶었다며 앞으로 나와, 관객석을 향해 노래를 선보인 장인까지 다양한 장인들의 모습을 만났다.
한 관객은 “이렇게 진정성 있게 다가온 출판기념회는 처음이었다. 어렵게 살아오신 분들이 장인으로서 대우받고,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서 우뚝 서는 느낌이라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소감을 남겼다. 이 외에도 많은 분이 진정성이 담긴 자리라 좋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장인들의 치열했던 삶에 담긴 삶의 무게감도 그러하거니와, 우리 주변의 삶들과 맞닿아있기에 누구나 장인들에 대한 존경과 공감하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한다.
시민기록자가 장인들에게
드디어 나무장인들의 삶을 기록한 도서를 장인들에게 전달하는 시간이다. 전달은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미추홀시민기록단’이 맡았다. 시민기록단이 장인들께 직접 책을 전달하는 과정에 내 이야기를 전하고 담아낸 각각의 시간 속에 쌓인 신뢰를 마주하는 눈빛 속에 마주할 수 있었다.
책을 전한 기록단이 장인들의 뒤로 가서 감싸며 섰다. 오늘의 주인공인 장인들께 응원을 보냈다.
한 시민기록단은 이런 후기를 남겼다. “우리가 기록한 장인들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우리가 기록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는 역할로 그들의 뒤에 서고, 그리고 이 과정을 기획한 문화원이 함께 있는 것이 우리가 해 온 과정이라는 것이 무대에서 느껴져서 벅차더라고요.”
구술자, 시민기록단, 관계자가 출판을 축하하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미추홀학산문화원
출판기념회가 끝나고
출판기념회가 한 주가 지난 29일 숭의목공예마을을 다시 찾았다. 우리를 맞아주시는 장인들의 미소가 더욱 밝았다. 기록하면서는 바쁜데 그만 오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이제 정말 우리를 맞아주심을 느낀다. 장인분들께 책을 다시 펼쳐 보이며 한 분, 한 분 사인을 받고, 출판기념회 날의 소회를 나눴다. 행사 날에도 몇몇 분께 사인을 해드렸었다며 어깨를 으쓱하시는 사장님의 말씀에 작은 행복이 느껴졌다.
도서 앞머리에 받은 나무장인들의 싸인
ⓒ미추홀학산문화원
아카이브 과정이 마무리된 지금부터는 미추홀시민기록단도 목공예마을과 각자 나름의 연을 계속 이어갈 생각이다. 한 기록가는 장인분들께 맞춤 물건을 주문하는 소비자가 되어 입소문을 내시기도 하고, 한 기록가는 이들의 삶을 더 꾸준히 사진으로 기록해보고 전시를 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한다. 미추홀학산문화원도 숭의목공예센터와의 협약 속에 지속적인 시민문화예술 활동을 도모하며, 장인들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며 기록작업을 이어 나갈 것이다.
「나뭇결 따라 살아온 삶」 출판기념회가 일시적인 행사가 아니라, 사람의 삶을 잇고 지속할 수 있는 자리로 기억되길 기원한다. 마치 꾸준히 지속해야 그 가치가 쌓이고 드러나는 기록의 속성처럼 말이다.
「나뭇결따라 살아온 삶」 출판기념회 현장사진
ⓒ미추홀학산문화원
양지원 (Yang Ji Won)
미추홀학산문화원 지역문화 팀장
미추홀구의 지역과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다시 지역에 전하는 콘텐츠로 엮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