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그리고 문화예술

산업과 예술, 타인을 위해 물자나 용역을 만드는 일과 자기 자신을 위해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 전자는 상품이라고, 후자는 작품이라고 지칭된다. 한때는 이 둘의 간극이 아주 멀다고 인식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그 차이를 그다지 느끼지 못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간극을 메워왔던 힘을 꼽는다면, 그것은 아무래도 문화가 아닐까 싶다. 상품에서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도, 작품에 삶의 효용성을 부여하는 것도, 결국에는 문화라고 지칭될 수 있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문화를 고민한다는 것은 매우 복합적이다. 산업과 예술 그 어느 것 하나도 도외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예술을 지원하는 일이 결국 그 지역의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키는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이미 보편적인 가치가 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현재 전국의 지자체에서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되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일지도 모르겠다. 문화예술이 있는 곳에 사람이, 그리고 사람이 있는 곳에 재화가, 더 나아가 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재열 남동문화재단 신임 대표이사는 바로 이러한 산업과 예술의 간극을 가장 능동적으로 좁혀왔던 주인공 가운데 하나였다. 본래 건축학과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던 그는 산업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이력을 시작했다. 1971년 가구회사 보르네오의 말단 디자이너로 입사하여 디자인 총괄상무로 퇴임할 때까지, 가구산업 현장에서 디자이너이자 경영진으로서 가장 역동적인 역량을 발휘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창조적인 동력을 감추지 않았다. 그가 40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인천미술대전 서양화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일은 인천에서는 꽤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뿐이랴. 인천예총의 회장으로 8년을 연임하면서 명실상부한 인천 예술계를 이끄는 리더 그룹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이처럼 김재열 대표이사는 산업의 현장을 누비는 디자이너이자 경영자로서 또한 문화예술계에 깊이 뿌리내린 작가로서, 두 가지 이력 모두에서 발군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러한 그가 새로 출범한 남동문화재단의 대표이사를 맡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산업단지가 자리하고 있는 남동이야말로 산업과 문화예술의 실질적인 간극이 더 뚜렷하게 작동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재열 대표이사와의 만남을 통해 문화산업도시로 도약하는 남동의 새로운 비전을 듣고자 했다.

지역의 문화경영자로서 초심을 다지다

인천에 뿌리내린 지 50여 년, 그는 자신의 정체성은 인천이라는 도시의 성장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그는 인천 남동구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가 처음 인천에 자리 잡았던 터전이 바로 남동이었고, 그곳이야말로 그의 가족이 3대를 가로지르며 인천에 뿌리내리도록 한 원동력이 된 터전이니 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남동은 본래 산업기반도시였다. 이제는 명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익숙한 남동의 명칭은 ‘남동공단’이다. 남동공단에 자리 잡은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김 대표이사는 남동공단이 남동산단으로 변화해왔던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남동공단(남동산단)의 일원이자 지역의 예술가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으로서 그 과정을 함께 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는 남동문화재단의 대표이사로서 산업도시 남동이 문화주권을 획득하며 문화산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무엇보다 산업과 예술의 두 영역에서 그가 일구어낸 디자인과 예술적 감각을 바탕으로 남동구의 문화경영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남동은 일종의 운명 같은 도시라고 말한다.

김재열 대표이사의 이 같은 열정은 남동문화재단 설립에서 현재까지의 과정만 보아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남동문화재단은 2023년 1월 1일 공식 출범한 후, 2개월 동안 정말 숨 가쁜 일정으로 달려왔다. 전 직원 워크숍, 출범식, 유관 기관 간담회와 업무협약식 개최까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최소한 반년에 가까운 기간에 걸쳐 있어야 할 일정들을 대표이사와 27명의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이끌어온 것이다. 남동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상승시키겠다는 모두의 합일된 의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사실 기초문화재단으로서 남동문화재단은 인천 안에서도 후발주자이다. 수년 전부터 기초문화재단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추세를 보자면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만큼 남동구와 남동문화재단의 의지와 각오는 오히려 남다르다. 타 지역보다 늦어진 대신, 타 지역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재열 대표이사의 남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남동문화재단이 제대로 기틀을 잡는 데 튼튼한 발판이 되리라 기대된다.

“남동산단이야말로 남동이 가진 문화적인 저력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동문화재단의 초대 대표이사로서 그의 각오를 구체적으로 들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인천지역본부와의 정책간담회에서 “남동산단이 산업문화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 남동산단에는 7,400개가 넘는 기업이 있고, 9만 명에 가까운 근로자들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여전히 산업이 살아 있다는 것은 남동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산단은 그만큼 노후화되었고, 생활 인프라 역시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9만 명에 가까운 근로자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도시로서는 안타까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청년 근로자들이 여가를 보낼 문화적 인프라가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고 있다.

김재열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MZ세대의 가치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직업은 일차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은 자신이 살고 싶은 도시를 먼저 선정하고, 그 주변에서 일자리를 찾게 된다. 당연히 도시의 여가문화 인프라가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조성된 지 30년을 훌쩍 넘긴 남동산단이 산업문화공간으로 대전환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전환의 중심에 문화가 있어야 함은 분명하다.

김재열 대표이사는 자신의 책임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게에 짓눌려 있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잘 녹여낼 수 있다는 기대가 주는 행복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당장 올해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인천지역본부와의 협력을 통해 공공미술을 활용한 산단 내 개별기업 경관개선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산단 내 복합문화센터 건립이나 산업역사문화박물관을 추진하기 위한 아카이빙 구축이 그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협업 범위를 넓혀갈 예정이라고 한다.

일상에서 누리는 문화를 더 가깝게

그간 인천의 기초문화재단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법정 문화도시 사업 추진에 대한 입장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산업적 인프라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강점이 있는 만큼 인천의 타 지자체와는 다른 어떤 저력을 보여줄지 자못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본이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기대는 좀 더 증가될 수 있을 것 같다.

김재열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문화도시 사업 추진이 가지는 본질에 더 집중하겠다고 강조하였다. 남동구의 모든 시민들이라면 누구나 일상 속에서 문화예술을 더 가깝게 누릴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문화도시의 초석을 쌓는 일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함에 있어서 시민들의 역량을 모으는 방식으로 문화도시 2.0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남동구가 가진 역량을 발굴하고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남동구는 농촌과 어촌을 아우르는 다양성을 가진 도시이다. 인천시청이 자리한 만큼 인천시 행정의 중심도시이자 산단과 대공원을 배후에 두고 있는 매력적인 문화 여건을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여건들이 한 도시를 아우르는 매력으로 어우러지지 못한 채 공동화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