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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人生)은 권리인가, 의무인가?

김종섭의 모노드라마 <햄릿>

이재상 (극작가, 연출가)

살짝 봄 내음이 나는 토요일, 작년 겨울 문을 연 P&F 시어터를 찾았다. 차이나타운 입구의 옆 골목에 위치한 극장의 위치는 슬쩍 애매하다. 오랜만의 따뜻한 날씨를 즐기러 온 사람들은 차이나타운으로 줄지어 올라가지만, 옛날 유명했던 밴댕이골목 어귀는 아직은 한산하다. 글쎄… 인천역이 가까이 있고 차이나타운 근처이니 위치는 그리 나쁜 편이 아니지만, 입구는 왠지 살짝 외진 골목의 느낌이 난다. 이제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극장의 생존 여부를 가르는 1차 시기인 3년 정도를 잘 버티면 새로운 명소로 떠오를 수도 있겠지. 민간 소극장도 몇 개 없고, 공공극장의 대관이 갈수록 어려운 인천의 상황을 생각하면 P&F의 생존은 P&F만의 문제는 아니다. 극장의 성공을 기원하며 극장의 계단을 오른다.

김종섭 모노드라마 포스터 이미지
김종섭 모노드라마 포스터 이미지

김종섭 모노드라마 <햄릿> 포스터 이미지
(사진 제공: 극단 야호기획)

오늘의 작품은 김종섭의 모노드라마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작, 김병훈 각색/연출, 극단 야호기획, 예술감독 정소영)이다. 배우 김종섭은 80년대 실험극장 입단 후 배우, 연출, 대표로서 40년 이상을 연극, 드라마, 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해온 베테랑이다. 그가 연극 인생 40년을 결산하는 의미로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발표한 모노드라마 <햄릿>은 작년 11월 한 달간의 대학로 공연을 마치고 작년 연말부터 매 주말 P&F 시어터에서 공연한지 두 달째 접어들고 있다. 4월 문학씨어터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하니, 둥지를 튼 인천에 점점 더 애정이 생기는 모양이다.

객석에 앉으면 무대는 마치 그림처럼 느껴진다. 작은 성벽, 주위의 상자 안에 갇힌 촛불, 꽃 무덤, 꽃의 표현적 정물화. 그리고 커튼과 낮은 조명은 한데 어우러져 커다란 한 폭의 아늑한 그림을 형성한다. 아늑하다고? 햄릿인데? 이런 생각을 할 즈음 광대가 어슬렁대며 걸어 나온다.

공연 모습
공연 모습

<햄릿>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극단 야호기획)

광대의 인사와 준비에 이어 우리가 익히 아는 햄릿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간은 한 시간가량. 햄릿의 그 많은 이야기를 담기에는 짧은 듯 느껴지나 할 이야기는 다 들어가 있다. 무대에는 햄릿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햄릿, 광대, 오필리어, 레어티즈, 유령, 왕, 폴로니어스, 왕비… 주요 인물은 모두 몇 번씩 무대에 등장해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모노드라마임에도 한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드디어 막이 내린다. 그리고 햄릿의 마지막 대사. ‘죽느냐, 사느냐… 모두 귀찮다.’

공연 모습
공연 모습

<햄릿>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극단 야호기획)

각색은 조금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발표 후 400년간이나 지속적으로 공연된 <햄릿>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햄릿>의 전 대본을 완독한 사람은 의외로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작년 국립극장의 <햄릿> 공연은 6년 만이었다. 순수연극의 관객이 줄어가는 시대인 탓인지 갈수록 <햄릿>의 공연은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원체 대작인 탓이다. 나오는 배우도 많고, 시간도 길고, 대극장 아니면 소화하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무대에 올리려는 극단이 점점 줄고 있다. 그러니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지만 세부적인 것까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또 아예 줄거리 외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번의 모노드라마 <햄릿>은 꽤나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큰 줄거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극의 세부를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게다가 모노드라마인지라 혼자서 여러 인물을 연기하다 보니 몇몇 주요배역 외에는 누구를 연기하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러니 <햄릿>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만은 않다. 반면에 <햄릿>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느껴질 공연이다.

공연 모습
공연 모습

<햄릿>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극단 야호기획)

특이한 점은 모든 인물들의 표현에 그리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소품이나 약간의 변화를 통해 그 인물이 누구인지는 알려주기는 하지만 모든 인물은 대체로 권태롭게 연기된다. 모든 인물들은 모두 다른 인생을 살고 있고 입장도 다르지만 어떤 고뇌 속에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고뇌 속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같은 입장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물은 같은 결정을 내린다. 그 결정은 ‘죽음’이다.

결국 모든 인물은 다른 인물이면서 모두 햄릿이다. 그래서인지 배우는 모두 다른 인물임을 알려는 주지만 아주 다르게 연기하지는 않는다. 또 연출의 글을 읽어보면 연출은 이른바 ‘셰익스피어의 다인물설’을 슬쩍 피력한다. 영국의 국립초상화 박물관의 셰익스피어 얼굴 백 개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서두에 ‘너도, 나도, 우리도, 너희도 모두 엄청난 셰익스피어다’라고 쓰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너도, 나도, 우리도, 너희도 모두 <햄릿>인 셈이다.

우리는 모두 고뇌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모두 어떤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피곤한 삶에서 느끼는 우리는 햄릿의 마지막 대사처럼 조용히 절규한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모두 귀찮을 뿐’이라고…

공연 모습
공연 모습

<햄릿>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극단 야호기획)

극장을 나서며 생각한다. 고뇌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은 생각에 따라 권리가 될 수도 의무가 될 수도 있다고… 이번 작품의 햄릿은 처음부터 의무감에서 복수를 선택했고, 나중엔 자신의 고뇌와 광기의 책임을 아버지 유령에게로 돌렸다.
나 역시 지금의 삶을 의무처럼 살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면서 권태롭게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해가 저물어서인지 봄 내음이 나던 바람이 한기를 몰아오고 있었다.

이재상

이재상 (李哉尙, Rhee Jaesang)
극작가, 연출가, 극단MIR레퍼토리대표, Theatre ATMAN(일) 예술감독
극작, 연출, 액팅코치를 병행하며 인천과 도쿄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끔 노래도 합니다. 다양한 무대작업을 통해 세계의 모습을 파악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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