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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클럽 ‘버텀라인’ 40주년의 해, 그 첫 달을 여는 2개의 공연
문성환 Quartet & Trio Mega Mass
김성환 (음악 저널리스트)
인천 중구 신포동에 위치한 클럽 버텀라인은 1983년 오픈한 인천 최초의 재즈 클럽이다. 이 건물은 100여 년 전 패션 잡화를 팔던 ‘후루다 양품점’이 있었던 자리로, 1층 입구에서 살짝 가파른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와 클럽의 문을 열면 소위 ‘적산가옥’(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서양의 건축양식과 구조를 일본 양식과 결합한 건축물)의 역사를 증명하는 목재 천장 구조의 고풍스러움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재 버텀라인을 운영하는 허정선 대표는 그녀가 20살이던 1985년, 손님으로서 이곳에 처음 방문했고, 이곳의 매력에 빠져 단골이 된 허 대표는 결국 1995년 공간을 직접 인수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재즈 클럽이라는 버텀라인의 정체성을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다. 1999년 한국 1세대 재즈 뮤지션 신관웅과 올 스타 밴드의 공연을 처음 연 것을 시작으로, 인천 지역의 연주자들, 그리고 전국의 여러 재즈 뮤지션들을 차근차근 섭외하면서 꾸준히 공연을 진행해왔다. 초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던 공연이 이제는 평균적으로 1주에 1회 이상 열리는 수준으로 확대되었다. 한 번 버텀라인 무대를 섰던 뮤지션들 역시 이 공간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제는 본인들이 새 음반을 내거나 전국의 재즈 클럽 투어를 계획하게 되면 먼저 연락을 할 만큼 재즈 뮤지션들에게 버텀라인의 인기는 서울의 재즈 클럽이 아님에도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허 대표는 버텀라인의 공연 일정에 대해 방문객들 가운데 연락에 동의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매월 진행되는 공연 일정을 문자로 발송해 주고 있다. 필자도 그중 한 명으로, 이번 달에도 안내 메시지를 받게 되었고, 두 편의 공연에 갈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닿아 1월 14일과 19일에 각각 버텀라인을 찾았다. 두 날 모두 평일과 주말을 가릴 것 없이 클럽 내의 테이블은 모두 매진상태였을 만큼 이제 이곳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인천의 재즈 팬들과 대중음악 팬들이 얼마나 신뢰를 보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1월 14일에 진행된 재즈 드러머 문성환이 이끄는 쿼텟(Quartet: 4인조 형태의 재즈 밴드)은 이다미(보컬), 배근령(피아노), 김성수(베이스), 그리고 문성환(드럼)의 구성으로 진행되었다. 그는 아직 정식으로 음반이나 음원을 발표한 경력이 없는 뮤지션이지만, 자신과 함께하는 음악 동료들의 라인업을 바탕으로 때로는 트리오로, 쿼텟으로, 퀸텟(Quintet: 5인조 형태의 재즈 밴드)으로 꾸준히 전국의 재즈 클럽들을 다니며 공연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와 밴드가 들려주는 레퍼토리는 대체로 ‘재즈 스탠다드’(Jazz Standard: 주로 고전 뮤지컬 넘버들이나 50년대 이전의 재즈 고전들이 해당된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날 공연에서는 기타가 빠져있는 라인업이었기에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베이스와 드럼이 주도하는 리듬이 전하는 그루브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연은 먼저 보컬 없이 연주곡 2곡으로 진행되었다. 1926년 레이 헨더슨(Ray Henderson)의 작품으로 1955년 페기 리(Peggy Lee)가 뮤지컬에서 소화한 곡이자 1982년에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이 연주해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Bye Bye Blackbird’와 1937년 리차드 로저스(Richard Rodgers)의 작품으로 우리에겐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OST를 통해서 친숙해진 ‘Have You Met Miss Jones?’가 연주되었다. 이러한 재즈 스탠다드의 기본적 특성 중 하나는 곡 자체의 주 테마가 길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연주자들이 나머지 공간을 변주와 즉흥연주로 채우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성환 쿼텟 역시 이 점을 잘 활용하면서 자연스러운 연주의 합과 각 파트의 세련된 연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후에는 보컬리스트 이다미가 합류했는데, 그녀는 2021년 첫 솔로 앨범 [Seasons]를 통해 재즈 씬에서 주목받은 뮤지션이다. 살짝 높은 톤을 가진 그녀의 목소리는 다른 멤버들의 연주와 맞물려 노래의 분위기를 보다 밝고 기분 좋게 이끌어주었다. 레퍼토리 역시 콜 포터(Cole Porter)의 1932년 고전인 ‘Night and Day’,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작품으로 영화 ‘모던 타임즈’의 OST로 처음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영화 ‘조커’의 OST로도 활용된 ‘Smile’, 뮤지컬과 영화로 알려진 ‘사운드 오브 뮤직’의 OST ‘My Favorite Things’ 등 재즈에 친숙하지 않은 음악 팬들도 잘 알만한 곡들로 꾸며 대중의 빠른 호응을 끌어냈다. 전체적으로 재즈 스탠다드 공연이 추구하는 스윙감과 온화한 분위기를 잘 살린, 대중에게도 편하게 다가갔던 무대였다고 생각한다.
문성환 Quartet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김성환)
한편, 인천의 타 재즈 클럽과 다른 버텀라인만의 또 하나의 매력은 연중 여러 번 개최되는 해외 재즈 아티스트의 내한 무대다. 이번 1월 19일에는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재즈 트리오 메가 매스(Mega Mass)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색소포니스트 파비안 윌만(Fabian Willmann, 색소폰), 테오 두볼레(Theo Duboule, 피아노), 쿠엔틴 콜렛(Cholet, 드럼)으로 구성된 이 트리오는 2020년부터 베를린의 재즈 씬에서 함께 연주하며 결성되었으며, 2022년 9월부터 독일 및 유럽 투어를 시작으로 전 세계 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보편적 재즈 밴드 구성과는 달리 베이스 파트가 없는 트리오라는 특이함을 갖고 있는데, 아방가르드와 정통 재즈, 즉흥 음악과 작곡 음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장르 또는 스타일에 한정되지 않은 사운드를 들려주기로 유명하다.
2021년 밴드캠프를 통해 첫 디지털 앨범 [Goniochromism]을 공개한 바 있는 이들은 이날 공연에서 총 9곡을 연주했는데, 이날은 앨범의 수록곡 ‘Object Celeste’를 제외하고는 아직 공식 녹음된 적 없는 그들의 신곡들을 위주로 연주를 펼쳤다. ‘Romanticism’, ‘Mechanism’, ‘Sunday’, ‘Out of Nowhere’ 등 이날의 레퍼토리들을 통해 그들은 재즈 드럼 특유의 변박의 매력, 자유분방하게 휘몰아치는 색소폰 솔로, 그리고 이와 인터플레이를 펼치는 아방가르드한 기타 솔로잉이 어우러지는 오묘한 조화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낯설 수 있는 한국의 관객들 앞에서도 자신들의 모든 기량을 확실하게 펼치는 이들의 자신감이 멋있었고, 쉽지 않은 연주지만 소리로 관객을 몰입시킬 수 있는 매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Trio Mega Mass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김성환)
대중에게 재즈는 여전히 어려운 음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일단 생활의 여유로서 작은 재즈 클럽에서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접근을 시작한다면 보다 친숙하게 이 장르에 접근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점에서 40년이란 긴 시간을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인천의 재즈 클럽 버텀라인의 1월 공연들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준 공연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성환 (金成煥, Kim Sung Hwan)
2000년 월간 음악매거진 GMV에 원고 기고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각종 음악 관련 매체 및 음반 해설지 작성 등의 활동을 해온 음악 저널리스트.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대중음악 매거진 [Paranoid] 부속 잡지 [Locomotion] 총괄에디터, 웹진 음악취향Y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