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부평, 문화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현장

이찬영 신임 부평구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인터뷰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론티어학부대학 교수)

이찬영 대표이사

2010~2014 전문예술단체 풍물패 더늠 대표
2011~2022 문화예술사회적기업 인천자바르떼 대표
2011~2016 남동구립풍물단 예술감독
2015~2019 부평협동사회경제협의회 상임대표
2018~2020 (재)인천문화재단 비상임이사
2019~2022 (사)인천민예총 부이사장
2021~2022 부평구축제위원회 기획단장
2022 인천시사회적기업협의회 대표, (사)인천사회적경제네트워크 상임대표

역동의 도시 부평

전국 최대의 지하상가가 있는 곳. MZ 세대가 기억하는 부평은 인천을 대표하는 상업지역이다. 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부평은 신촌·홍대입구와 함께 스트리트 패션의 중심지이자 청년문화의 유행을 선도하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오랜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부평의 뿌리에는 군대와 공단이 놓여 있다. 지금은 너무나 유명해진 이야기지만, 일제강점기 부평에는 일본육군의 조병창이 있었다. 대동아전쟁을 앞둔 일본의 병참기지로서 군수산업시설이 건설된 것이다. 일제의 수탈을 위해 이루어진 기반이었지만, 그것은 해방 이후 부평이 공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반환된 미군의 캠프마켓과 청천동과 갈산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업지구가 그것이다.

오늘날 부평을 역동의 도시로 만든 것은 이러한 역사에 잠식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전환하고자 했던 부평 사람들의 노력이다. 군수산업으로부터 촉발된 공업도시, 그리고 공단을 배후로 해서 발전한 지하상가와 유흥시설들까지. 부평의 근대는 외부의 수탈과 억압으로 촉진되었지만, 부평 사람들은 그것을 부평이라는 도시가 가진 개방성의 자양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일본 육군 조병창 시절의 모습

일본 육군 조병창 시절의 모습

미군 병참기지 에스컴 시티 당시의 모습

미군 병참기지 에스컴 시티 당시의 모습

(사진 제공: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바로가기)

캠프마켓 반환부지 전경

캠프마켓 반환부지 전경
(사진 출처: 인천광역시청 홈페이지 바로가기)

풍물에서 캠프마켓까지, 음악도시 부평

이찬영 신임 부평구문화재단 대표이사와 부평의 관계 역시 이 개방성에 토대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풍물패 더늠’의 대표이자 사회적 기업 ‘인천 자바르떼’ 대표를 역임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평구축제위원회 기획단장과 거리예술감독을 두루 거친, 부평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기획자이자 활동가이기도 하다. 민간에서 꾸준히 부평과 함께했으며, 때로는 쓴소리 던지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그이기 때문에 이찬영 신임 대표이사에 대한 기대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와 나눈 첫 번째 이야기는 다름 아닌 풍물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처음 풍물을 시작했던 90년대 당시, 풍물은 대학가에서 가장 ‘핫’한 문화였다고 한다. 전통놀이에서 호출되었지만, 기존의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아방가르드적으로 해석된 당대의 풍물은, 그 자체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그러나 이찬영 대표이사는 풍물이 가진 보다 큰 가능성은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는 성격이었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풍물이 일종의 문화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보다 명징해진다. 90년대의 풍물은 대중화를 이루었는데, 거기엔 학교 교육의 영향도 컸다고 한다. 공장노동자들은 노동운동의 일환으로 그 이전부터 풍물을 접했지만, 이들이 풍물을 접한 것은 다름 아닌 학교였기 때문이다. 학교 교과과정 안에서 아이들이 풍물을 접하게 되었고, 그 연장선에서 주부들도 풍물패를 조직하게 되었다.

풍물패 더늠 30주년 기념 공연 모습

풍물패 더늠 30주년 기념 공연 모습
(사진 제공: 풍물패 더늠)

어느 순간 풍물은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놀 수 있는 놀이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자체가 축제가 되고, 그것을 위한 조직이 만들어지고, 문화원으로, 다시 그로부터 문화재단이 발전해가는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이렇게 시작된 부평풍물축제는 문화다양성이 높았던 부평이라는 도시와 꼭 맞아떨어진 기획이 되었다. 누구나 와서 한바탕 어울려 놀 수 있는 마당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찬영 대표이사는 부평의 음악적 자산은 캠프마켓에 한정되어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캠프마켓과 균형을 이루는 또 다른 축으로 바로 이 풍물이 있기 때문이다. 캠프마켓이 외부로부터 들어온 색다른 문화라면, 풍물은 공동체 내부에서 촉발된 신명이라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음악적 자산은 그대로 부평이 가진 다양성의 한 궤를 드러내고 있다.

2022년 부평풍물대축제 현장 모습
2022년 부평풍물대축제 현장 모습

2022년 부평풍물대축제 현장 모습
(사진 출처: 부평풍물대축제 홈페이지 바로가기)

“예술가들의 놀이문화가 일반 시민과 어떻게 접점을 만들 수 있을지를 더 고민해야”

부평은 인천 내에서도 지역사회의 공동체가 잘 형성된 곳으로 유명하다. 부평구문화재단은 그러한 지역사회의 문화적 열망과 노력이 집결된 기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부평구문화재단은 인천 내에서 가장 먼저 생긴 기초문화재단이다. 2004년 12월에 설립된 인천문화재단에 이어, 2006년에 설립되었고, 문화예술특화지역 사업을 거쳐 ‘음악도시부평’을 컨셉으로 한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되기까지 가장 선구적인 행보로 지역사회의 문화적 자산을 일구어왔다.

부평아트센터 전경

부평아트센터 전경
(사진 출처: 네이버 지도, 업체소개)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
(사진 출처: 부평아트센터 홈페이지)

이러한 부평의 문화를 이끌어갈 수장으로서 이찬영 대표이사가 바라보는 부평의 힘은 무엇일까? 그가 가장 먼저 꼽은 부평의 자산은 바로 ‘다양성’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다양성이 놀랍게도 부평이라는 도시를 이끌어온 지역공동체로부터 촉발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 기원은 다시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90년대 당시 부평 공동체의 이슈 파이팅은 두 가지였다. 지금 캠프마켓이라고 불리는 미군기지의 반환, 그리고 IMF 이후 인천의 지역경제를 떠받치던 대우가 무너진 사건이 그것이다. 두 이슈 모두 지역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부평의 경제적 기반과 사회적 기반을 아우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 도시의 문화적 토대이자 지방자치와 연관된 정치적인 기반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함께 해결해야만 하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고, 지역 곳곳에서 형성된 공동체들은 의지적이었다. 문화는 이러한 공동체 간의 네트워킹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아교였다. 그들은 외부의 자원과 지원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내부의 조직은 단단했지만 닫혀 있지 않았다. 외부로의 소통과 인적·물적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상권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부평 문화의 거리를 조성하고, 부평구 곳곳에 구립도서관을 설립했다. 지역의 문화적 기반이 될 공공 소극장 운동을 진행하는 한편, 선구적인 안목으로 BTL을 진행하여 부평아트센터를 조성하기도 했다. 강력하면서도 유연한 공동체가 아니었다면 모두 불가능한 일이었다.

No 시설명 설립연도
1 부평기적의도서관 2006년
2 부개도서관 2012년
3 부개어린이도서관 2011년
4 삼산도서관 2012년
5 청천도서관 2013년
6 갈산도서관 2011년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운영 중인 부평구립 도서관 현황
(자료 출처: 부평구문화재단 홈페이지)

그러나 아직 만족하기엔 이르다. 이찬영 대표이사는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부평이 문화도시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할 때임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축적해온 문화적 토대 위에서 이제 제대로 ‘놀 수 있는 마당’을 조성하는 것이 부평구문화재단의 다음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마당을 여는 중심에는 다름 아닌 <부평별곳>1)이 있다. 부평의 문화적 거점인 <부평별곳>의 장소들에서, 예술가들의 놀이문화가 일반 시민과 더 큰 접점을 만들어나가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부평구문화재단의 소임임을 강조한다.
1) 부평별곳 : 부평에 별의 별 개성을 지닌 곳, 부평에 별 같이 빛나는 곳이라는 뜻.
부평별곳은 전문예술인, 예술공간을 넘어 부평 내 일상의 공간을 매개로 주민과 문화로 소통하고 향유할 수 있도록 공간 주체에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하는 사업

부평구문화재단은 인천의 첫 번째 기초문화재단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광역문화재단인 인천문화재단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현재 인천의 5개 기초지자체에 기초문화재단이 설립되면서 기초문화재단과 광역문화재단 사이의 협업과 역할분담의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따라서 신임 부평구문화재단 대표이사로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찬영 대표이사가 가장 강조한 것은 바로 ‘현장’이었다. 현재 부평구문화재단의 주요 사업들은 위탁사업이 많다고 한다. 전체 사업 규모가 200억이 넘고, 직원만 해도 140명 넘는 숫자이다. 규모가 크다 보니 재단 설립 초기에는 행정력을 갖춘 분들이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덕분에 이제는 행정적인 토대가 잘 잡힌 상태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 문화예술인인 이찬영 대표이사의 몫은 이 현장과 함께 할 ‘문화자치’라는 화두일 것이다.

지금까지 부평구문화재단은 어찌 보면 공간을 만드는 일에 주력했다. <부평별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동아리가 형성되어 있고, 풍물을 고리로 한 주민자치도 활성화되어 있다. 그 공간들이 그저 공간이 아닌 사람이 남아 활동할 수 있는 현장으로 지속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기초문화재단이 해야 하는 진짜 역할이라고, 그는 다시금 강조한다.

공간은 사람으로 채워져야 의미가 생겨난다. 그런데 하나의 공간에 사람이 모이려면 다양한 콘텐츠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콘텐츠의 생산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든 요소는 연쇄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관련 내용]

<부평별곳> 공간을 소개합니다! – 부평별곳 Part 1

<부평별곳> 공간을 소개합니다! – 부평별곳 Part 2

<부평별곳> 공간을 소개합니다! – 부평별곳 Part 3

그는 예술 관련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에서 그 동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간을 만드는 일은 재단이 담당했지만, 사실 그 공간을 현장으로 만드는 일을 재단이 주도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주민자치의 콘텐츠들이 넘쳐나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콘텐츠의 다양성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재단이 기획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 사회적 기업이 이 공간들에 적극적으로 들어올 수 있을 때, 민간의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임차료 지원이나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처럼 운영비를 도와주는 지원책들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이찬영 대표이사는 결국 기초문화재단으로서 부평구문화재단의 역할은 지속가능성을 만들어주는 일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문화생태계를 살리는 일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화가 경제 논리에 휘둘리는 것은 막아야 하지만, 문화산업의 부흥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No 기관명 구분 설립연도 설립 주체
1 인천문화재단 광역문화재단 2004년 인천광역시
2 부평구문화재단 기초문화재단 2006년 인천 부평구
3 인천서구문화재단 2017년 인천 서구
4 연수문화재단 2019년 인천 연수구
5 인천중구문화재단 2021년 인천 중구
6 남동문화재단 2022년 인천 남동구

인천 지역문화재단 설립 현황

“사회적경제 공동체가 살아 있는 도시 부평을 만들고 싶습니다.”

부평은 2021년에 제2차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법정 문화도시 사업 기간의 절반에 도달하는 2023년에는, 문화도시 사업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이찬영 대표이사는 무엇보다 문화생태계를 위한 경제적 기반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예술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 경제적인 문제를 덜 중요하게 여긴다는 통념이 깊게 뿌리 내려있다. 그러나 예술인들이 무형의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이지, 예술인들에게 경제활동이 아예 불필요하다는 것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예술가로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 생계가 유지되지 않고서는, 문화예술의 생존과 확장을 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가 예술가의 자율성을 해치는 것이 된다면 그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예술인들이 창작활동과 기초적 경제활동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문화생태계를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찬영 대표이사는 문화도시 사업 이후에도 부평의 문화예술 토대가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4대 보험은 청년 예술인이 사회적으로 자립하여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토대이고, ‘사회적경제’야말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문화생태계의 유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찬영 대표이사는 일찍이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모든 활동가에게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가 세운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2)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성립된 예술가들의 사회적기업이다. 어쩌면 그때부터 그의 관심은 조금씩 민간에서 공공으로 확장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적기업을 통해 그가 꿈꾸었던 것은 바로 지속가능한 문화예술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은 공공과의 협업 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2)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는 문화소외계층의 창조적인 자기 문화활동과 문화공동체를 실현하는 공공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문화예술인들의 안정적인 활동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용 출처: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홈페이지 바로가기)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활동 사진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활동 사진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활동 사진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활동 사진

사회적협동조합 자바르떼 활동 사진
(사진 출처: 홈페이지 바로가기)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 선택이 아닌 필수적 환경

부평구문화재단을 이끌어나가는 수장으로서 그의 현재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지속가능성’ 그 자체라고 말한다. 인천시는 지속가능한 문화예술생태계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법령을 정비하는 것에 집중하고, 광역문화재단인 인천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인의 창작활동에 따른 직접적인 지원과 정책적 연구개발을 이끌면서 여러 기초문화재단의 협업과 공존을 견인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초문화재단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초문화재단은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이 기반을 닦은 위에서, 예술가와 시민의 다양한 활동을 지역사회의 거점 공간에서 공유함으로써 문화적 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공동체 및 지역경제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지역 안에 건실한 문화생태계를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문화예술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 환경이다. 바로 그 일의 중심에 부평구문화재단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찬영 대표이사의 생각이다.

그는 이러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역할을 기초문화재단이 담당해야 하며, 부평구문화재단은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역량과 기반을 잘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오히려 이제 경계해야 하는 것은 그간 축적된 행정력에 대한 과신으로 조직 자체가 관료화되는 것이다. 경직된 조직은 그 자체로 문화예술의 생태계를 마비시키는 무서운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자립에 함께 손 내밀 수 있고, 지역사회와 경제에도 시너지를 마련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를 형성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인천 문화예술이 내일로 향하는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찬영 대표이사가 민간에서 실험하고 성취하였던 그 동력이, 이제 부평구문화재단이라는 공공의 영역에서도 활성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류수연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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