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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 골목 안에 열린 특별한 대안 미술 공간

‘허름한미술관’ 이정애 작가 인터뷰

김현주 (모모하시니의 만물작업 대표)

원룸과 빌라 그리고 오래된 주택들이 빼곡한 미추홀구의 용일 초등학교 후문 골목은 눈을 감고 다녀도 길을 찾을 정도로 잘 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게 잘 생기지 않는 동네다. 그런데 재미없고 따분한 구도심 동네에 조금 묘한 공간이 문을 열었는데, 오래된 적산가옥에 옷을 입혀준 ‘허름한미술관’이다. 간판으로 내다 놓은 나무도 이름만큼이나 꽤 허름해서 커다랗게 적지 않아도 아주 잘 알아볼 텐데 싶을 정도다. 이건 작가의 진지함일까, 아니면 위트일까. 미술관의 홑겹 섀시 문을 열자 나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고양이 관장님이다.

지난 4월 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개관식을 가진 ‘허름한미술관’은 동화작가 이정애(64) 씨가 문을 연 동네 미술관이다. 개관 전시인 ‘멕시코 검은 소’를 시작으로 소박한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잠시 ‘반사회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을 하는 청년들의 전시와 커뮤니티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보니’ 온전한 미술관이 되었다. 애써 계획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다.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 인생 흐름과 비슷하다.

허름한미술관 외부 전경 모습.
허름한미술관 외부 전경 모습.

허름한미술관 외부 전경 모습. 외벽에 페인팅으로 모토가 써져 있다.
“장애는 사랑이어라” / “장애(長愛)♥길게 사랑하는 것”

미술관의 첫 전시인 ‘멕시코 검은 소’는 이정애 작가의 딸인 화가 박소영(29) 씨가 주인공이다. 전시는 지난해 4월 한 달간 허름한 미술관에서 진행되었다. 그녀의 대표작이기도 한 ‘멕시코 검은 소’는 2020년 국제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게 원래 검은 소가 아니라 누런 소였던 거 아세요? 근데 소영이 눈에는 뭐가 다른지 처음에 소를 새카맣게 칠한 거예요. 그게 발전하면서 이렇게나 특별한 검은 소가 됐지 뭐예요.” 설명을 듣고 다시 작품을 보자 특별한 상상력에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다. 상상과 꿈은 장애를 초월한다. 담는 그릇의 한계(장애)에 굴하지 않고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어린아이의 것을 닮은 투박한 선과 흘러넘치는 색은 내세우기 위한 게 아니라서 더 의미가 있다. 이정애 작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다. 그래서 유연하고 재미가 있다.

“저는 소영이를 보면서 느껴요. 소영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순수하고 깨끗한 세상을 얼마나 많이 놓치고 살았을까, 뭐 그런 거 말이에요. 알록달록한 이 색감에 녹아든 발달장애 아이들만의 영적인 감각은 분명히 남다른 게 있어요. 그 안에서 치유를 받는 느낌이에요. 제가 느끼는 이런 감각과 행복을 세상에도 전하고 싶어요.”

내부 전경과 작품들

내부 전경과 작품들

박소영 작가 전시작품들

박소영 작가 전시작품들

(사진 제공: 김현주 대표)

검은 소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감의 작품들이 낡은 공간에 불을 밝힌다. 예술을 하는 자와 즐기는 자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시대다. 검게 칠했다가 알록달록하게 다시 벗겨낸 그림 속 속살이 드러난 검은 소는 낯설긴 해도 황홀하다.

“소영이의 작품 전시공간으로 꾸려진 만큼 장애인 아트만 전시하는 곳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미술관이죠.”라고 이정애 작가는 말했다. 지자체와 기관, 마을의 창작자들이 마음과 정성을 조금 보탠다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제는 지역 밖으로 흐르는 관심을 내가 사는 동네로, 안으로 돌려놔야 할 때이다. 우리는 이 동네의 동네다움은 무엇인지, 동네 안에서의 나다움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정애 작가(왼쪽)와 박소영 작가(오른쪽)
이정애 작가(왼쪽)와 박소영 작가(오른쪽)

이정애 작가(왼쪽)와 박소영 작가(오른쪽)

“어떤 날은 젊은 남녀가 문을 열고 불쑥 들어오지 뭐예요. 카페인 줄 알고는 애써 찾아왔다고 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은 또 이렇게 낡은 걸 찾아다니기도 하나보다 생각했어요. 이런 허름한 게 무척이나 새롭고 신기하기도 한가 봐요. 뭐 그런 생각을 하니까 또 재밌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이정애 작가는 크게 웃었다.

동네에 이런 공간이 하나 정도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카페보다는 이왕이면 예술과 맞닿은 미술관이라면 더욱 좋겠다.

예술이 일상의 전부가 될 수는 없더라도 일부라면야 골목 안 가까이에 두고 매일 바라봐야만 한다. 장애가 먼 우주의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의 일이라면 그 또한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관심과 응원을 보내야만 할 것이다. 지금의 예술은 더는 예쁘거나 아름답기만 한 것을 쫓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회복을 돕고 위로가 되어야만 한다. 장애인 예술은 더 그러하다.

2023년에 3세대 전시로 이어질 작품

2023년에 3세대 전시로 이어질 작품

곰팡이의 생일 공간_전시실 2

곰팡이의 생일 공간_전시실 2

(사진 제공: 김현주 대표)

“딸도 자신의 작품이 걸린 공간이 생기자 이곳에서 오래 앉아 그림을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스스로가 작가인 게 너무 좋은가 봐요. 올해는 소영이와 소영이의 할머니, 미술을 전공한 소영이의 삼촌이 모여서 3세대 전시를 꾸릴 거예요. 저는 현재 집필 중인 동화책을 마무리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라며 2023년의 계획을 밝혔다.

장애는 사랑이어라.
불편함이 아니라 길게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회복이자 우리 모두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이정애 작가는 우리 모두가 장애를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길 바라며 국문학 전공을 살려 동화 작가가 되었다. 이 또한 계획된 일이 아니었고, 자연스러운 흐름대로 살다 보니 그리되었다고 한다.

허름한미술관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억지스럽지 않은 공간이다. 모든 걸 다 쓸어내고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덮은 로컬의 레트로 마케팅과는 거리가 멀다. 철저하게 계획한 세련된 미술관은 아닐지라도 나름대로의 제 멋을 당당히 뽐내고 본연의 매력을 잃지 않는 공간이다. 그런 허름한미술관이 오래오래 자리를 지켜 장애인 예술의 거점이자 비 장애인에게 영감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란다.

꾸미지 않는 날 것의 이정애 작가와 소영 씨의 그림들처럼 말이다.

김현주

글/사진 김현주 (金炫住 / Kim Hyun Ju)

모모하시니의 만물작업 대표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도 하는 참치형 동네 작업자. 인천에 거주하며 타 지역 관련한 일만 하다 19년도 인천문화재단의 기획자 양성과정을 수료한 후로 지역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동네 작업실에서 사람들과 재미있는 일을 작당모의하기도 하지만, 주로 육아를 한다. 요즘은 지역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부모의 육아와 삶, 작업적 연대에 관심이 많아 최근 모임을 만들었다. 진정한 참치형 동네 작업자로 진화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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