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

내·외국인 어울림 한마당 <그린축제 함박웃소>

노윤지 (연수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도시특화TF팀 주임)

‘다양성은 삶의 양념이다. 그것은 삶에 모든 풍미를 준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가 남긴 말이다.

연수구에는 우리 삶에 풍미를 더할 수 있는 ‘함박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14개 이상의 국가에서 온 민족들이 공존하고 있다. 연수문화재단은 함박마을이 품고 있는 다양성의 힘을 발견하고, 문화예술로 마을의 이주민과 선주민이 뒤섞이며 도시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 시도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올해 2월, 재단의 유쾌하고도 쉽지 않은 도전을 이어받게 되었다. 업무를 맡고 처음 마주한 문서는 제각기의 필체, 여러번 쓰고 지운 듯 지우개 자국이 가득한 주민들의 제안서였다. 연수구 1)주민참여예산사업에 선정된 해당 제안서 안에는 함박마을의 특별함을 담은 축제를 열어보자는 주민들의 투박한 진심이 담겨있었다. 이들의 마음이 흘러와 내게 닿은 만큼 함박마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야기가 남는 축제를 만들겠다는 부푼 설렘을 안게 되었다.
1) 주민이 예산 편성 과정에 직접 참여해 동네에 필요한 사업을 제안하고 결정하는 제도

인종, 언어, 종교, 식문화 등 삶의 모습이 제각기인 함박마을의 특별함을 담기 위해서는 여러 주체들의 힘이 모여야 했다. ‘우리는 오직 다 다르다는 점만이 같다.’는 말처럼 다름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고, 여러 국적을 가진 주민들이 만나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내·외국인 주민으로 이루어진 축제추진단을 구성하였다. 더불어 지역 내 20여 개의 유관기관과 활동단체, 주민공동체와 만나 축제의 청사진을 함께 그리기 시작했다.

함박웃소 축제추진단 기획회의

함박웃소 축제추진단 기획회의

유관기관 실무자 기획회의

유관기관 실무자 기획회의

(사진 제공: 연수문화재단)

그러나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개개인이 모여 축제의 그림을 조화롭게 그려내는 것은 굉장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작과 동시에 깨달았다. 각자 생각하는 축제의 깊이와 결이 너무나도 달랐고, 미묘한 신경전을 섬세하게 헤아리며 생각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것이 어려웠다.

수개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협의 과정에 지쳐가던 찰나, 축제추진단의 어느 주민분께서 ‘서로 얼굴을 맞대어 마음을 모으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축제예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계기로 결과에 대한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마음을 여니 그제야 축제를 준비하는 시간들이 편안해졌다. 담당자인 나조차도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게 아닐까 반성한 순간이었다. 몇 명의 능력 있는 기획자가 아니라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마을을 애정하는 사람들과 하나둘씩 축제를 채워 가보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느리더라도 꾸준히 사람들과 접촉하며 마을 자원 기반의 축제 가치와 전략, 주제와 콘텐츠를 하나하나 치열하게 의논하고 결정해갔다.

그렇게 햇살이 따스한 10월, 다름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전환을 꿈꾸며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은 낮추고 새로운 경험이 주는 즐거움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14개 국적, 160여 명의 주민들이 세계 여러 의상을 입고 마을 일대를 행진하는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국가별 전통 소리와 몸짓, 악기를 엿볼 수 있는 주민들의 공연이 축제장을 흥겹게 채웠다. 동시에 유라시아권 의상, 놀이, 명절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부대 프로그램부터 내·외국인 주민의 삶과 정보가 담긴 식탁 위 먹거리까지! 축제장은 호기심 넘치는 관객들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

세계의상 퍼레이드

세계의상 퍼레이드

다국적 주민공연

다국적 주민공연

부대 프로그램

부대 프로그램

(사진 제공: 연수문화재단)

무엇보다 의미 있었던 것은 축제의 공연팀과 프로그램 운영자 등 내·외국인 출연진들을 축제추진단과 함께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소통하는 언어와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 진행 속도는 더뎠을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축제의 과정, 그리고 이를 준비하는 우리 삶에 다양성을 녹여낼 수 있었다. 또한, 축제장에 고국의 문화를 마음껏 펼쳐 놓은 외국인 참가자들은 3개월가량의 준비 과정을 거치며 이주지역인 함박마을에서 단순 문화행사 참여를 넘어서 주체적 삶과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갈 용기를 키워냈으리라 생각한다.

기대에 부푼 관객들의 표정, 환희에 찬 출연팀들의 미소, 땀이 송골송골 맺힌 스태프들의 얼굴까지 축제 현장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흰 도화지에 축제의 그림을 다채롭고 조화롭게 그리기까지 8개월의 여정에 함께해준 함박웃소 축제추진단, 마을 내 유관기관 및 활동단체 그리고 모든 순간 넘치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던 연수문화재단 동료분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축제 현장 스케치
축제 현장 스케치
축제 현장 스케치

축제 현장 스케치
(사진 제공: 연수문화재단)

<그린축제 함박웃소> 개최를 준비하며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유연함과 잠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함을 길렀으며, 공생의 가치를 피부로 느꼈다. 축제추진단과 함께 문화 다양성에 관해 공부할 때 강사님께서 문화 다양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문화 다양성은 질문입니다. 끊임없는 질문 말이지요.’

<그린축제 함박웃소>가 수천 개의 라이프 스타일이 공존하는 함박마을에서 개개인의 문화적 삶을 존중하고 이웃의 일상을 궁금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삶의 형태는 달라도 축제를 함께 경험한 좋은 추억거리가 생겼으니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며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늘어나길, 나아가 소수의 문화를 따뜻하게 환대하는 더욱 특별한 마을로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노윤지 주임

노윤지 (盧尹智, Noh Yun Ji)

돌다리도 이리저리 살펴보고 두드려보며 조심조심 건너는 계획형 인간이다.
연수문화재단에서 ‘함박웃소 프로젝트’와 ‘우리동네 문화등대’ 사업을 운영하며 매번 마주하는 새로움에 당황하지 않고 일상의 변주들을 즐기고자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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