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더 단단해질 연수의 문화생태계를 꿈꾸다

임철빈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와의 만남

류수연 (인하대학교 프론티어학부대학 교수)

임철빈 대표이사

1996년 ㈜라이브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통엔터테인먼트 대표, ㈜씨유아시아 대표를 역임했으며, (재)영월문화재단 축제사업팀장을 역임했다.
2018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문화행사 ‘단종국장 거리페레이드’ 총괄감독을 수행하며 평창동계올림픽 우수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2019년-2021년에는 제2대 광명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2021년부터 현재까지 제2대 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문화란 무엇일까?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 양식과 상징 구조를 지칭하는 말로써 문화는 인간이 이루어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실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문화를 예술 이라는 말로 좀 더 좁혀서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슈머(prosumer)의 개념이 사회 모든 영역에서 일반화되고 있는 오늘날, 문화의역에서도 문화예술의 수용자와 창조자의 간격은 점점 좁혀지고 있다. 아니, 보다 엄밀히 말 하자면 둘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해졌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오늘날 기초문화재단이 구체적인 협업의 대상으로 삼는 파트너는 바로 이들 프로슈머일지도 모르겠다. 광역문화재단이 문화예술의 창조자인 예술인에게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 하는 데 집중한다면, 기초문화재단은 그렇게 야기된 문화예술의 저력이 지역사회와 시민들의 일상에 보다 깊이 뿌리 내리도록 하는 일을 담당한다. 그것은 시민을 프로슈머로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 인터뷰에서는 이러한 시민 중심의 문화생태계를 현장에서 일구어내고 있는 연수문화재단의 임철빈 대표이사를 만났다.

무대를 떠나 관(官)으로

잘 알려진 대로 연수문화재단 임철빈 대표이사는 본래 공연기획자였다. 그러한 그가 무대를 떠나 문화재단이라는 공공기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배경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임 대표이 사는, 그것을 ‘슬픈 이야기’라고 정의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20대, 그가 공연기획자로서 첫발을 뗀 곳은 대학로였다. 매일 크고 작은 무대가 있는 곳, 공연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대학로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곳에서 대한민국 공연문화의 흥망성쇠를 총체적으로 맛보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공연기획자들처럼 그가 처음 참여한 무대는 극장이었다. 공연예술 분야의 영세성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무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시절이었으리라.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참여할 수 있는 무대의 성격도 변화하였다. 연극무대에서 뮤지컬로 그리고 K-pop 가수들의 콘서트 기획까지. 영세하기만 했던 공연 분야에 거대한 자본이 침투했고, 그는 현장에서 그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거기서 발생했다. 2000년대 이후 공연분야는 뜻밖에 호황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화려한 무대 뒤에 감춰진 것은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혹독한 경제 논리였다. 거대한 자본이 투자된 무대는 날로 화려해졌지만, 그러한 자본의 세례를 받지 못한 무대는 더 가난해졌다. 그뿐만 아니었다. 때로는 자본에 밀려 무대마저 잃어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기획 단계부터 이미 대형자본에 흡수되었기 때문에, 가능성의 폭은 점점 좁아졌다. 더구나 이러한 양적인 성장에 도 불구하고 공연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민(民)의 공연현장을 떠난 관(官)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대형자본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어진 공연현장에서, 그는 자본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답을 문화재단에서 찾았다고 한다.

시간을 들이고, 찾아다니고, 지역민과 호흡하는

공공에서 그의 첫 단추가 된 곳은 강원도 영월이었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그는, 영월의 축제를 전담하는 기획자로서 활동했다. 잘 알려진 대로 영월은 본래 역사문화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역사적인 의미로는 단종의 마지막 유배지이자 그의 왕릉이 있는 곳이고, 김삿갓으로 널리 알려진 조선 후기 방랑시인 김병연의 생가와 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동강이라 는 천혜의 자연이 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축제를 더 크게 키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이 축제가 보다 지역 주민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랐다. 축제를 통해 외부 방문객을 모으고 지역의 경제적 활성화를 이루어내는 것만으로, 축제가 오롯이 지역민의 삶에 뿌리내린다고 보기는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히려 축제의 기획부터 전 과정에 지역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도록 그는 발로 뛰고 마음으로 움직이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거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농촌 지역의 특성상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녀야 했고, 이야기를 듣고 나누어야 했다. 그러한 충분한 시간 없이는 지역민들과 호흡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는 3년 여의 시간 동안 바로 이 ‘시간을 들이는 일’에 충실했고, 그 결과 공공에서 더 나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도시로, 그리고 인천으로

영월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그의 다음 도전장을 내민 곳은 광명문화재단이었다. 민간에서 그가 활동하던 곳이 서울과 경기 지역이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다시 본래의 무대로 돌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적응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영월과 광명, 그 거리만큼의 새로운 시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농업도시인 영월과 달리 광명은 사람도 이슈도 많았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영월과는 다른 ‘속도’가 요구되었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의 시라는 점에서 광명은 이중적인 매력을 가진 도시였다. 오랜 시간 동안 광명은 구로공단의 배후도시로서 기능하였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변화의 바람을 탔다. 광명역이 들어오고 이케아와 코스트코 같은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가 되었고, 도시의 공격적인 마케팅에 따라 브랜딩화가 이루어졌다. 서울과 인접한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라는 것 역시 강점이었다.

그런데 그가 인천이라는 도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바로 이 광명에서였다. 인천은 근대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이다. 공항과 항만을 끼고 새롭게 조성된 송도는 국제무역과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가 외부에서 보았을 때 인천의 문화적 토양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도약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그는 무엇보다 인천, 그리고 연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자 했다. 사실 인천 내에는 문화예술의 거점이 부족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기존 문화예술 관련 시설의 많은 부분을 공무원들이 운영하는 것도 문제점이었다. 아무래도 경직된 공무원 사회의 특성상 유연함과 다양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송도를 향했다. 처음에 그가 송도에서 받은 느낌은 모순적으로 강렬했다. 잘 조성된 신도시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인프라와 달리 매력이 되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껴졌다. 그 여백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문화라면, 연수문화재단이 해야 할 일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는 연수에서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인천연수문화재단
인천연수문화재단

(사진 제공: 인천연수문화재단)

연수문화재단 주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임철빈 대표이사
연수문화재단 주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임철빈 대표이사

연수문화재단 주최 행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임철빈 대표이사
(사진 제공: 연수문화재단)

여백 위에 세워진 도시, 여백을 채우는 문화

임철빈 대표이사가 연수문화재단에 온 지 꼭 1년이 되었다. 그가 진행한 지난 1년의 밑그림과 채색은 무엇이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그는 연수의 특징을 ‘새롭게 세워진 도시’라고 말한다. 원도심과 송도국제도시 모두 매립지에 기반해 조성된 도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세워졌다는 말 뒤에 그 만큼 많은 여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연수라는 도시의 과제는 언제나 그곳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에 있었다. 동시에 그 답은 언제나 명확했다.

도시란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문화가 발생하고, 모든 사람은 문화를 향유하면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채워져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바로 문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신도시, 그것도 매립지 위에 세워진 신도시의 필연적인 한계는 바로 역사적 문화자원이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100년 전이라면 바다 위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자원의 척박성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송도를 포함한 연수에는 또다른 문화자원이 넘치고 끊임없이 유입된다. 바로 인적자원이다. 새로운 도시가 조성되면서 외부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이곳에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곳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도 지속적으로 들어온다. 그는 이러한 인적자원이야말로 연수문화재단의 진짜 동력이라고 강조한다. 사람이야말로 그가 그려온 밑그림의 핵심인 것이었다.

연수에만 있다! 연수에는 없다!

조금은 흥미롭게 질문을 던졌다. 문화도시 연수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그가 생각하는 연수의 양면에 대해서 말이다. 질문은 핵심은 간단했다. 연수에는 ‘무엇’이 ‘있다/없다’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연수에만 있는 것. 그것은 바다를 매립해서 생긴 새로운 땅이다. 불과 100년 전에 이곳은 그저 망망대해였음을 기억하자. 그러므로 연수를 문화도시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채워나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반면 연수에는 없는 것. 그것은 바로 문화예술회관이다. 그것은 연수가 문화도시로서 도약하고 상생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거점이다. 연수의 시민들이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 허브로서 문화예술회관을 세우는 일은, 언젠가 연수문화재단이 꼭 이루어내야 할 목표가 아닐 수 없다.

연수문화예술회관 건립공사 기공식 모습

연수문화예술회관 건립공사 기공식 모습
(사진 제공: 연수문화재단)

문화의 자립, 이제는 문화청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번에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으로 돌아왔다. 기초문화재단의 장으로서 1년, 기초문화재단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듣고 싶었다. 그것은 지난 1년 동안 그가 연수에서, 그리고 연수를 위해 얻은 지향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임 대표이사는 이런 질문을 오래도록 곱씹었다고 한다. 문화재단은 왜 생겼을까? 그리고 왜 존재해야 할까?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해 답하고자 하는 노력이 결국 기초문화재단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가 이제 삶을 풍요롭게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전제했다. 중산층을 가늠하는 척도가 단지 경제적인 조건이 아닌 문화적 조건으로 변모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주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하나 이상의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제2외국어를 구사할 수 있으며, 여유를 위한 요리를 즐기고,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 그러한 문화를 일상에서 누리는 것이야말로 행복지수와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재단이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문화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 문화재단의 자립은 바로 이 때문에 필요하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지역은 각기 다양한 문화재단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재단들이 지자체로부터 예산을 받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독립된 성격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지방선거 전후로는 여러 문화재단의 여러 사업들이 흔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사람들이 광역과 기초를 아우른 모든 문화재단의 독립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임철빈 대표이사는 조심스럽게 교육청의 사례를 꺼냈다. 교육은 백년지계라고 하지만 한국만큼 교육정책이 정치에 휘둘리는 나라도 없었다. 그나마 오늘날에 한국의 교육정책과 사업이 어느 정도 지속성을 이루고 있는 것은 교육청이 그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 역시 비슷한 조건이다. 문화와 관련된 여러 공공기관들이 독립적이고 자립적으로 지속적인 정책과 사업과 펼치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필요하다. 문화청은 그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 아닐까? 임철빈 대표이사의 말에 담긴 무게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연수의 문화생태계는 여전히 성장한다

이 인터뷰를 진행할 당시 연수구는 제4차 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심사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사를 쓰는 시점에 안타깝게도 연수는 제4차 문화도시 지정에 실패하였다. 탈락의 결과는 쓰지만 그것이 연수의 문화생태계를 평가하는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다시금 지난 인터뷰 내용을 곱씹어 본다. 이미 도시의 성장은 경제지표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경제자유구역 송도는 이미 예술자유구역으로의 전진을 앞두고 있다. 환경과 예술 전반에 걸친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내기에, 연수는 최적의 요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네트워크의 뿌리가 더 넓고 깊이 확장되리라 믿는다.

비록 문화도시 선정에서는 고배를 마셨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더 멋진 문화생태계를 이끌어 낼 연수와 연수문화재단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류수연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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