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가 김범수

김범수

이름: 김범수 (金範洙, Kim Beom Soo)
출생: 충청남도
분야: 공연예술 (연극)
인천과의 관계: 인천거주, 인천활동
작가정보: 이메일 qjatk@hanmail.net

작가의 대표이력 작성
2021년~22년 중진예술가 지원사업선정작 교육연극 T.I.E 뮤지컬 [Going-Back]
2022년 환경뮤지컬 [쓰레기 별 오즈]
2021년 대형악극 [여로] 연출
2020년 5G원천콘텐츠개발 뮤지컬 [괴짜박사의 실험실] 예술감독
2019년 환경뮤지컬 [바다로 간 쓰레기] 작/연출
2018년 환경뮤지컬 [어린왕자의 쓰레기 별 여행] / 드라마트루기
2016년 교육연극T.I.E [하늘은 맑건만] 연출
2015년 극단 미추홀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연출
2014년 남동문화예술회관 갤러리프로그램 [상상 그 이상 그림자 극장] 연출
2013년 서울교육극단 교육연극 [거울보기] 각색/연출
2012년 극단 훈무대 [능허대 사랑비] 연출
2011년 극단 미추홀 [맥베드 영] 각색/연출
2010년 뮤지컬 [A Live], 오페라 [개선행진곡], 오페라 [공주는 잠 못이루고] 연출
2009년 창작극 [오장환과 이성복이 만나면] 연출
2008년 청소년 뮤지컬 [불타는 별들] 각색/연출
2007년 어린이 환경연극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출연/연출
2006년 오브제극 [인형가게 선물] 연출
2005년 어린이 환경연극 [반디이야기] 연출
2004년 어린이 환경연극 [소년과 바다] 연출
2003년 극단 미추홀 [2003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역 출연
2002년 오브제극 [프랑켄슈타인] 출연/연출
2001년 뮤지컬 [불타는 별들] 출연
2000년 그림연극 [막베스] 방코/역 출연
1999년 창작극 [Ego] 출연
1997년 세계연극제 출품작 뉴욕 라마마극단 협연 [트로이의 여인들] 출연
세계연극제 출품작 뉴욕 라마마극단 협연 [트로이의 여인들] 출연
1994년 락뮤지컬 [가스펠] 출연
1988년 줄 르나르 作 [홍당무] 홍당무/역 출연
1986년 김시라 作 모노드라마 [품바] 출연
1985년 엘빈실바누스 作 [어느 폴란드 유태인 학살의 회상] 출연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어린이 환경연극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2004년부터 시작한 환경연극 시리즈로 18년동안 10편 이상의 환경연극을 창작해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가장 많이 무대에 올려진 작품인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뽑을 수 있겠다. 공연 창작에 있어, 그것이 성인연극이든, 청소년연극이든, 어린이 연극간에 내 안에 창작의 중심이 되는 세 개가 예술성과 교휸성 그리고 오락성이다. 특히 어린이 연극에서 그중에서 환경문제를 전달하려는 교육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어린이 환경연극 창작에 있어 위의 세 개의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성을 강조하다 보면 작품이 너무 어려워지고, 교훈성을 강조하다 보다 보면 고리따분한 지루한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오락성을 강조하다 보면 ‘치기’로 아무것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창작작업에 있어 이 균형을 이루기 위해 젊은 시절 많은 실험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이전의 작품은 드라마 위주의 어린이 연극 창작에 고통을 느껴야만 했다. 그래서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어린이 연극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제1장 <나무야 안녕!>은 나무는 어떤 일을 할까? 함께 생각하는 관객과 함께하는 관객참여형 놀이극으로 만들었다. 제2장 <생가하는 나무>는 짧은 연극으로 오브제와 블랙라이트를 사용한 동화적 상상력으로 만든 연극이다. 제3장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무의 모습과 인생의 소년, 장년, 중년, 노년의 모습을 모티브로 만든 비언어 이미지 연극으로 만들었다.

창작자이자 예술가로서 살면서 본인의 작품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일은 나로써는 조금 어려운 일이었다. 작품 창작이 우선이라고 생각 했었기 때문에 범하는 예술가들의 실수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환경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기획력이 없었던 그시절, 입소문을 타고 초청공연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순회하며 공연을 무대에 올린 횟수가 114회기 되니 전국을 유랑하며 돌아 다닌 셈이다. 아마도 예술가의 역량을 키워가며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 시절 함께한 후배 예술가들가의 추억이 깃든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 시절 함께 한…
지금까지 함께 한…
그렇지 못한…
예술가들을 기리며…

2007
2007
2007
2007

2007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 국립극장 별오름

2.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작업의 영감을 주는 공간은 재래시장, 상가들이 이어진 길, 공원, 미술관, 영화관… 우리 삶이 머무는 곳 모두가 작업의 영감을 주는 곳일 수 있겠다. 특히 오브제 연극을 만들던 시절. 후배 예술가를 이끌고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 을지로2가, 3가, 4가를 돌고 돈 적도 있다. 그에 보상으로 유명한 오장동 회 냉면을 사줘가며 함께 했던 기억이 난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은 생각을 해야하는 창작의 고통을 느끼던 젊은 날의 기억을… 되살려 본다.

한 때의 고민은 창작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 그래서 내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의 밑바닥까지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위에서 말한 삶이 머무는 모든 것들이 내 정서, 감정가 감각에 기억 속에 자리 잡고 그를 바탕으로 예술이 모태가 되는 영감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작품의 영감을 얻는 과정에서 모방에서의 문제를 부딪친 적이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형태의 창작 공연을 만들고 싶어 서 노력하던 젊은 날의 기억이다. 초등학교 5학년, 나의 첫 무대다. 어려서부터 배우로 무대에 섰던 나는 7살부터 인천의 소극장에 공연을 보며 아버지에 손에 이끌려 대학로까지 가서 연극을 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봐 왔던 연극무대, 배우의 연기, 무대연출… 그 많은 기억들이 모방으로 이어지는 듯 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러한 고민은 선배 연출가의 조언으로 지울 수가 있었다. 창작자로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느끼지 않는다면 아무런 창작도 할 수 없다는 조언이었다.

내 작품의 영감은 미술관에서 얻는 경우가 많다. 특히 비언어 이미지극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서울에 한 미술관에서 르네마그리트의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미술관 한 편에 작게 적혀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의 내용은 그렇다. 글로는 많은 것을 설명 해야하고 그것을 그리는 이미지는 글을 읽는 사람들마다 다른 이미지를 그릴 수 있지만 한 장의 그림이나 사진 더 많은 것을 전달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글을 새기고 싶어 르네마그리트의 책을 사기도 했지만 그 책 어디에서 그 글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글에 영감을 얻은 나는 창작에 있어서 한 장면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노력과 시도를 한동안 계속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걸어온 연극의 길이 38년…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길을 것고 있다.

2000년 왕과시 소극장
2000년 왕과시 소극장

2000년 <막베스> 왕과시 소극장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어린 나이에 연극을 시작한 나는 항상 연극계의 막내로 생각하며 그렇게 생활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후배 연극인들 이끄는 꽃중년의 예술가 된 듯하다. 아버지 김종원은 내 나이에 대통령상을 거머쥐고 인천시립극단 창단의 주역이 되고 많은 상을 수상하셨다. 예술가로서 대회에 나가 자신의 작품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보통의 생각이겠지만 상이나 명예, 권력을 떠나서 욕심 없는 조용한 예술가로 살고 싶다. 오랫동안 인천지역의 예술가로 살고 싶다.

같은 자리에서 20년 동안 자리하고 있는 극단 미추홀 연습실…
힘든 시기가 있었다. 모두가 떠나버린…
그런데 그렇게 힘든 날에도 연극을 버리진 못했다.
살면서 한 번도 연극을 등진적이 없는 듯하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연극을 계속하다 보면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연극 예술가 되진 않을까?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늙어서도 어린아이 같은 맘으로 살아가는 순수한 예술인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오랫동안 변치 않는 순수함으로 연극을 대하고 싶다.

1985년 모노드라마 께페떼아뜨르4막5장
1985년 모노드라마 께페떼아뜨르4막5장

1985년 모노드라마 <품바> 께페떼아뜨르4막5장

4.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10대의 어린 시절 철없이 무대를 마주하고 20대의 젊은 시절 실험과 열정으로 치열하게 새로움에 도전하고 30대의 연극을 함께할 후배양성에 꽃을 피우고 40대의 아무도 하지않은 환경연극을 시작한지 10년이 넘었다. 올해 50살이 되어버렸다. 시대가 바뀌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미디어가 넘쳐난다. 환경문제는 날로 심각해져 가고, 청소년 문제, 사회문제, 고령화 문제들로 넘쳐난다. 연극으로 이런한 문제들과 마주한다면…?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면…? 이것이 예술가들이 고민이고, 연극으로 나의 작업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해답은 우리 예술가들이 알고 있듯이 문화예술교육일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예술장르와 결합 된 어린이를 위한 연극’ 미래의 주인공은 어린이다. 어린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어린이들을 위한 좋은 연극 만들기를 계속해서 만들어 갈 것이다. 순수함으로 어린들을 만나고 싶다.

5.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초등학교 3학년에 송도역 근처 청학동에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주말과 방학 때면 약수물을 긷기 위해 물통을 매고 문학산과 청량산을 돌았다. 새벽 12시가 넘어서 물을 길으러 같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산과 나무와 풀냄새는 내 어딘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아마도 자연을 대하는 지금의 태도도 그때 자리잡은 듯하다. 아버지의 장이 좋지 않아서 약수물의 효험을 맛 보았기에 그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청학동, 옥력동, 동춘동, 연수동 그렇게 청량산 주변에 마을에서 40년을 살고 있다.

청량산 정산에 옆 숲에 자리한 작은 바위가 있다. 그때만 해도 별로 찾는 이가 없어서 새벽에 산에 올라 바위에 북채를 두드리며 판소리 연습도하고 발성 연습도 했다. 인천의 송도 앞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햇살이 잘 드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전망 좋은 바위다. 그 바위에 앉아서 바람을 느끼면 가슴이 트이고, 자연을 마주하게 된다. 아마 그렇게 내려다 보았던 인천의 모습이 내 어딘가 깊게 자리잡아 지역의 예술인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신포동 거리, 경동 싸리재 길, 동구에있는 작은 골목들… 지금은 조금씩 사라져가는 골목들이지만 그 길에서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영감을 얻는다. 하지만 요즘은 자가용을 타고 다니며 시간에 쫓겨 그 많은 것을 놓칠 때가 많다.

길을 걷고, 사람 사는 향기를 느끼며 청량산 바위에 앉아서 많은 생각을 하고…
그 모든 삶의 한 자락 한 자락이 예술의 영감을 준다.
사람과 마을을 잇고 자연의 소중함을 전달하는 나의 작품으로 되돌아 오는 듯하다.

인천 연수구 청량산 정상 바위, 청량산 정상 옆에 자리한 조그만 바위

< 인천 연수구 청량산 정상 바위 >(좌측 이미지)
< 청량산 정상 옆에 자리한 조그만 바위 >(우측이미지)

답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Pos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