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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인천으로 통한다? 연극 [올더웨이] 관람기
하병훈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에 선정된 ‘뮤직드라마 <올더웨이>’가 인천 관내 공연장(남동소래아트홀, 부평아트센터, 인천서구문화회관,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막을 올렸다. 전국의 문화예술회관에서 지역주민을 지원한다는 취지하에 문예진흥기금으로 지원을 받아 인천의 대표 민간 극단이라 할 수 있는 극단 십년후의 주관과 제작으로 공연되어 졌다. 이미 [성냥공장 아가씨], [김구, 가다보면] 등의 뮤지컬로 호평을 받았던 적이 있으며, ‘인천연극제 대상’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우현예술상’등을 수상한 인천의 관록 있는 극단 십년후에서 만든 작품이라 하니 더욱 기대가 크다. 이에 필자는 1호선 백운역 인근에 위치한 인천의 대표 극장의 하나인 부평아트센터 해누리 극장을 찾았다.
뮤지컬 <올더웨이> 포스터 및 공연 사진
(자료 제공: 극단 십년후)
극장에 들어서면 돛대 모양을 한 무대장치 너머로 5인조 세션 라이브밴드가 포진해있고 뒤 배경막(사이클로라마)은 별이 빛나는 연안부두의 밤하늘이 펼쳐져 있다. 양쪽 날개 막 부근은 ‘신포상회’, ‘신포수산’ 이라는 간판을 단 상점들과 레트로 감성의 가로등 아래 오래된 인천의 어느 골목의 모습이 고즈넉하고 보기 좋게 세팅되어 있다. 무대디자이너가 따로 있었으나 오랜 무대미술가 경력을 가졌던 극단 십년후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노년의 송용일 연출의 감성과 감수가 잘 투영되어 있는 것 같아 반갑다.
극은 착륙하는 비행기의 영상과 더불어 김포국제공항의 모습이 보이고 연이어 자동차로 인천에 도착하는 시점으로 시작한다. 이윽고 우리에게 익숙한 ‘연안부두’의 노래가 펼쳐지고, 남녀 배우들은 노래에 맞춰 신나고 유쾌하게 춤을 춘다.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와 ‘갈매기 우는 맘’ 같은 가사를 신나게 춤추며 부르는 모습이 가사 내용과는 어울리지 않는 안무 같아서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지만, 오프닝 노래이고, 이제 ‘연안부두’의 노래는 슬픈 듯한 가사와는 다르게 인천 연고의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대표 응원가로 불리면서 경쾌함은 익숙해진 상황이라 낯설음은 금새 이해되었고, 또한 극 말미에 현 도입부의 상황이 다시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수긍이 되기도 하였다. 이내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이 보이고, 이젠 초로의 늙은이가 되어버린 시각장애인 작곡가 주인공 대수는 지나간 세월의 아쉬움을 토로하며 새로 작곡한 노래가 있다며, 주제곡인 ‘올더웨이’를 선보인다. 그리고 독일 파병간호사로 한국을 떠나있던 오래전 연인 연숙과 다시 재회하는 순간 극은 1950년 전쟁 전의 인천으로 플래시백 한다.
뮤지컬 <올더웨이> 포스터 및 공연 사진
(사진 제공: 극단 십년후)
대중가요(가사)를 중심으로 구성한 스토리
이후의 극은 시종일관 이해에 큰 무리 없이, 간단한 줄거리를 가지고 진행된다.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현실을 벗어나서 상상의 세계를 꿈꾸는 대수와 현실을 직시하자는 인범, 이 둘을 바라보는 연숙 등 세 청춘의 삶과 사랑을 우리 귀에 익숙한 대중가요를 중심으로 1950년대의 6. 25전쟁 전 상황에서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의 30여 년의 세월을 조망하며 흘러간다.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왕서방 연서>, <외로운 가로등>, <이별의 인천항>, <전우야 잘 자라>, <봄날은 간다>……
간혹 이 상황과 장면에서 왜 저 노래를 선택했으며 왜 저렇게 구성하였을까? 하는 의문이 든 장면이 몇몇 있기는 하다. <왕서방 연서>의 경우, 노래는 가수 고(故) 김정구씨가 1938년 “넘우 심하오/왕서방 연서”가 수록된 유성기 음반에서 발표한 만요(漫謠 -1930년대에 나타난 희극적인 풍자곡이며 유머러스하면서 가벼운 가사가 특징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참조)로 알려져있다. 익히 알려진 가사로는 ‘비단장사 왕서방이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 판 돈 모두를 퉁퉁 다 털어주어도 띵호아(띵하오아의 줄임말로 좋다는 뜻이다)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는 중국인을 대표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왕서방이 기생인 명월이한테 반해서 가산을 다 탕진하고도 명월이랑 살아서 기분이 좋다는 이야기인데, 극 중 왕서방은 의례 뚱뚱하며 가늘고 긴 콧수염에 옷차림은 익히 청대 만주족 의상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명월이로 간주되는 여성은 한복이 아닌 만주족 전통의상이라는 치파오를 입었다. 왕서방이랑 살아서 옷을 중국풍으로 바꿔 입었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이윽고 등장해서 왕서방의 철없음을 혼내는 왕서방의 어머니쯤 되는 존재의 차림은 우리네 어머니의 한복 저고리에 조끼를 걸쳤다. 당대 인천에 많이 거주하고 있던 화교들을 담아내는 차원에서, 현재 국내 최대의 차이나타운과 자장면 박물관까지 보유하고 있는 인천의 역사성과 풍광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나, 보는 이는 갸우뚱했다.
뮤지컬 <올더웨이> 공연 사진
(사진 제공: 극단 십년후)
이윽고 전쟁이 끝나고 생선 장수를 하는 대수의 고뇌를 담는 과정에서 <젊음의 노트>란 노래가 나오는데, 필자가 알기로는 86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신예 유리미라는 가수가 혜성같이 등장하여 대상을 수상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곡이다. 전후 참전 수당이 끝나 분노하며 고뇌하는 대수의 심정을 표현하는 곡으로 선택한 연유는 이해하였으나, 극 내용을 시대 흐름과 같이 감상하던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현대곡으로 인해 당황하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순간 관람 방식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 이 극은 시대의 파노라마를 그 시대의 노래와 함께 구성하지 않고 노래의 가사 내용만을 가지고 적절히 배분한 주크박스식 뮤지컬이구나’. 스웨덴의 유명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 23곡을 가지고 딸의 결혼을 맞아 진짜 아빠를 찾는 소동을 그린 뮤지컬 [맘마미아]가 연상되었다. 하지만 [맘마미아]는 시대를 반추하는 식의 역사극은 아닌데……
뮤지컬 <올더웨이> 공연 사진
(사진 제공: 극단 십년후)
지역을 상징하는 구성과 지역적 특성을 살린 지역주민을 위한 대중가요극
30여 년의 시간을 2시간 남짓한 공연으로 압축한다는 일은, 더구나 주크박스 뮤지컬에 심금을 울리는 잘 짜인 내러티브로 엮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중년남성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영원한 숙제(?)이기도 한 공연계에서 머리가 많이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성과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어린이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더불어 제법 많은 지역주민이 로비에서 대기하는 모습은 ‘지역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취지에 제법 부합된다는 인상을 받으며 극장 안으로 입장하게 하였다. 극 중간에 끊임없이 울리는 휴대폰 문자 알림 소리를 단속하지 않는 관객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초등생 저학년 꼬마와 드라마의 진행에 ‘제비구나!’라고 훈수를 두며 웃어대는 관객의 태도를 예술적이지 못하고 ‘극 관람 예절에 맞지 않는다’만으로 나무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남자는 꿈을 그리고, 여자는 그런 남자를 무작정 좋아하며 마냥 기다리고, 그 외로운 여자를 지고지순하게 쫓는 또 다른 남자의 생각과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노래는 연기의 또 다른 연장선으로 정서를 잘 실어야 함에도 이쁘게만 부르는 젊은 배우들이 역량이 모자라 안타깝기도 했지만, 인천에 살고 있고, 근대 인천의 역사와 함께했으며, 지금 인천의 내용을 가지고 대중가요극을 만들어 같이 즐기고 있는 지금이 관객들은 좋은 듯하다.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일요일 정오 KBS의 대표 프로그램이 있다. [전국노래자랑]은 전 국민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진솔한 모습이 좋은 것이지, 거기에 예술성을 들이대며 ‘좋고 나쁘니, 격조가 있니 없니’를 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극단 십년후의 대표이자 연출가 송용일 역시 그의 연출의 말에 ‘이번 작품은 단순하다’고 이야기한다. ‘주옥같은 인천을 배경으로 한 노래 가사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었으며,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전 세대가 즐기는 작품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공연은 더도 덜도 말고 꼭 그렇게 봐야 할 것 같다.
하병훈 (河炳勳 Ha ByoungHun)
대학교수
극단 인파 대표
현재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배우로도 활동하였고, 학교에서 연기, 연기교육, 공연제작 분야의 강의를 하고 있다.
인천대 졸업생들로 구성한 극단 인파의 대표로 있으며, 인천에서 꾸준히 연극작업을 하며 인천연극계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