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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그리고 베이스란 악기의 매력을 새롭게 느낀 기획 공연
색깔 있는 재즈 다섯 번째 – ‘재즈 베이스 페스티벌’ (2022.10.27.~10.30.)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 – [Locomotion] 총괄 에디터)
음악을 듣는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사실 ‘베이스’(클래식의 콘트라베이스, 재즈 베이스, 그리고 대중음악에서의 베이스 기타가 이 범위에 해당할 것이다)라는 악기의 매력은 빠르게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똑같이 음률을 연주하는 악기들과 비교하자면, 더 높은 음역을 담당하고 솔로 연주의 비중도 많은 클래식 음악의 현악기-관악기, 또는 재즈-대중음악 속 기타, 건반악기 등의 소리에 비해 베이스의 소리는 그냥 리듬의 일부처럼 흘려듣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악에서 드럼 등의 무율 타악기가 소위 박자와 비트(Beat)를 담당한다면, 베이스는 이와 함께 곡의 리듬감을 책임지면서도 동시에 ‘코드의 근음’을 담당하면서 마치 건물의 철골처럼 곡의 구조를 지탱한다. 클래식 음악과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재즈, 브라질리언, 월드 뮤직 계열의 음악에서 베이스가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22.10.27.~10.29. 부평아트센터 달누리극장
2022.10.30.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
일시 | 연주 |
10.27(목) | 베이스 고재규, 김대호, 이동민 |
피아노 전용준 | |
드럼 이성구 | |
10.28(금) | 베이스 전제곤, 김인영, 전창민 |
피아노 심규민 | |
드럼 송준영 | |
10.29(토) | 베이스 김성수, 이원술, 김호철 |
피아노 강재훈 | |
드럼 한웅원 | |
10.30(일) | 베이스 황호규, 김영후, 강환수 |
피아노 조윤성 | |
드럼 신동진 |
그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27일부터 29일까지 부평아트센터 달누리 극장에서, 그리고 30일에는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진행된 ‘재즈 베이스 페스티벌’은 그간 우리가 잠시 놓치고 있었던 베이스라는 악기의 매력을 보다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이 공연은 VNB뮤직에서 매년 기획해왔던 ‘색깔 있는 재즈’ 시리즈 공연의 다섯 번째 순서로, 4일간 매일 3명의 다른 재즈 베이시스트들이 각각 출연해 대중음악 공연은 물론 일반적 재즈 밴드 공연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베이스 사운드의 향연을 만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무대는 재즈 베이스 3대가 중심에 배치되었고, 드럼과 피아노가 양편에 추가된 구조였다. 그리고 곡의 형태에 따라 베이시스트들이 곡에 따라 서로 리더를 바꿔 솔로-듀엣-3중주를 하기도 하고, 베이스-피아노-드럼의 트리오-쿼텟(4인)-퀸텟(5인) 연주를 하기도 하는 등 매우 다채로운 조합의 무대를 펼쳤다.
필자는 개인 사정상 27일 첫날 공연과 30일 마지막 날 공연을 다녀왔는데, 첫날 공연에 참여한 베이시스트들은 고재규, 김대호, 이동민이었다. 먼저 제주 출신의 재즈 베이시스트 고재규는 2010년 ‘아웃 포스트’라는 밴드로 데뷔한 후 현재까지 여러 밴드를 거치며 각종 페스티벌과 레코딩 세션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왔다. 2015년에는 독일 재즈 코리아 페스티벌로 유럽 6개 도시 투어에도 참여했고, 가수 JK김동욱의 재즈 프로젝트 앨범 [Basement Claxxics]에서도 참여한 바 있다. 한편, 김대호는 고교 시절에 흑인 음악과 애시드 재즈에 심취해 일렉트릭 베이스부터 연주를 시작했고 대학 시절 재즈 연주자로 방향을 전환해 타고난 절대음감과 따뜻한 톤,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인 연주로 한국 재즈 씬의 좋은 연주자로 인정받았다. 2017년 유명 재즈 보컬리스트 커트 엘링(Kurt Elling)의 내한 공연에 서기도 했다. 이동민의 경우 블루지하고 스윙감 가득한 연주자를 목표로 하는 젊은 재즈 베이시스트로, 집시 밴드 라비에엘, 프리 재즈와 실험적 록 사운드를 들려준 밴드 JFC 등에 참여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다.
피아니스트 전용준, 그리고 드러머 이성구와 함께한 이 날 무대에서 세 연주자가 강조한 연주의 포인트는 바로 ‘스윙(Swing)’과 ‘스탠다드(Standard)’였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베이스가 전할 수 있는 리듬 그루브의 힘과 미국 재즈/트래디셔널 팝의 고전들의 고풍스러운 멜로디가 강조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날 무대의 첫 곡은 재즈 베이스계의 거장 레이 브라운(Ray Brown)이 1997년 후배 베이시스트 크리스찬 맥브라이드(Christian McBride), 존 클레이턴(John Clayton)과 함께했던 라이브 실황 앨범 [Super Bass]의 테마곡이었다. 어쩌면 이번 기획의 영감을 준 출발점일 수도 있을 이 트리오 베이스 연주는 짧지만 매우 강렬한 인상을 관객에게 선사했다. 이어 해럴드 앨런(Harold Arlen)의 고전 스탠다드 ‘Get Happy’의 연주에서도 같은 저음의 베이스 악기로 세 파트의 세분된 음역에서 들려주는 화려하면서도 묵직한 소리의 울림이 세 사람의 멋진 연주력으로 완벽한 합을 이뤄냈다. 이후 고재규의 ‘Buhaina Buhaina’(역시 레이 브라운 트리오의 연주로 많이 알려졌음) 연주를 시작으로 세 사람이 각각 베이스-피아노-드럼 포맷의 단독 무대를 펼쳤고, 그 이후에는 2명씩 세 가지 다른 조합으로 베이스 듀엣 시간이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다시 세 사람이 함께 모여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의 걸작 오페라 [Porgy and Bess]의 삽입곡 ‘It Ain’t Necessarily So’와 1980년 처음 발표된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를 기념하는 의미의 트랙이자 쓰리 베이스 퀸텟으로 연주된 앙코르곡 ‘Captain Bill’까지 재즈 베이스의 스윙감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10.27.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김호철)
10.28. 공연 출연진
(사진 제공: 김호철)
장소를 바꿔 진행된 10.30(일) 마지막 날 공연에 참여한 베이시스트는 황호규, 김영후, 강환수였다. 황호규는 미국 버클리 음대와 텔로니어스 멍크 인스티튜트 오브 재즈(Thelonious Monk Institute of Jazz)를 거쳐 다양한 무대 경험을 쌓았으며, 자신이 주도하는 쿼텟 밴드 포맷으로 1장의 정규작과 1장의 라이브 앨범을 공개한 바 있다. 김영후는 2007년 자라섬 국제 재즈 콩쿠르에서 주목받으면서 데뷔했고, 창작곡으로 구성된 2장의 앨범을 통해 꾸준히 한국 재즈의 대중화를 꿈꿔온 베이시스트다. 한편, 강환수는 미국 유학을 통해 Manhattan School of Music에서 석사를 마쳤고 현지에서 한국인 음악가들과 재즈 힙합 스타일의 밴드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작년에 뉴욕에서 녹음한 첫 트리오 앨범 [We Go Forward]로 본격적 창작 결과물을 내놓았다.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드러머 신동진이라는 최고의 연주자들도 함께했다.
이날은 세 명의 주인공들이 각각 세 부분으로 나눠서 공연을 진행해갔는데, 황호규는 웨인 쇼터(Wayne Shorter)의 ‘Aung San Suu Kyi’를 포함해 40년대 발표된 스탠다드 곡 ‘Stella by Starlight’ 등 동료 베이스 연주자들과 함께한 곡들까지 좀 더 과감하게 테크니컬한 연주와 분위기로 공연을 이끌어갔다. 이어서 강환수는 그와 달리 속도감을 추구하기보다는 연주의 안정감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자신의 곡 ‘PDL’을 비롯해 ‘Once in a Lifetime’ 등 자작곡들을 동료 베이시스트들과 함께 2-3 베이스 특유의 묵직함으로 재해석해냈다. 그리고 마지막 주도를 한 김영후는 조빔(Jobim)의 ‘Luiza’,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의 ‘El Ciego’,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OST ‘Bistro Fada’ 등 재즈 팬들에겐 친숙한 곡들을 베이스의 세심한 터치와 그루브로 세련되고 낭만적인 무드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으로 모든 연주자가 등장해 빌 에번스(Bill Evans)의 ‘Waltz for Debby’를 끝으로 거의 2시간에 가까운 멋진 가을밤의 베이스 축제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0.29. 공연 모습과 출연진 사진
(사진 제공: 김호철)
10.30. 공연 모습
(사진 제공: 김호철)
이번 ‘재즈 베이스 페스티벌’을 통해서 개인적으로는 재즈 음악 속에서 베이스가 갖는 매력을 더욱 깊고 진지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 일반 대중을 넘어서 재즈 애호가들에게도 더 색다른 매력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무대가 앞으로도 계속 인천 지역에서 개최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글 김성환(음악저널리스트 – [Locomotion] 총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