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미추홀의 사람 그리고 삶을 담은 장소
미추홀학산문화원, 박성희 사무국장과의 인터뷰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광명 21세기사회교육원 교육실장, 2004년~2006년까지는 공연단체인 아냐야 네트워크 기획팀장을 역임했다.
이후 미디어교육연구소 총괄PD(2006년~2012년)로 재직하던 당시 인천 남구(현 미추홀구) <미디어창조도시> 만들기 연구용역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미추홀학산문화원에 오게 되었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미추홀학산문화원의 사무국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 외 주안미디어축제 집행위원,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포럼 생활문화분과위원,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14기 문화분과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늘빛이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끼게 해주었던 9월 말 어느 날, 미추홀학산문화원에서 박성희 사무국장과의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2003년 창립된 미추홀학산문화원은 벌써 꽉 찬 19년 동안 미추홀구 시민사회의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필자 역시 대학원 시절 이곳의 몇 가지 사업에서 간사 역할을 담당했던 경험이 있으니 인연이 적지 않은 곳이다. 무엇보다 필자가 졸업했고 현재는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서 불과 5분 거리인 지근에 있다 보니, 인터뷰를 나서는 길이 산책길처럼 가벼웠다.
지역에서 발견한 가능성
박성희 사무국장이 미추홀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1년, 미추홀학산문화원에 새로운 변화가 요구되었던 때이다. 당시 박 사무국장은 (사)미디어교육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주안영상미디어센터 소셜PD학교 기획실장과 남구학산문화원 중장기 전략 연구 용역에 함께 참여하게 되면서 인천 미추홀구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잠시 박 사무국장의 지난 이력을 되짚어 보는 것도 그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의 본래 전공은 영문학이었지만, 전공과는 먼 삶을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가 제적된 후, 서울지하철 노조(설비지부)의 외부 활동가, 1992년 광명시 민중당 국회의원 선거후보 지원 등의 여러 활동을 하였다.
그런 그가 지역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은 1992년 중반 무렵이었다고 한다. 학생운동과 잠시 몸을 담았던 노동운동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결국 시민과 지역이 바뀌지 않으면 제대로 된 변화를 이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광명 21세기사회교육원(원장 유인렬, 광명교육청 제1호 일반 사회교육시설)에서 지역 운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8년여 동안 어린이창조학교(학교 밖 대안교육), 여성아카데미, 광명 한두레생활협동조합 등 시민들을 위한 여러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을 담당했다. 이후 21세기사회교육원이 (사)미디어교육연구소로 전환되면서 방과 후 어린이 신문방송 교육사업,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사회적 기업 관련 활동, 1인 인디 저널리스트 관련 활동 등을 하면서 지역 및 시민 교육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다졌다. 한편 국악 퓨전그룹 ‘아나야’ 밴드, 노래판굿 민요판굿 <아리따>, <지하철 거리굿> 등 문화예술기획 활동을 하면서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한 감각도 익혔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인천 미추홀학산문화원까지의 인연이 연계된 것이다.
그가 처음 인천에 와서 놀랐던 것은 지역과 시민문화의 성장이었다. 1990년대에 그가 광명에서 경험했던 파일럿 성격의 여러 시민 프로그램들이 2010년대 인천에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안정적인 프로그램으로 자리 매김 했음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역사회가 가진 가능성들이 이제 비로소 꽃을 피우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미추홀의 사람- 학산마당극과 시민아카이빙….
그러나 문화원에서의 활동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2012년 그가 처음 문화원에 왔을 때만 해도 문화원의 성격은 다소 모호한 상태였다. 문화원 자체의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았던 때라 일반적으로 문화센터에서 하는 활동들이 문화원 프로그램으로 들어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문화원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기였다.
그는 먼저 지역사회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그것은 바로 문화예술로 살아나는 남구의 마당예술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었다. 남구의 오랜 전통과 문화유산에 남구 주민들의 창의적 상상과 실천이 더해 남구다운 미래를 만들고, 하는 이와 보는 이의 경계없이 더불어 참여하고 어우러지는 공동체 문화예술의 상징적 공간인 마당을 만들어 가는 일이었다.
첫 시작은 남구 21개동 주민센터와 연계해 각 동의 시민마당극단(마당예술동아리)을 조직하여 매년 학산마당극축제를 여는 일이었다. 동아리마다 마당예술강사를 연계하기 위해 강사조직에도 힘을 쏟았다. 주민과 예술가가 만나서 내가 사는 마을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해마다 풍물극 난타극 낭독극 퍼포먼스 등 장르의 경계없이 자유롭게 창작하고 발표하면서 지역문화공동체로 성장했다. 그 아홉 해 동안 1,500여 명 주민들이 참여하여 150여 편의 시민마당극이 만들어졌다. 이런 꾸준한 노력 덕분인지 학산마당극축제는 2019년 한국문화원연합회 우수프로그램 분야 우수상을 받았고, 올해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마당예술동아리 ‘마냥’(인천시각장애인복지관 연계)에서 인천시 최초 장애인극단을 만드는 성과도 거뒀다.
지금은 아쉽게도 지역의 여러 가지 상황과 부침으로 21개동 마당예술 동아리가 오롯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학산마당극은 지역공동체가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활동으로 기획되었는데, 이것은 시민공동체의 형성과 지역사회의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낼 힘이 되었다.
그런데 지역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원천 자료가 필요하고 이를 수집, 분류해서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미추홀학산문화원은 지난 2020년부터 시민 디지털 아카이브 작업을 시작했다. 시민기록활동을 그대로 아카이브에 저장하는 것은 단순히 잘 모으고 잘 정리한다는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대로 축적한 아카이브는 2~3차 가공으로 이어져 결국 지역문화의 환류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추홀의 사람- 시민들을 위한 크고 작은 마당이 필요해
“여전히 미추홀구에는 플랫폼이 부족합니다. 시민들을 위한 크고 작은 더 많은 마당을 만들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편, 당시 문화원은 학산소극장이라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지만,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그 활용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연극전용공간으로 문을 연 학산소극장은 연극 관객이 점점 줄어들었고 조명이나 음향 시설은 낙후되어 공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학산소극장의 활성화를 위해 이곳을 시민예술극장으로 바꾸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문화관광체육부 생활문화센터 조성사업이었다. 2014년 남구청 문화예술과와 협력하여 인천 생활문화센터 제1호로 선정되어 학산소극장 시설을 정비하고, 2~3층은 증축하여 학산생활문화센터 ‘마당’으로 새롭게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연극 전용 극장이었던 학산소극장이 연극 음악 춤 공연 등 복합장르 공연장으로 변모되었고, 전문예술가뿐 아니라 생활 예술인들의 공연 발표와 연습 공간으로도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 들어 다시 회복되고 있다고.
박 사무국장은 미추홀구는 문예회관이 없어서 300명이 넘는 관객을 수용하려면 다른 지자체 공연장을 사용해야 하고, 작은 미술관이나 문화 카페 등 크고 작은 문화 마당을 턱없이 부족해 다양한 문화시설 조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추홀의 사람- 10년 활동의 소회
박성희 사무국장이 미추홀학산문화원에 온 지 올해로 10년이 되었다고 한다. 10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전진했으니,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과 미흡함 역시 들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지난 10년간의 활동에 대한 소회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미추홀구가 가진 장점으로 상대적으로 인적 인프라가 풍부하다는 것을 꼽았다. 미추홀에 근거를 둔 문화예술단체도 많고, 문화예술인의 수도 다른 구에 비해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유무형 문화재가 많다는 것 역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적 자원과 역사적 자원이 풍부한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이러한 문화적 역량을 아우를 수 있는 플랫폼은 부족한 편이라는 점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절대적 예산의 부족은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마당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많은 한계를 가지게 한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고백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때, 기초문화재단의 설립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 따른 의견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최근 인천의 많은 구에서 기초문화재단 설립이 이어지면서 이를 기반으로 한 문화예술 분야의 육성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미추홀구의 상황은 어떠한 것일까? 더구나 현재 미추홀학산문화원의 역할은 기초문화재단의 역할을 다소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에 더욱 그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소 조심스럽지만 박 사무국장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자 했다.
박 사무국장은 충분한 준비 없이 재단을 설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는 미추홀구 전체의 상황을 조망하며 충분한 연구와 준비를 통해 타당성을 도출하고, 미추홀구에 가장 합당한 모델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무엇보다 기초문화재단의 설립에는 지역의 역사성을 충분히 인식한 시민 주체들의 적극적인 여론 형성이 필요함을 피력하는 한편, 그 주체들을 통한 민주적 절차와 과정이 아니라면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음을 염려하였다. 특히 기초문화재단과 문화원의 역할 분담에 대한 충분한 상호 이해와 합의 없이는 양 기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경기도 이천의 기초문화재단 설립 모델을 벤치마킹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였다. 미추홀구 지자체장과 의회의 의지, 그에 따른 보다 확장된 문화조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일 것이다.
칸막이 행정을 넘어서는 정책적 관점이 아쉽다
기초문화재단의 설립은 충분한 지역사회의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현재 미추홀학산문화원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동력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박 사무국장은 통합과 통섭을 추구하는 정책적 관점을 강조하였다.
현재 문화원에서는 문화뿐만 아니라 복지·교육·생태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것을 운영하는 행정적인 지원들이다. 특히 예산과 관련해서 운영 면에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각각의 영역에 지원되는 예산이 상이하고, 실제 운영에서는 이러한 예산상의 틀을 넘어서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함께 운영할 때 시너지가 될 수 있는 영역들도 각각의 행정적 칸막이에 갇혀 축소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드러낸다.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해야 하는 문화원의 특성상, 예산을 좀 더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연한 정책적 관점이 더 요구된다고 덧붙일 수 있으리라.
생물의 디아스포라를 구현하는 용현 갯골
박성희 사무국장은 미추홀학산문화원에서 지난 10년 동안 미추홀의 사람과 삶을 성장시키고 구축하는데 열의를 쏟았고, 그 성과들을 기록물로 남기는 작업을 해왔다. 그렇다면 이제 문화원의 20주년, 그리고 박 사무국장 개인의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어떤 사업에 대한 포부를 가지고 있을까?
박 사무국장은 지역의 생태자원과 관련된 사업들을 대표로 내세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생태적인 문제를 그저 환경단체의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생태자원을 회복하고 보호하는 일만큼 시민사회의 협력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이 없다. 문화예술은 바로 이 시민사회의 협력을 이끄는 근원적인 동력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현재 미추홀학산문화원은 지역의 생태자원을 지역의 문화적 동력으로 연결하기 위해 바닷길, 산길, 철길을 주제로 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기획하고 있다. 2022년에 특히 더 관심을 가진 곳은 용현 갯골이다. 학익 유수지로 널리 알려진 용현 갯골은 미추홀구에 남은 유일한 유수지로서 지역의 생태자원을 대표하는 장소이다. 특히 사시사철 철새를 볼 수 있는 장소로 생태연구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박 사무국장은 이러한 용현 갯골을 생물의 디아스포라를 구현하는 허브로 부각함으로써 미추홀구의 새로운 정체성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한다.
용현 갯골 전경
(사진 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미추홀 생태문화자원 가치확산을 위한 용현갯골 시민펀딩 안내판 제막식
(사진 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용현 갯골 안내판
(사진 제공: 미추홀학산문화원)
미추홀에서 세계시민 되기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는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미추홀학산문화원은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과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교과목 내에 지역의 문제를 통해 학생들의 세계 시민성을 함양하고자 하는 수업이 있는데, 거기서 가장 주목하는 것 중 하나가 지역의 생태자원과 관련된 문제들이다. 하지만 이 수업의 커리큘럼 내에서 용현 갯골에 주목했던 바가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
세계 시민성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그 출발점은 바로 우리가 사는 지역, 그 안의 현안부터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이리라. 그 주체가 대학이라면, 그 대학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역사회와의 협업은 필수적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세계 시민적 문제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해왔던 것에 대한 깊은 아쉬움을 느끼며, 이번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번 생각을 다듬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박성희 사무국장과 만남을 통해 ‘미추홀에서 세계시민 되기’라는 보다 구체화된 의제를 얻어낸 것은 필자에게도 큰 소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미추홀학산문화원과 더욱 긴밀한 협력을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심으로 이번 인터뷰를 마감하고자 한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