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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강화문화재 야행’ 스케치
(2022.9.23.(금) ~ 9.24(토) / 인천 강화군 강화읍 용흥궁공원 일원)
김시언 (시인)
2022년 9월 23(금)일부터 24일까지 ‘2022 강화문화재 야행’이 강화읍 용흥궁공원 일대에서 열렸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추분에 열린 이 행사는 ‘고려의 밤을 품다’라는 부제를 달고 진행됐다. 모처럼 열리는 큰 행사여서인지 용흥궁공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행사가 열린 이틀 동안 강화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행사장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2022 강화문화재야행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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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강화문화재 야행’ 부대행사는 오후 여섯 시부터 열한 시까지, 무대행사는 오후 일곱시부터는 진행됐다. 상설 프로그램은 야경(夜景), 야로(夜路), 야설(夜設), 야사(夜史), 야시(夜市), 야식(夜食). 야경은 별빛달빛야행빛 별빛달빛포토존, 야로는 강화야행마차 강화문화산책 도전고려벨, 야설은 토크콘서트 음악콘서트, 야사는 원도심도보여행 강화나들이투어, 야시는 전통 한복체험, 야식은 강화 상상생장터, 강화저잣거리, 글로벌셰프고등학교 장터가 열렸다. 식전행사를 진행하는 프로그램 코너에는 각각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체험 프로그램은 AR고려궁지 체험, 전통한복체험, 강화화문석체험이 각각 열렸다.
개막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사진 제공: 김시언)
‘개막 퍼레이드’ 리허설이 끝날 즈음에는 행사장이 사람들로 꽉 찼다. 저글링, 불쇼, 콩콩이 탄 사람들이 개막 전에 분위기를 지폈다. 왕과 왕비로 코스프레한 일행이 앞섰고, 그 뒤로 전구 인형을 든 사람들이 지나갔다. 전구 인형을 무등 태운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어린이들의 손을 잡아주었고, 어린이들은 그들의 손을 잡기 위해 따라갔다. 불쇼에서는 콩콩이를 탄 사람이 재주를 넘을 때마다 사람들이 “와우!” 하면서 감탄사를 질렀다. 강화초등학교 관현악단, ‘강화열두가락농악’ 팀이 흥을 한층 돋웠다.
무대 행사를 관람하는 사람들, 무대위에 달 모양을 띄워놓았다.
(사진 제공: 김시언)
성공회 강화성당에서 바라본 행사 모습.
(사진 제공: 김시언)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성공회 강화성당 위로 달이 둥실 떠 있었다. 본 행사가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야시와 야식 코너에는 사람이 많았다. 할머니 몇 분은 유모차에 의자와 스티로폼을 가지고 와 자리를 폈고, 지팡이 짚고 나온 노인이 많았다. 어린이들이 어른의 키에 가려 잘 안 보인다고 칭얼거리니까 아빠가 아이를 덥석 안아 올려 무등을 태웠다. 주말인 만큼 가족 단위로 많이 나와 있었고, 연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야식 코너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서 전이나 인삼막걸리를 주문하거나 먹었다. 특히 글로벌셰프고등학교 차량 시식 코너에는 줄이 한참 늘어서 있었다. 식전 행사가 흥을 돋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강화문화제 야행을 시작하겠습니다.” 군수의 개막선언과 함께 야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사람이 많아서 무대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은 성공회 강화성당 쪽으로 올라갔다.
야로 프로그램인 원도심 도보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A코스는 고려궁지, 성공회 강화성당, 용흥궁에서는 각 구역 담당 문화해설사가 문화유산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B코스는 강화문학관 앞 종합안내소에서 출발해 김상용 순절비, 왕의 길, 강화산성 남문, 용흥궁을 돌았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해설사를 따라나섰다. 해설사는 “1947년부터 강화에는 직물공장이 많았어요. 130개 정도가 있었고, 직공도 4000명이나 됐죠.” 심도 직물 굴뚝 앞에서부터 도보여행이 시작됐다.
원도심 투어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
(사진 제공: 김시언)
“강화의 자연, 역사, 문화를 즐기세요!” 평소에도 운행되는 ‘강화이야기투어’ eBike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려궁지 성곽길을 친환경 전기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역사여행이라 인기가 많았다. 강화 이야기 투어 탑승장에서 출발해 이화견직 담장길, 김상용 순절비, 성공회 성당 담장길, 강화문학관을 거쳐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환한 불빛으로 치장한 전기자전거가 지나갈 때면 사람들은 길을 열어주었다.
행사가 진행되면서 청사초롱을 든 사람이 많아졌다. 한복입기 체험을 하거나 원도심 도보여행에 참여하면 청사초롱을 주었다. 남자 중학생 몇몇이 여자 한복을 입고 다녔는데, 그들은 치마가 어색한지 치맛자락을 붙잡고 다녔다. 첫날에는 가수 린과 장윤정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다. 야시에서는 그 가수들한테 주라는 꽃바구니도 팔았다.
한창 구경하는데 젊은 여자분들이 옆에 다가와 물었다. “장윤정 나왔어요?” 그들은 부산에서 여행 온 사람들인데 숙소에서 읍에 구경나왔다가 행사를 보는 거라고 했다. “날짜가 맞아서 얻어걸렸어요.” 원주에서 강화 여행을 왔다는 여자 분도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워했다.
행사가 열린 용흥궁공원은 문화재로 둘러싸여 있다.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 강화성당, 강화초등학교를 비롯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쉰다. 강화를 일컬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어린이들이 풍선쇼를 즐긴다.
(사진 제공: 김시언)
둘쨋날도 사람이 많았다. 첫날보다 차분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도 강화 이야기 투어는 행사장을 돌면서 인기가 많았다. 행사장에는 초등학생들은 술래잡기를 하거나 그들만의 놀이로 밤을 즐겼다. 밤에 나와서 노는 자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대에서는 음악 콘서트가 열렸고, 야식코너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가게 앞에 나와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함께 즐겼다. 밤에 모인다는 것, 함께 논다는 것, 함께한다는 것이 즐거워 보였다. 아카펠라 그룹의 화음도 맑고 좋아 박수를 많이 받았다. 그 뒤에 무대에 오른 퓨전국악 팀도 인기가 많았다. 중학생들은 끼리끼리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놀았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참여한 ‘도전! 고려벨’에는 진지하게 문제를 듣고 답을 맞췄다. 이어서 음악콘서트가 열렸고, 곧바로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야설 프로그램에는 요즘 역사 분야로 한창 인기를 누리는 최태성 강사가 나와 토크콘서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한 때가 밤 아홉시였는데 사람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강사는 고려의 문인 이규보 선생을 서두에 꺼내고 퀴즈를 냈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토크콘서트에 참여했다. 참고로, 강화군 길상면에 이규보의 묘가 있다. 답을 맞춘 사람은 강화인삼이나 강화섬쌀을 상품으로 받았다. 가을밤이 무르익어갈수록 토크쇼는 점점 열기를 띠었다.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도 사람이 줄지 않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야외활동을 하기에 딱 좋은 날이기도 했지만, 강화 사람들이 행사를 그만큼 즐겼다는 게 아닐까. 만물이 익어가는 계절, 그 가을밤에 고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듯 사람들 가슴에 녹아들었다.
김시언(金翅言, Kim siun)
2013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 <도끼발>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