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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 – 금병 심명구 회장 탄생 100년 전시회
금병 심명구 탄생 100년 기념전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 / 2022. 9. 15.∼11. 15/선광갤러리
김윤식 (시인 /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1995년 봄이 얼마쯤 지나고 있을 때로 생각된다. 신포시장 윗길에서 빠져나와 중소기업은행 쪽을 향해 약간의 경사 길을 오르려는 순간, 막 왼쪽 길 모서리를 꺾어 걸어 내려오시던 금병(錦屛) 회장님을 정면으로 마주 뵈었던 것이다. 점심 식사 때가 임박한 낮 시간이었다. 이미 나는 이르게 점심을 하고는 서둘러 시장을 빠져나가던 길이었기 때문에 이 시간만큼은 기억이 분명하다.
금병 회장님은 서너 명의 직원들과 동행하셨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얼른 예를 갖춰 인사를 올렸다. 회장님께서는 오오, 하시며 받아 주셨다. 지나가던 어느 젊은 사람 하나가(당신 회사의 한 직원이거나, 당신을 알고 있는 어떤 젊은 사람으로) 당신께 인사를 하니, 단순히 답례해 주신 그런 표정이 아니셨다. 분명 이쪽을 기억하고 계시는 끄덕임이었고, 눈웃음이셨다.
금병 심명구 탄생 100주년 기념전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
전시 포스터
주식회사 선광공사 사옥 시절의 사진
(현재는 선광미술관)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금병 회장님은 사실, 이미 그 이전에 여러 차례 뵌 적이 있었다. 동종 업계 또 다른 회사의 어른을 10년 넘게 모시고 있던 터여서 비교적 자주 뵐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도, 불과 몇 초의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직접 말씀을 전달해 드렸던 경우도 서너 번 있었다. 그렇게 뵈었던 젊은 사람을 기억하시고 인사를 받아 주셨던 것이다. 후일에 알게 된 바지만, 그날 금병 회장님의 신포시장 쪽 행차는 직원들과 점심을 하시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날 드신 점심 식사가 칼국수였는지, 생선 매운탕이었는지, 시장 안 자매식당 백반이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회장님 곁에서 긴 시간을 지낸 적이 없으니 자세히는 모르나, 음성이 높지 않고 말씀이 길지 않으신 분, 이따금씩 직원들과 함께 시장 근처에서도 점심을 하시는 소탈하고 다정하신 분……, 그런 분으로 오늘날까지 ‘시간을 건너’ 내 기억 속에 와 계신다.
선광 신컨테이터 터미널 전경 (SNCT)
(사진제공: 선광문화재단)
㈜선광의 연혁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선광문화재단 소관 선광 갤러리에서 2022년 9월 15일부터 11월 15일까지 두 달간 개최되는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 전시회는 올해 2022년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인천의 대표적인 기업, 선광(鮮光) 그룹의 창업자 금병 심명구(沈明求, 1922∼2008) 회장의 평생 기업 경영 열정과 선광 그룹 74년 역사의 자취를 연대(年代)에 따라 좇는 전기적(傳記的) 성격의 특별전이다.
전시장 1층, 주제별로 제1부에는 1948년 4월 보세 창고업자 ‘선광공사(鮮光公社)’의 창업에서부터 1961년 법인체로의 확장, 이후 일익(日益) 눈부신 번창과 함께 2000년대, 그리고 오늘 이 순간에 이르는 도정(道程) 동안 심 회장 관련 기사, 문서 등의 기록물. 사진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훈장, 표창 등의 수상 기록물들도 비치되어 있다.
선광 인천 본사 및 SILO 모습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선광의 군산 SILO 모습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별실처럼 구획이 되어 있는 한쪽 공간에는 심 회장 생전에 친분이 있었거나 업계 관련, 혹은 주변 인사 몇 사람의 증언 녹음이 흘러나온다. 그 회고 증언 중에 심 회장이 “고생하는 사람들, 어려운 사람들한테 우리가 베풀어야 한다.”라고 했던 까닭에 선광문화재단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자못 인상 깊다. 이 구절은 녹음이 음성이 나오는 구획 벽면에 전사(轉寫)되어 있다.
아무튼 이러한 전시 모습이라면, 여느 인물 관련 상설 기념관 같은 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식 그대로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제2부의 전시 내용은 다르다. 심 회장의 기록 자료가 아니라 청송(靑松) 심 씨 대종회장(大宗會長)으로서 평생 소중히 보존, 소장해 온 기록물들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2층 전시장에는 심 회장 개인이나 회사 관련 역사물들이 아닌, 모두 문중, 선대의 문헌, 족보 등이 수장되어 있는 것이다.
심씨 가문에서 보관해 온 서적과 수장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선광문화재단)
또 한 가지 특징할 것은 제3부. 심 회장 생전 일상의 손때 묻은 소박한 골동류(骨董類) 유품들과 수종의 고문헌, 그리고 소시(少時)에 학습하던 한문 서책 등속이 진열되어 있어 오늘날 우리 세대가 만나기 어려운 귀중한 유물로서 크게 값어치 한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본래 일반 전시장으로 쓰이던 이 2층을 차제에 금병 심명구 회장 상설기념관으로 운영한다는 전언이고 보면, 시민들이 여기 귀중한 유물들을 항시 쉽게 접할 수 있는 점도 또 한 가지 특장이 될 것이다.
이쯤에서 이번 전시회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을 말한다면 한 마디로 ‘차분하고 묵묵한 느낌’이라고 하겠다. 부(富)를 가지고, 명예 소유한 분들의 탄생 100년을 알리는 전시에서 흔히 보이는 호화와 허세 같은 것을 여기서는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는 “음성이 높지 않고 말씀이 길지 않으신 분, 이따금씩 직원들과 함께 시장 근처에서도 점심을 하시는 소탈하고 다정하신 분” 그 성품 그대로다. 전시회 명칭과 같이 그저 조용히 「시간을 건너 당신에게로」 다가갈 뿐이다. 그래서 세 번을 가 그 앞에 서 있는 동안, 그때마다 전시장 공간을 채우는 고적(孤寂) 속에서 오히려 편안히 웃으시는 금병 회장님의 눈매가 느껴졌던 것이다.
선대의 가보를 지키다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선대의 가보를 지키다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심돈영 교지
(사진 제공: 선광미술관)
이 기획에 대해서도 아무리 박하게 품평을 한다 해도 손녀 심우현의 의도는 곱고 분명하다고 상찬한다. 대를 이은 혈육이어서 차라리 더 곱고, 조부의 삶과 조부께서 인천 땅, 인천항에서, 숱한 고뇌와 좌절을 이기고 선광을 성업(成業)해 오늘에 이르도록 74년의 자취를, 최소한 인천 시민들과는 함께 돌아보고 그 궤적을 기억 속에 가감 없이 공유하자는 객관적 태도에서 분명하다는 것이다.
간독
연행록
청송세고
청송심씨 대동세보
(사진 제공: 선광문화재단)
김윤식 (시인,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했다. 198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고래를 기다리며』 외 4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인천문인협회 인천시지회장과 인천문화재단 3기 이사, 그리고 인천문화재단 제4대 대표이사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