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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통신 3.0은 2022년에 ‘문화도시’와 ‘포스트 코로나’를 주제로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2022년 9월호 기획특집은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문화예술 분야의 대응방안’를 주제로, 지속 가능한 환경을 위한 문화예술 정책방향과
문화예술현장의 실천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 편집자 주 –

가방으로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박은정 (사회적기업 그린앤프로덕트 대표)

저는 손재주가 좋은 편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가정시간에 주머니 만들기를 하면 주머니에 자수까지 넣어 갔었고, 남는 원단으로 곰 인형까지 만들어서 가정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구멍 뚫린 양말로 인형의 옷을 만들기도 했었고, 아빠가 하시던 미용실의 커트 보로 이상한 치마를 만들어 입고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섬유제품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와서도 저는 원단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잡지에 나온 예쁜 가방 사진을 가지고 저만의 가방으로 다시 만들어 팔기도 하고,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든 가방을 받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박은정 대표가 만든 가방

박은정 대표가 만든 가방 (사진 제공: 박은정)

몇 년 후 저에게 개인적인 위기가 찾아왔고 힘든 시간의 터널 속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힘든 터널로부터 빠져나올 방법은 나 자신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떠오른 행복의 기억은 대학교 시절 가방을 만들었던 기억이었고 다시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안 입는 옷들을 잘라 옷에 남아 있는 특이한 부분들을 활용하여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소매, 깃, 단추, 지퍼 등을 가방에 어떤 장식으로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도 너무 재밌었습니다. 사람들도 좋아했습니다. 블로그도 운영했는데 방문자 수가 무려 4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연히 시작한 이 활동이, 실은 모두 ‘업싸이클링 디자인’ 활동이라는 것도 그때 당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업싸이클링 디자인이란 ‘버려지는 것에 가치를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버려질 것을 버리지 않고 재탄생 시킴으로써 폐기물을 줄이게 됩니다.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그저 나의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 시작한 일인데 이 일이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이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를 통해 저의 사적인 즐거움 추구는 공동체를 위한 사명감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저는 더욱 열심히 헌 옷 ‘업싸이클링’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블로그의 방문자 수도 쑥쑥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쌓여가는 예쁜 헌 옷 업싸이클링 가방만큼이나 잘려나간 자투리 헌옷 쓰레기들도 쑥쑥 쌓여갔습니다.

업싸이클링 디자인의 재료들

업싸이클링 디자인의 재료들 (사진 제공: 박은정)

어느 날이었습니다. 더러워진 집안을 청소하려고 보니 모아둔 헌옷 자투리들이 2마대 자루나 쌓여 있었습니다. 지구를 구하는 가방을 만드는데 이런 쓰레기도 버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투리들을 모아 쿠션도 만들고, 악세사리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자투리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고민은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가방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저는 현재 PET병 재활용 섬유로 만든 원단을 활용해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주문한 기념품 가방을 만들어 납품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지구의 잔존폐기물 감소를 목표로, 지구와 인간이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드는 것을 사회적 사명(Social Mission)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만드는 가방들은 99% 이상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소재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가방을 많이 만들어 내면 만들어 낼수록 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단은 많이 사용되고, 그만큼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의 양 또한 줄어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현재까지 저희가 생산한 폐플라스틱 재활용 원단 제품은 약 20만 장 정도이고, 평균적으로 가방 1개당 500ml PET병 4개 분량이 사용되었다고 했을 때 80만 개의 500ml 페트병을 재활용하여 페트병 폐기물을 줄였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연간 페트병 사용량에 비하면 우리 회사의 재활용량은 아직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우리나라의 연간 페트병 사용량이 59억 개에 달하는 반면, 우리 회사는 연간 약 20만 개 정도의 페트병을 재활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비율로 치면 국내 전체 페트병 사용량의 0.003%에 불과합니다. 비록 계량화했을 시, 미미한 숫자처럼 보일지라도 이를 실천하며 느낀 수많은 성취감과 효능감은 0.003%라는 숫자 속에 다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린앤프로덕트에서 생산하는 제품 사진

그린앤프로덕트에서 생산하는 제품 사진
(사진 제공: 박은정)

대학교 시절,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내가 즐겁고 행복해서 원단으로 예쁜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그 가방을 판매하기도 했고 지인들에게 선물하기도 하며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그 시절 느낀 행복이 어떤 대가를 바란 것도 아닌 맹목적인 행복 그 자체였듯이, 현재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여나가며 느끼는 성취감과 효능감 역시 맹목적인 행복일 것입니다.

물론 현재의 성과에 머물러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현재 PET병 재활용 방식이 그 자체로 완성형의 모델이 아니듯, 보다 지구를 위한 방법들을 수정 및 보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플라스틱이 다 썩는 데 6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반면 플라스틱이 탄생한 지는 100여 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나 그 심각성이 조급함으로 번져나가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가장 근원적인 맹목적인 행복감을 잃지 않으며 꾸준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린앤프로덕트에서 생산하는 가방과 다른 제품들의 사진

그린앤프로덕트에서 생산하는 가방과 다른 제품들의 사진
(사진 제공: 박은정)

박은정

박은정 朴恩正 (그리앤프로덕트 대표)

제일모직과 영원아웃도어에서 등에서 패션 관련 디자이너로 근무하였으며, 현재는 자원순환 친환경제품을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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