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한여름 밤의 낭만으로 가득했던 음악의 향연,
‘2022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 – [Locomotion] 총괄 에디터)
지난 2015년부터 송도국제도시의 문화공간 트라이보울을 운영하는 인천문화재단에서 기획, 진행해왔던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은 올해로 벌써 8번째 행사를 맞이하며 인천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지난 2년간 어쩔 수 없이 실내공간에서 열릴 수밖에 없었던 이 축제가 3년 만에 다시 트라이보울과 그 앞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무료 행사로 진행되었다.
첫째 날인 금요일에는 이미 일기예보에서 초저녁에 비가 올 예고가 되어있었기에 혹시 공연이 실내로 옮겨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러나 5시쯤 잠시 소나기가 내린 후에는 마치 이 행사를 배려하는 것처럼 비가 멈추었고, 예정대로 행사가 진행되면서 공연 무대가 설치된 트라이보울 앞 야외광장에는 관객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무대가 물이 얕게 차 있는 수면 위에 설치되어 색다른 느낌을 선사했고, 규모는 작지만 푸드 트럭 등 행사에 필요한 부대 시설은 잘 갖춰져 있었다. 만약의 강우를 대비하여 안내대에서는 관객들에게 무료로 우비를 제공하기도 했다.
첫째 날 공연은 가장 먼저 인디 씬의 주목받는 팝 발라드 싱어 우예린의 무대로 막을 열었다. 감성적 팝 발라드를 주로 들려주었던 그녀는 이번 무대에서는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공연의 콘셉트에 맞게 밴드의 편곡을 바탕으로 자신의 히트곡과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의 커버까지 들려주며 공연의 시작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원래 우예린과 함께 무대에 설 예정이었던 이정선 밴드가 멤버들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참석하지 못하면서 대타로 투입된 싱어송라이터 모트(Motte)가 바통을 넘겨받았고, 모트는 이미 여러 음악 페스티벌에서 대중과 만나온 센스를 발휘하며 관객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자신의 히트곡 <도망가지 마>, <시차> 등과 장덕 트리뷰트 앨범 속에서 불렀던 <점점 더 가까워져요> 등으로 공연의 분위기는 적절히 예열되었다.
우예린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모트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이어진 윤석철 트리오의 공연은 2010년대를 관통하며 한국의 재즈 씬에서 확실한 자신만의 창작곡들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뮤지션답게, 재즈 스탠다드 연주의 기본기를 충실히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개성을 마음껏 펼친 무대였다. 바람이 많이 불고 있던, 연주자로서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다해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윤석철과 정상이(베이스), 김영진(드럼) 세 사람의 연주 합은 깔끔하면서도 흥이 넘쳐서 해당 곡들을 거의 처음 접하는 관객들도 자연스럽게 그 연주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였다.
첫째 날의 마지막 무대는 현재 한국에서 집시 기타/라틴 기타 연주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기타리스트 박주원의 밴드와 게스트 보컬리스트 최백호의 공연이었다. 먼저 박주원은 자신의 곡 중에서 드라마에 삽입되어 비교적 대중에게 멜로디가 익숙한 <러브픽션>, 과 함께, 자신의 대표곡 <슬픔의 피에스타>까지 청중을 사로잡는 화려한 기타 연주곡들을 들려주었다. 이어서 등장한 최백호는 <영일만 친구>나 <뛰어> 같은 과거 히트곡들부터 최근 앨범 [불혹]에 수록된 <바다 끝>까지 다양한 곡들을 박주원의 기타에 맞춰 들려주면서 ‘백전노장의 원숙한 가창’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윤석철 트리오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보컬리스트 최백호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기타리스트 박주원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둘째 날 토요일에는 4시부터 공연들이 시작되기에 조금 미리 현장에 도착했다. 첫날 비 때문에 열리지 못했던 나이트 마켓 등의 부대 행사들이 맑은 날씨 아래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먼저 메인 공연에 앞서서 ‘트라이보울 초이스’라는 이름으로 3명의 예술가의 무대가 펼쳐졌다. 가족 관객들과 아이들이 좋아했던 MC 선호의 비눗방울 쇼에 이어, 재즈를 기반으로 R&B/소울의 요소가 섞인 대중적 사운드를 펼치는 그룹 애쉬(A.S.H)는 <I Wanna Go Somewhere> 등 자신들의 곡과 팝 커버 트랙들을 통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끌어올렸다. 이어서 무대에 올라온 포크 뮤지션 전유동은 오직 자신의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바탕으로 공연을 끌어갔는데, 자연 속 생물들을 주제로 만드는 그의 서정적이며 사색적 노래들을 표현함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트라이보울 초이스 – 버블쇼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트라이보울 초이스 – 버블쇼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기들
아트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모습
아트마켓 운영 모습 (야간 사진)
푸드 트럭 운영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6시부터 진행된 본편 공연은 ‘클럽 야누스와 친구들’이라는 타이틀 아래, 한국 재즈의 산실이었던 클럽 ‘야누스’를 운영했던 故 박성연 님을 기리고 그곳을 거치며 현재의 위치에 올라선 3명의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사회는 유명 재즈 칼럼니스트 황덕호가 맡았다. 첫 무대는 1986년부터 야누스에서 재즈 1세대와 함께 연주했고 1989년 정식 음반 데뷔하여 지금까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얻어왔던 임인건이 장식했다. 그는 <귀로>, <군산에서>, <밤에 떠난 여행> 등 그간 자신의 앨범에 담겼던 곡들을 주로 연주했고, 화려한 솔로도 있지만 대체로 여유로우면서도 짙은 울림을 주는 그의 건반 연주는 솔로곡에서나 베이스, 첼로와의 협연에서나 서서히 지고 있던 송도의 노을과 잘 어울렸다.
두 번째 무대는 역시 야누스의 무대를 거치며 성장한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허소영이 장식했다. 스탠다드 재즈를 지향하면서 보컬 자체에 스윙감이 넘쳐흐르는 그녀의 가창은 , <Antonio’s Song> 등 재즈계의 고전 명곡들부터 등 자신의 앨범 수록곡까지 시원하게 소화해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음반에서 듣던 목소리보다 확실히 라이브에서 더 목소리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임인건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허소영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임인건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허소영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2일간의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헤드라이너는 현재 故 박성연 님에 이어 클럽 야누스를 경영하며 그 전통을 지키고 있는 관록의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무대였다. 1998년 데뷔하여 현재까지 5장의 창작곡 앨범과 4장의 커버-헌정 앨범을 발표한 그녀의 무대는 ‘무대를 장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주었다. 가장 최근 발매되었던 송창식의 노래들 – <피리 부는 사나이>, <왜 불러> 등 – 을 재즈적 커버로 트리뷰트한 [송창식 송북](2020)의 노래들로 관객의 익숙함을 끌어내기도 했고, 밴드와 함께 라이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화려한 즉흥 연주와 가창의 매력을 통해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얻어냈다. 나중에는 밴드 멤버 소개까지 그녀 특유의 스캣 보컬 형식으로 진행할 만큼 재즈 보컬이 대중에게 발휘할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준 무대였다.
말로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재즈 페스티벌 전경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말로 공연 모습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재즈 페스티벌 전경
(사진 제공: 인천문화재단)
이번 ‘2022 트라이보울 재즈 페스티벌’은 첫날 하루가 날씨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시민들의 활발한 참여로 열띤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대체로 페스티벌의 정체성을 적절히 지킨 라인업이었음에도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 깊은 이해가 있지 않은 관객들도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편하고 흥겹게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도 더 많은 공개 음악 관련 행사들이 기획되어 그간 코로나19로 꽁꽁 묶였던 시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2 트라이보울 재즈페스티벌 아카이브 영상보기
(영상 제공: 인천문화재단 트라이보울)
글/ 김성환 (음악저널리스트 – [Locomotion] 총괄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