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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1>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성장하는 도서관의 오늘
연수도서관에서 만난 김문곤 관장
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김문곤 연수도서관장 약력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88년 인천으로 왔다. 1989년 4월 공직에 입문하여 인천남부교육지원청, 인천교육연수원 등에서 근무하였다. 2006년 5월 사무관으로 승진한 이후 작전여자고등학교, 연수도서관, 인천광역시교육청에서 근무하였고, 2018년 4월 서기관 승진 이후 인천광역시교육청 소통협력담당관과 학교설립과장,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총무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2022년 1월 인천연수도서관장으로 부임하였다.
Noon in the Library
도서관을 둘러싼 익숙한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창으로 비쳐드는 햇살, 서가 가득하게 꽂혀 있는 장서……. 오래된 청춘 영화에 나올 것 같은 서정적인 풍경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는 소리, 사뿐사뿐 조심스러운 발소리, 나지막하게 건네는 말소리까지. 시각적 이미지만큼 강렬하게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지는 것은 이러한 소리들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은 책과 자료를 위해 마련된 장소이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공간을 채워가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다. 책 혹은 자료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오늘과 어제가 그리고 내일이 한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곳. 도서관이 가진 가치는 어쩌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때의 도서관이 제법 시간이 걸려 ‘찾아가야만 하는 장소’였다면 지금의 도서관은 일상 속에서 편하게 ‘들러갈 수 있는 장소’로 변모해 있다. 대형도서관뿐만 아니라 각기 특색을 가진 여러 종류의 도서관들이 도시 곳곳에 쉼터처럼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의 장소가 된 연수도서관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 개관된 이후, 연수구민들의 오랜 사랑방이 되어왔고 이제는 시민들의 문화적 수요를 가장 가까이에서 채워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수구의 어엿한 터줏대감이 된 연수도서관에서, 개관 2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동행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김문곤 관장을 만나보았다. 그가 바라보는 지향이 곧 연수도서관이 시민과 함께할 미래의 모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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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연수도서관)
청년 김문곤, 당진에서 인천으로
약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김문곤 관장은 교육행정공무원으로서 33년을 복직했다. 일선 학교에서 4년여간 근무하기도 했지만, 주로 교육청 본청 즉 교육에 따른 정책적 아젠다가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곳에서 일한 행정전문가이다. 충남 당진 출신인 그는 어떻게 인천으로 오게 되었을까?
그가 인천에 오게 된 시기는 1988년 3월, 그가 군대 제대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천에 살고 있었던 형님의 권유로 인천으로 거취를 옮기게 되었고, 그 해 7월 교육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인천에 온 지 일 년여, 1989년 4월 교육행정 공무원으로서 공직생활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천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처음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요즘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안정성 때문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몇 개월씩 임금이 미지급되는 일이 일상적이었던 당시였기에 보수를 제대로 받을 수 있고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 발령받고 좌충우돌하면서 서서히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그는 직인 누락 사건을 꺼냈다.
“학교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니, 정말이지 아찔한 실수였죠.”
첫 학교에 행정실장으로 발령이 났을 당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하룻강아지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신임이었기에 겁 없이 실수도 많이 저질렀다. 한 번은 교육청에 제출한 서류 일부에 직인이 누락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에 학교 직인을 휴지에 싸서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교육청으로 향했다. 교육청에서 직인을 꺼내 찍는데 옆에 계시던 선배가 말씀하셨다.
“우리 김 과장은 힘이 아주 센가 봅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머뭇하는 그에게 선배가 부드럽게 말을 이어갔다.
“학교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니까 말이에요.”
그때 그는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고 한다. 학교를 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니…….
그저 도장이라고만 생각하고 급한 김에 주머니에 넣고 왔던 직인. 그것의 엄청난 무게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학교의 살림뿐만 아니라 온갖 결정권을 가진 직인의 무게를 깨우쳐 준 선배의 부드럽지만 따끔한 충고는 오랜 시간 김 관장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행정가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깨닫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33년 동안, 그 말의 무게를 항상 기억하며 살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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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연수도서관)
경험은 가장 위대한 스승
김문곤 관장에게 도서관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일까? 그는 경험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고 말한다. 책이 그러한 인류의 경험을 응축한 최고의 텍스트라면, 오늘날의 도서관은 책과 함께 그 이상의 새로운 경험을 축적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변모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도서관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식하지만, 그 변화의 역사는 생각보다는 그리 길지는 않다. 김 관장은 도서관의 역할에 결정적인 변화를 촉발한 것은 주5일제였다고 환기하였다. 주5일제와 함께 도서관은 새로운 가족나들이 공간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가족이 함께, 그리고 오랜 시간을 머무를 수 있는 장소로의 변화가 요구되었다. 도서자료를 축적하고 대출해주는 기존의 역할에 더해 가족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하는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변신이 시작된 것이다.
그 때문일까? 김문곤 관장이 꼽는 연수도서관만의 특색사업은 ‘온가족 도서관 Day’사업이다. 주말에 온 가족이 도서관에 와서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2022년은 다양한 체험, 공연, 그림책 테라피 등으로 구성되었다. 다음으로 꼽는 사업은 <책 읽는 도시 인천, 만들기> 사업이다. 이는 인천광역시교육청 역점사업으로 세부사업은 많이 있지만, 특히 ‘한 도서관 한 책 캠페인’은 시민들이 직접 투표한 책 가운데서 한 권을 선택하여 지역서점, 작은도서관, 단체 등과 연계를 통해 책 읽기 릴레이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도서관의 오늘을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선정된 한 책은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박종호, 풍월당, 2021)로 시민들이 클래식을 좀 더 가깝게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며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2022년 연수가족한마당 온라인 공연
<넌 특별하단다>
2022년 연수가족한마당 온라인 공연
<도서관에 간 사자>
2022년 프랑스 샹송&문학과 함께하는 온 가족 북콘서트 『chant livres 책을 노래하다』
(사진 제공: 연수도서관)
그러나 연수도서관의 진짜 자랑거리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성인문해교육’이다. 연수구 비문해 어르신들에게 초등(2022년은 3~4학년)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개관(2004년) 이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60대 이상의 어르신 3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는 한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주 2회 비대면 전화수업으로 학습의욕을 독려하고, 참가자들에게 워크북 배포, 과제수업 등의 과정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학습하시는 어르신들이 공부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따라와 주신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는 연수도서관의 큰 자부심으로 남았다고 한다.
“도서관의 살림살이를 돌보고 모든 프로그램이 잘 운영되도록 든든한 지원자의 역할을 감당해야죠.”
김문곤 관장이 연수도서관에 온 지 6개월 남짓, 관장으로서 적응을 마친 그에게 자신의 포부와 역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관장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지원자’라고 말한다. 연수도서관은 2004년 개관한 이래 18년 동안 지역의 문화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도서관 개관 초창기인 2008년부터 2010년에 연수도서관의 관리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김문곤 관장은, 연수도서관의 성장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열정과 고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한 기관의 대표자는 무엇보다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또한 그것을 통해 최상의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 역시 기관장의 소임일 것이다. 김문곤 관장은 그 누구보다 이러한 기관장의 책무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관장으로 자신은 도서관의 살림살이를 돌보고 관내의 여러 프로그램들이 잘 운영되도록 든든하게 지원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더 빛나는 이유일 것이다.
마을교육 ‘인천의 섬 알아보기’
마을교육-가족숲체험
(사진 제공: 연수도서관)
도서관장의 ‘그 책’
도서관에 왔으니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책’이라는 흔한 질문 대신 지금 바로 책상 위에 놓인 바로 ‘그 책’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김 관장이 현재 읽고 있는 책은 『뜨거운 관심』(하우석, 다산북스, 2006)이라는 책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추천하는 두 번째 ‘그 책’은 현재 연수도서관의 한 책 캠페인 도서인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이다. 연수도서관을 찾는 시민들이 직접 고른 책이라는 점에서, 더 나아가 릴레이 독서를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을 찾아가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음악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도서관이 가진 문화융합적 성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책이리라.
김 관장이 추천하는 마지막 ‘그 책’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미치 앨봄, 공경희 역, 살림출판사, 2017)이다. 그는 이 책의 주제를 ‘어떻게 죽을지 알아야 어떻게 살지 알 수 있다.’라고 정리한다.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은 결국 삶을 더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인생을 재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적 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김 관장은 추후에는 여기서 촉발된 죽음에 대한 경쾌한 생각을 바탕으로 프로그램도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서관, 변화하는 ‘실감’
오늘의 도서관이 가진 가치는 무엇일까? 김 관장은 과거의 도서관이 지식정보가 축적된 공간으로서 기능하였다면, 오늘의 도서관은 이와 함께 교육과 문화의 가치까지 담아낸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답한다. 시민들의 문화적 양식이 변화함에 따라 도서관 역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도서관 자체도 하나의 성장하는 유기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이 현재 맞이하고 있는 시민들의 첫 번째 요구는 도서관 이용에 대한 디지털화일 것이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도서관에 대한 이용방식 역시 많이 변화하였다. 프로그램도 온라인으로 전환이 되었고 자료 이용에 대한 이용자들의 변화도 적지 않다, 특히 디지털자료 대출에 대한 이용자의 증가가 특징적이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에도 이러한 변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도 이미 디지털화는 많은 도서관의 현실적인 요구와 맞닿아 있었다. 당장에 연수도서관만 해도 자료실에 서가를 둘 공간이 해마다 부족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책들을 보존서고에 넣어두면 독자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수도서관은 복도의 공간을 책장으로 바꾸어 보존서고의 역할을 하도록 배치하고 있다고 한다. 책의 보관과 벽면 디자인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요구는 복합공간으로서의 요구이다. 팬데믹이 끝나감에 따라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합리적인 공간에 대한 요구 역시 커지고 있다. 이에 연수도서관은 복합문화공간인 ‘연수꿈터’를 마련하였다. 가족/청소년/동아리 그리고 강연을 위한 공간까지 총 4개의 공간이 분리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에 자리 잡은 ‘연수꿈터’는 포스트 팬데믹을 향한 연수도서관의 기지개를 보여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연수꿈터 사진
(사진 제공: 연수도서관)
“지역주민들의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문곤 관장이 꿈꾸는 연수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질문하였다. 김 관장은 자신이 경험한 매력적인 미래 도서관의 사례로 ‘실감서재’를 꼽았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상설로 진행하고 있는 ‘실감서재’는 미래 도서관을 예감할 수 있게 하는 전시이다. 미래 수장고에 대한 3D영상, 미래형 도서관 자료검색, 터치로 바로 번역되는 디지털 고도서 등을 실감형 콘텐츠로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김문곤 관장이 보다 집중하고 싶은 것은 도서관의 오늘이라고 한다. 오늘이 없는 미래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도서관은 언제나 시민들의 삶 가까이에 놓여 있다. 그는 연수도서관이 지역주민들의 삶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 문화활동과 쉼이 함께 있는 장소로 자리 매김하기를 바란다. 즉 열린 문화교육의 복합공간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인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은 정말 다양하다. 유아부터 어르신,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까지. 나이와 학력, 사회적 계층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는 장소이다.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장소인 것이다. 그들 모두의 니즈를 충족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은 스스로 생동하며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로부터 도서관의 미래도 가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의 말대로 도서관은 우리의 사회문화와 함께 살아 숨 쉬면서 성장하는 유기체이니 말이다.
인터뷰 진행/글 류수연
문학/문화평론가.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 현재 인천문화재단 이사이며,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