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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통신 2022년 6월호 기획 – 새정부의 문화정책에 관하여]

새 정부 국정과제의 특징과 제언

공정한 문화복지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까지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필자가 2017년 5월 15일에 작성한 “신정부 정책방향과 전라북도 발전전략”이라는 파일을 보니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정책의 핵심이 생활문화이었다면 새 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예술인복지와 창작 진흥, 예술인의 사회적 권리, 청년예술인, 동네 생활문화 등”이라고 적혀 있다. 이 설명처럼, 문재인 정부 출범 전부터 ‘블랙 리스트’(blacklist) 문제가 불거진 터라 예술인 관련 과제가 중요하였다. 문재인 정부의 문화분야 국정과제 첫 번째는 ‘생활문화 시대’였지만, 가장 힘을 실은 국정과제는 “예술인의 창작권 보장”이었다.

국정기조 3. 문화융성
국정목표 3.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국정목표 3.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공정’ 기반, “사각지대 없는” 문화복지 강조

이번 5월에 출범한 새 정부에서는 ‘보편적 문화복지’가 문화 분야 첫 번째 국정과제이고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이 두 번째 과제인데, 예술계에서 문화 뒤에 예술이 배치된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지적에도 문화복지가 첫 번째 과제가 된 걸 보면 새 정부 문화정책 방향에서 복지적 관점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통합문화이용권 지원 확대(현재 10만 원에서 2027년 15만 원 목표)가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 과제의 세부 내용에서 첫머리를 차지한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문화·예술 분야만이 아니라 스포츠·관광 분야에서도 복지가 강조된다.

문화복지는 김영삼정부에서 처음 정책화되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복지의 정책목표를 취약계층에게 문화를 누릴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한다는 것으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문화복지정책’은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복지라는 말대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분야의 사회서비스로 이해되었고,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제시된 국민의 문화적 감수성을 증진하는 ‘문화복지’ 목표는 ‘생활문화’라는 이름으로 정책화되었다.

누구는 새 정부 국정과제가 이전 정부 문화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문화정책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정부별로 정책 기조가 다르고, 대표 국정과제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필자가 생각하기에) 박근혜 정부에서 정책을 설계한 생활문화, 문화도시 정책을 실행하여 활성화하였다는 게 특징이다. 새 정부에서는 이러한 문화정책 흐름을 이어받아 더 많이 지원하되, 국정운영 원칙인 ‘공정’과 관련하여 “사각지대가 없는” 복지를 강조한다.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현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56번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바로가기)

독자적 과제로서 ‘장애예술’이 최초로 국정과제화

새 정부에서 ‘장애예술’ 분야가 국정과제 최초로 독자적 과제로 채택된 점도 공정한 문화복지와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인 문화향유를 사회복지 영역에 포함시켰고, 문화 분야에서는 별도 국정과제로 설정하지 않았다. 대신, 사회복지 국정과제(42-6)에 장애인 예술 전용극장 타당성 및 리모델링 사업이 포함되었다.

새 정부에서는 57번 국정과제 중 세부 국정과제(57-4)로 “장애예술인의 문화예술 활성화”가 포함되었다. 구체적으로, 장애예술인 전용 공연장·전시장 조성, 국공립 공연 전시장의 장애예술인 공연 전시 활성화(쿼터), 지자체 공공기관의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 구매, 장애예술인 국제교류 활성화 지원, 장애유형별 맞춤형 공모사업 지원, 장애학생 대상 특화된 문화예술교육 지원 등이 세부 사업이다. 장애가 있는 예술인이 아니라 장애예술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인정하고, 이를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는 점은 공정뿐 아니라 문화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무척 반가운 일이다. 다만 장애예술인 전용시설은 국정과제인데도 지자체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건립비도 많이 들지만, 운영이 만만치 않아서다. 지자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이동권 약자인 장애예술인에게 전용 공연장과 전시장은 한낮의 꿈에 불과하다. 지자체가 움직이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여야 하는 이유이다.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57번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전 정부 성과 이어받되, 구체적 실행에서 차이

새 정부의 문화·예술 분야 국정과제(국정56, 국정57)를 보면 이전 정부와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국가재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 대규모 건립사업도 포함되지 않아 새 정부 국정과제라 하기에는 “약하다”라는 말이 들린다. 하지만 이전 정부와 똑같은 사업이라도 구체적인 실행에서 차이가 난다.

문화도시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문재인 정부 사업계획에 따라 5차 문화도시까지 지정(2023년)하고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국정과제 이행계획에 9차 문화도시 지정(2027년)이 수립되어 있다. 문화도시 2.0(가칭)이 올해 말에 확정되면 지정제가 아니라 인증제로 바뀌거나, 신규 지정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지정하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정책목표를 설정하고 평가지표도 달라질 수 있다. 현재 문화도시 지정 과정은 문재인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새 정부에서는 “문화 활동가, 추상적 이념 중심이 아닌 지역의 실질적인 문화경쟁력·특성”을 반영할 것으로 예상하므로 같은 문화도시 지정사업이더라도 세부 실행 방향이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예술인복지와 관련해서도 ‘공정’이라는 측면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공약 개발에 참여하였던 관계자는 “국민연금 수령액이 높은 예술인은 예술인복지 지원을 받지만, 예술활동을 증명하지 못한 이른바 ‘최고은’들이 여전히 예술인복지에서 소외된다”라고 지적한다. 프리랜서 예술인의 산재보험 확대, 고용보험 가입이 어려운 저소득 예술인과 사업주에게 고용보험료 80%까지 지원, 프로젝트 지원이 아닌 예술인과 예술단체에 직접 여러 해 동안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 등이 이를 대표하는 세부 과제이다.

이전 정부 성과와 국정운영 원칙의 조화가 중요

문화정책 환경은 2000년대에 들어선 뒤로 다양한 주체가 경합하면서 지금처럼 구성되었다. 중앙종속화에서 문화분권을 거쳐 문화자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졌다. 정책 영역은 예술 중심에서 문화 일반으로 확장되었고, 문화와 예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실현이 강조되었다.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에서 ‘문화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로 인식이 확장되었다. 문화민주주의가 신앙처럼 확산하는 문제가 없진 않으나, 그래도 문화정책 곳곳에 문화민주주의 가치가 담겼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정책 최소단위가 시군구 중심에서 읍면동 생활권으로 바뀌고 있다. 그리고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새 정부 국정과제에도 이러한 성과를 이어받으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지난 정부의 많은 사업을 끝내지 않고 이어받으려는 방향이 국정과제에 담겨 있다. 사각지대가 없는 복지 역시 매우 중요한 문제로, 국정과제에서 이를 강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로 본다. 박근혜 정부에서 설계되었던 문화정책을 문재인 정부에서 받아 활성화한 것처럼, 이전 정부 정책이라도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다면 성과를 이어받아 발전시키길 기대한다. 이는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는 이유이다.

‘문화도시사업’은 대부분 지자체가 관심을 두고 도전할 정도로 인기 사업이다. 5년간 200억 원이라는 큰 예산이 투입된다는 이유도 크지만, 현장에서 오랜 시간 문화로 도시를 바꾸자는 인식을 정착하려는 많은 이들이 함께한 결과이다.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 유럽문화수도를 벤치마킹해 도입하였던 문화도시 사업이 ‘한국형’ 문화도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공정’ 등 국정운영원칙에 벗어난다고 판단되는 세부 사항은 변경이 불가피하지만, 이제 한국 상황에 맞게 자리를 잡은 문화도시사업의 기세가 꺾이지 않길 기대한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whitelist)도 주목해야 할 이슈이다. 두 단어는 금기어로 받아들여지나 현장에서는 ‘알아서 기는’, 암묵적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가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 가지를 더 제안하면, 문화의 사회적 가치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국정과제에서 말하는 보편적 문화복지는 국민이 예술을 관람하고, 배우고, 창작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예술산업을 말한다. 한마디로 예술을 즐기고, 예술로 돈을 버는 게 강조된다.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소하는 혁신의 수단이다. 문화의 본질적 가치(공유와 연대)를 통해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현대사회의 위험에 대응한다. 문화가 도시를 재생하고,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을 해소하고, 범죄율을 낮추고, 정신·심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선다. 이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보편적 문화복지,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장애예술 등 새 정부 국정과제의 실행계획에 문화의 사회적 가치 실현 전략이 녹여지고, 현장에서 실천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장세길

장세길 (전북연구원 사회문화연구부 연구위원)
1971년에 태어났다. 문화인류학 박사로, 전북연구원에서 지역문화정책을 연구한다. 문화의 사회적 가치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실현할 지가 요즘 관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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