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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문화통신 2022년 6월호 기획 – 새정부의 문화정책에 관하여]

윤석열 정부 문화정책의 전망과 제언

염신규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새 정부가 들어서면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정책 변화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된다. 정책이란 것이 본질적인 속성상 완벽하게 옳거나 맞을 수가 없고 정권 말기가 되면 지난 정부 정책 행위에 대한 비판적 성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정책들이 좋은 의도로 시작되지만 현실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오랜 관행과 충돌하며 변질되거나 충분히 실현되지 못하거나 일정한 시대적 한계 속에서 제한적 성과만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특히 새로운 정책들이 과감하게 시도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기존의 질서를 다소간은 훼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의도나 긍정적 파생 효과와는 별개로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타격이나 상실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설 무렵이면 지난 정부에 대해 다소 혹독한 평가가 나오면서 새 정부의 정책과제들이 새롭게 제시된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여러 부분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에 따른 피로감, 고립감, 우울감은 극에 달했다. 문화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면 활동이 많은 부분에 필수적인 예술작업이나 문화적 활동들이 감염병 상황으로 인해 극도로 위축되었다. 당장 체감되는 것만으로도 예술시장과 개별 예술인, 기획자들이 입은 피해는 엄청났다.

단순히 경제적 손실만으로 따질 수가 없는 게 예술 활동이란 것이 결국 시간과 기회의 교집합 속에서 미학적 측면이건 경제적 측면이건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데 진공 속 같았던 지난 2~3년간의 공백이 그것에 끼친 악영향은 단순한 셈법으로는 파악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하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문화적 고립감은 얼마나 심해졌으며 이제 조금씩 형성되었던 문화공동체가 흔적도 없이 분해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가 어떤 문화정책을 통해 난국을 헤쳐나갈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0대 대선은 다른 이슈에 밀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선 주자 중 그 누구도 문화적인 내용으로 뚜렷한 국가 운영 프레임을 제시했다고 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가 선거 당시 내세운 7가지 공약을 일단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윤석열의 7가지 약속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문화예술공약 220218 [보도자료]
(출처: 윤석열 후보 블로그, 바로가기)

첫 번째 공약으로, “지역별 문화격차 해소 및 지역 중심 문화자치시대 개막”에서는 지역에 문화기반시설을 균형 있게 설립·지원하고 거점 문화예술단체를 집중 지원하여 수도권에 편중된 문화예술생산의 균형을 찾아가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두 번째 공약으로 “전 국민 문화향유시대 확립으로 문화기본권 보장”으로 문화약자들에 대한 문화누리카드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세 번째 공약으로는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맞춤형 지원”을 내세웠다.

네 번째 공약은 “K-컬처를 세계문화의 미래로 발전”으로 한복, 한식 등 한국민족의 고유정체성이 담긴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세계에 알려 문화적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다섯 번째 공약은 “K-컬처 스타트업 지원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문화산업 선진국 도약”으로 K-컬처 관련 인력들이 스타트업으로, 그리고 스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여섯 번째 공약은 “전통문화유산을 미래의 문화자산으로 보존하고 가치 제고”로 예측 가능한 문화재 경관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문화재 영향평가제도를 도입을 꺼내놓았다.

마지막 일곱 번째 공약은 “제약 없고 공정한 장애예술인 활동기회 및 가치 제고”로 장애 예술인들이 보다 활기차게 문화시설에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공공기관에 의한 우선 구매와 유통 기회 확충을 통해 활동을 돕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딱히 문제가 있는, 나쁜 방향의 공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새로운 방향이 보이지도 않는다. 다소 야박하게 평가하자면 “문체부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겠다” 정도로 읽힌다.

국정목표 3.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
(출처: 대한민국 정책 브리핑, 바로가기)

한편 새 정부 인수위에서 5월 3일 내놓은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일상이 풍요로워지는 보편적 문화복지 실천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 ▲K-컬처의 초격차 산업화 ▲국민과 동행하는 디지털미디어 세상 ▲모두를 위한 스포츠, 촘촘한 스포츠 복지 실현 ▲여행으로 행복한 국민, 관광으로 발전하는 대한민국 ▲전통문화유산을 미래 문화자산으로 보존 및 가체 제고 등을 내세웠다. 변화하는 기술환경에 대응하여 과학기술과 적극적 결합을 통해 문화산업(K-컬처)의 경쟁력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이를 통해 보편적이고 사각지대 없는 문화향유와 예술지원을 펼치겠다로 요약되는데 마찬가지다. 21세기 이후 지금까지, 정권이 어떻게 바뀌건 간에 문체부가 거의 일관되게 펼쳐왔던 정책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예술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도구적, 혹은 기능적인 수단으로 치우쳐져 있고 예술과 문화산업의 관계를 산업적 위계 구조로 인식하고 있다(기초예술이란 표현이 이 관점에서 기인한다).

문화정책의 목표는 한편으로는 문화와 (일부)예술의 산업적 경쟁력을 강화하여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해외 수출형 콘텐츠에 대한 집중적 지원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기능도 완전히 배제하고 있지는 않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문화를 통하여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고 사회공동체에 문제 해결과 치유 기능을 할 것을 강조하며 이에 대한 지원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전자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K컬쳐(한류)”라면, 후자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문화도시”일 것이다.

“K컬쳐”이건 “문화도시”이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일방적으로,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2000년대 이후 문화산업의 약진이 가져온 엄청난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이 효과는 단지 외화를 얼마나 많이 벌어들였다는 식의 경제적 평가로만 볼 수도 없다. 문화산업의 약진은, 국민의 문화적 자긍심 고취 같은 상투적 효과 이외에도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

우선 1980년대까지 사회문화적 보수성이 엄청나게 강했던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엄청나게 바꿔놓은 것이 문화산업의 가시적인 약진이었다. 물론 전혀 의도했던 것도 아니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이 과정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차지했는지에 대한 인과관계는 거의 입증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행정부 안의 힘의 관계 측면을 보더라도 그렇다. 정부 부처 사이에서 위상과 비중이 상당히 떨어졌던 문체부가 어느 정도 힘을 갖게 된 것에 “K-컬쳐”의 약진이 기여한 바가 상당히 크다.

“문화도시”도 마찬가지다. 지역을 경쟁으로 줄 세우는 방식의 문화도시 정책에 대해 그 자체가 얼마나 문화적인가에 대한 본원적 비판을 하게 되긴 하지만 다른 측면의 긍정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여하간 문화도시 정책을 통하여 지자체와 지역공동체가 자신들의 문화정책과 문화적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화도시를 추진하고 있는 지역을 돌아다녀 보면 그 이전과 확실히 차이가 나는 지역문화 정책의 저변을 발견하게 된다.

아직은 다소 피상적으로 드러났지만 현상 유지에 좀 더 방점을 찍고 있는 윤석열 정부 문화정책 방향이 이해가 가긴 한다. 여하간 현실적으로 한국의 문화예술은 외형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 박근혜 정부의 블랙 리스트 같은 불필요한 개입만 안 하면 당분간 그 성과가 끊어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 이후 쉴 새 없이 새로운 문화정책을 쏟아져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지금까지 해온 것의 완성도를 높이자는 쪽으로 긍정적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로 다뤄지는 키워드에서 아쉬움이 느껴지는 측면이 있긴 하다. 기본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기능적인 사고와 산업 프레임으로의 해석과 발전주의 관점이 좀 더 고착화 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주 과거에는 문화와 예술을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며 정책을 수립했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산업적 구조의 자원으로만 해석하거나 사회적 문제 해결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물론 문화와 예술에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다면을 보유한 유기체이다. 사회와의 관계 맺음도 훨씬 더 복잡하다.

문화정책이 한 발짝 전진하려면 문화에 대한 발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열리고 있는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이미 그런 징후가 다가오고 있다. 단지 감염병 이후의 세상이 아니다. 기후위기 등 전 지구적 재난 상황과 탈성장 구조의 장기적 고착에서 문화는 사회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으며 어떤 미래의 문을 열 수 있을까. 문화정책은 필연적으로 사회정책으로서의 성격이 점점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더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 예를 들어 환경, 젠더, 인권, 사회적 소외 등의 복잡한 문제들이 문화정책영역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급하게 준비되었던 것이 분명하기에 다소 현상 유지의 정책 기조가 이해가 간다. 하지만 빠른 시일 안에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문화정책 프레임 재구성이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다.

염신규

염신규 (사단법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
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과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에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다큐멘터리로 문화예술계에 입문하였으며 21세기 들어서는 주로 문화활동가, 기획자, 정책연구자로 일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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