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현실에 발붙여 살다 보면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동인천역에서 멀지 않은 곳, 물질에서 벗어나 비물질로의 이주(移住)를 기다리는 실험적 공간이 있다.
LBDF(사진의도서관)은 방문객들에게 책을 통해 사진 매체의 다양성을 공유하는 공유공간이자, 사진 매체를 위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직접 제공한 서적을 주요 콘텐츠로 하는 비영리 도서관이다. LBDF(La Biblioteca de Foto)라는 공간의 이름은 보르헤스의 단편 소설 중 <바벨의 도서관(La Biblioteca de Babel)>에서 차용했다. 무한하게 발생하고 증폭될 수 있다는 개념을 소설로 보여준 보르헤스처럼, LBDF는 사진 매체가 가진 확장성에 주목하여 종이 매체의 단계별 이주 계획을 수립하고, 사진 이미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한다.
나무로 짜 맞춘 모듈 가구로 구성된 해당 공간은 사진 매체를 통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노기훈 작가가 2021년 8월 설립했다. 노기훈 작가는 사진 매체가 대중화되고 변모하는 동시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지속가능한 사진의 가능성을 찾아가기 위한 ‘사진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LBDF (사진의도서관)
(사진: 최보윤)
LBDF (사진의도서관)
(사진: 최보윤)
“사진이라는 매체는 지난 1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굳건히 믿어져 온 기록매체였어요. 종이 위 염료로, RGB 화면이라는 물리적 지지체에 의해 빛으로 나타났죠. 도서관도 마찬가지예요. 임대차 계약을 통해 물리적 공간에 갱신되어야 하는 전제조건을 가지니까요. 공간적인 배경이 필수가 되어야 하는 ‘사진’과 ‘도서관’이 이제는 가상의 세계로 진입하고 있어요. 과학기술 본위의 패러다임에서 이들이 어떻게 변신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이 공간이 시작됐어요.”
LBDF의 실험적 정신은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설치물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공간을 이루고 있는 선반, 책장과 같은 설치물은 언제든 조립, 해체, 이동이 가능하도록 짜 맞춘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마치 언제든 분해되고 어디에선가 재구성되어 바로 어디론가 의 이주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현재 LBDF는 사진과 관련된 서적을 비치한 ‘라이브러리 공간’과 사진작가들의 작업과 관련된 서적을 연구하는 ‘열람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LBDF (사진의도서관) 라이브러리 공간
(사진: 최보윤)
LBDF (사진의도서관) 라이브러리 공간
(사진: 최보윤)
개인의 사적 공간에만 머물렀던 작가들의 추천 도서를 함께 볼 수 있는 ‘라이브러리 공간’은 공유경제의 개념을 공간에 도입한다. 공유공간 운영에 뜻을 함께하는 작가들로부터 사진 관련 서적을 대여받아 운영되고 있으며, LBDF에서 추천하는 서적과 함께 참여작가들이 함께 읽고자 공유한 서적을 살펴볼 수 있다.
LBDF (사진의도서관) 열람 공간
(사진: 최보윤)
LBDF (사진의도서관) 열람 공간
(사진: 최보윤)
작가들에게 영감을 준 관련 레퍼런스를 열람할 수 있는 ‘열람 공간’은 각 작가별 대표 레퍼런스가 전면에 비치되어 있다. 흰색 패널을 열면 더 많은 작가의 레퍼런스를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는데, 비치된 레퍼런스를 통해 해당 작가의 관심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특히, 작가가 남긴 밑줄, 메모, 책갈피와 같은 흔적을 통해 해당 레퍼런스가 작가의 작품에 어떻게 영감을 주었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LBDF (사진의도서관) 셀링 플레이스
(사진: 최보윤)
LBDF (사진의도서관) 셀링 플레이스
(사진: 최보윤)
공간 한쪽에 위치한 ‘셀링 플레이스’는 참여작가들의 생산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가들의 레퍼런스, 참여작가가 소규모로 출판한 사진집 등을 위주로 상시 진열하고 있는 공간이다. 비치된 샘플을 참고하여 작가들과 관련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공간과 운영프로그램에 대한 질문에 노기훈 작가는 “현재 동시대의 사진 매체가 가진 확장성에 기반하여, 매체가 가진 힘과 요즘 젊은 작가들의 사진을 다루는 가벼운 방식이 연계된다면 더욱 다양하고 확장된 변주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며 사진 매체와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마타 유스케(鎌田 友介) 쇼케이스 전시
(제공: LBDF 사진의도서관)
커뮤니티 프로그램
(제공: LBDF 사진의도서관)
현재 LBDF는 아티스트북의 판매, 연구, 출판 지원, 교육 프로그램, 사적 아티스트 레지던시 공간 지원, 신진 작가 전시, 비평 활성화를 위한 예비 비평 시스템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는 일본 후쿠오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가마타 유스케(鎌田 友介) 작가를 초대하여 쇼케이스 전시 <IF THEY WERE ALIVE, HOW WOULD THEY LOOK THE MOON OF TONIGHT> 를 운영했다. 현재는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재학생과 연계하여 <CO-WELL> 이라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CO-WELL>은 미술 글쓰기를 경유하여 소수자 네트워크를 조직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으로 최근 5기를 마무리하고 다음 활동을 준비 중이다. 특히 프로그램 <CO-WELL> 은 기획자들과 인연이 닿아 노기훈 작가가 역으로 LBDF의 기획에 연계할 것을 역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제가 어느 지역 기반의 활동을 위주로 편성된 공모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을 때, <CO-WELL>을 알게 되었어요. 해당 프로그램이 커뮤니티에 기반한 지속 교류가 가능해야 했고 물리적 공간이 기본적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제가 역으로 LBDF에 탑재해 보자고 역 제안했죠”
노기훈 작가는 공간을 활용하여 이용자 상호 간 결속력을 가진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지속적인 교류가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밝혔다. 향후에는 기존에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하여 운영할 계획에 있다. 또한 노기훈 작가는 “연구 공간, 쉐어 오피스, 세미나실, 미팅룸, 워크스페이스, 소모임 등을 위해 자유롭게 활용이 가능해요. 사진 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목적의 활동에 열려있어요”라고 덧붙였다.
향후 LBDF가 어떠한 공간으로 예술인, 지역민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질문에 노기훈 작가는 “어떠한 활동이 일어났었던,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라요. 비슷한 형태가 다시 나타나더라도 분명 다른 시공간에서 나타나니 지금의 LBDF와는 다른 것이겠죠”라며 공간이 가진 물리적 형태에서 벗어난 향후 공간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풀어냈다.
LBDF는 분명 지금까지 존재했던 도서관이나 독립서점과는 상이하게 다른 성격을 가진다. 그곳에 베스트셀러는 없지만, 작가들의 감각을 자극한 레퍼런스들이 가득하다. 어느 날 사진의 도서관에 방문한다면 나의 감각을 깨우는 소중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동인천에서 조용히 이주를 기다리는 숨은 공간 LBDF에서 시각예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넓어지기를 바란다.
【LBDF(사진의도서관) 공간소개】
○ 주소: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 160-2, 2층
○ 대표자: 노기훈
○ 공간소개
– LBDF는 ‘사진의 도서관’을 표방하며, 책을 통해 사진 매체의 다양성을 공유하는 공유공간입니다. 사진작가 노기훈이 2021년 8월 설립했으며, 종이책의 물질성에 주목합니다. LBDF는 종이가 비물질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별 이주 계획을 수립하여 사진 이미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합니다.
○ 공간 전시 이력
– 2021.08.21.~2022.08.29. 오픈위크
– 2021.08.21.~2021.09.26. [쇼케이스1] 두상형(杜尚衡)
– 2021.12.11.~2022.05.07. [프로그램1] CO-WELL
– 2021.12.11.~2022.05.07. [쇼케이스2] 가마타 유스케(鎌田 友介)
○ 사진의도서관
– email: labibliotecadefoto@gmail.com
– 유선전화: 0507-1336-7072
–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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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 노기훈
[공간 대표자 소개]
– LBDF (사진의도서관) 대표 노기훈 작가
– E-mail : nokihun@naver.com
○ 개인전
– 2020 금호미술관, 서울
– 2019 BMW포토스페이스, 부산
– 2016 KT&G 상상마당, 서울
– 2015 Space-nowhere, 서울
글 /최보윤(崔寶允, Choi Bo Youn)
사진학 학사, 예술경영 석사 졸업 후 연수문화재단 기획경영팀에서 재단 홍보 및 운영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