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정민나

정민나

이름: 정민나 (鄭珉娜, Jung Min Na)
출생: 1960. 09. 26
분야: 문학(시)
인천시 미추홀구 거주
이메일: minna0926@naver.com

정민나 프로필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199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인천지회 편집 간사
2002년 인천의제 21 문화분과 간사
2009년 한국작가회의 인천 지회 사무처장
2010년 한국작가회의 인천지회 부지회장
2015년~현재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인문학 아카데미 강사
2017~현재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강사
저서
2003년 시집 『꿈꾸는 애벌레』, 출간
2015년 시집 『E 입국장, 12번 출구』, 출간
2016년 시집 『협상의 즐거움』. 출간
2018년 시론집 『정지용 시의 리듬양상』, 출간
2019년 시론집 『파동이 신체를 주파한다』, 출간
수상 경력
1998년 1월 현대시학 시부문 신인상 수상.
2012년 고등학교 문학2 「길이 된 섬」상재- 미래엔(구. 대한교과서)
2015년 『E입국장, 12번 출구』 세종 우수도서 선정
경력 사항
2019년~현재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심사위원
2019년~현재 인천광역시 특수목적고등학교 지정운영위원
2021년~현재 인천광역시 미추홀구립 도서관 운영위원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시화 방조제
시화 방조제

시화 방조제
(사진 제공: 정민나 시인)

나의 시 <길이 된 섬>은 1998년 현대시학 등단작이다. 이 작품은 2012년 고등학교 문학2(미래엔(구. 대한교과서)와 2013년 <<한국현대문학>>의 낯선문학 가깝게 보기에도 상재된 작품이다. 운 좋게도 나는 시 한편으로 등단도 하고 교과서와 이름 있는 문예지에 실리는 행운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도서지구 변방 출신인 내가 역시 흔하지 않은 소재 –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는 그 첫 현장의 실상을 시화했기 때문이리라. 뱃길로 이어지던 섬에 도로가 나기 시작하면서 섬이 변화되어가는 과정과 그 변신의 불안한 감정을 시로 형상화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시에는 국토의 지형이 바뀌는 역사의 한 줄기를 따라가는 시적 화자의 존재감이 실려 있다고 할 수 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각 분야에서 기성의 가치가 무너지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던 90년대 말 우리의 문학적 상상력도 시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여러 시인들의 작품 내용과 형태가 매우 다채로운 양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전통적인 자연시를 해체하고 자유정신을 표현하는 도시 서정시, 자본주의와 도시의 부정적 양상을 드러내는 문명 비판시, 생물학적 약자의 편에서 생명체의 다양성을 옹호하는 생태시,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는 불완전한 해체적 기법의 시편들이 각각의 개성을 살려 발표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살아온 작가들의 감각의 경계나 감성의 스펙트럼이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여상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 후에야 등단을 하게 되었다. 90년대 중반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3학기 시 공부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문학 정규 교육을 받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이 시기 독서지도사 활동을 하면서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 4년을 졸업하게 되었다. 이후 동국대학교 문예창작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이 시기는 젊은 시인들 위주로 시단에 소위 미래파가 형성되어 문학의 환상성과 가상현실 등 판타지 문학작품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때 문학 공부를 하게 된 나 역시 미래파와 도시 서정시를 함께 접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시를 읽고 시론을 탐독하면서 내 시를 쓰게 되었다.

한편 나의 시적 정체성은 이런 시적 분위기와 더불어 나의 모지 현대시학을 창건한 전봉건 선생님과 그를 이어 오랜 기간 현대시학을 반석 위에 반짝이게 한 정진규 선생님의 시 정신이 조금씩 나의 시적 기질 속에 스며들어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분들의 시를 단적으로 비교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한 분의 언어는 욕망과 불안을 내재한 감각의 논리와 환상 문학의 용법으로 또 한 분은 인공의 형식들을 거둬내고 어떤 인위적 가식도 없는 인간의 본성과 자연성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시를 쓰셨다. 두 분 모두 특색과 개성을 갖추어 일상의 평범한 사건들이 시가 되게 하는 신비를 경험하게 해 주셨다.

나의 대표 작품

작가가 자신의 대표 작품을 고르라고 하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어머니가 낳은 아기 중에 제일 예쁜 자식을 고르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세 권의 시집을 상재했는데 시집의 성격과 모양새가 달라 그 각각의 시집에서 한 편씩 대표 시를 뽑아 보는 것이 최선의 일일 것 같다.

제 1시집 『꿈꾸는 애벌레 』

나의 첫 번째 시집에서는 주변의 현상들에 관심을 가지고 대체로 인간과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시들이 실려 있다. 시를 쓰던 초창기 나는 한 편의 시가 다루는 세계는 무릇 어떤 본원적인 진리의 흔적을 포함해야 한다는 시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개 작가들의 첫 작품이 그렇듯이 나 역시 내 삶의 현재를 시로 구성할 때 내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적체된 감정들과, 용해되거나 배출되지 않은 어떤 갈등이나 상흔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불안이나 미움, 원망의 마음과 그럼에도 그들과 섞여 충돌하고 화해하고 그리워하는 마음들이 ‘시’라는 출구를 찾아 세상에 나왔던 것이다. 따라서 제 1시집에 실린 「길이 된 섬」은 한마디로 오랫동안 잠재되어 있으면서 가끔 내면에서 충돌을 일으키던 ‘불안’과 내 개인의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파도가 창을 열고 달려간다 시화방조제가 물새소리에 부딪쳐 허방 딛듯 첨벙첨벙 허물어지고 있다.
해안을 게발로 물 듯 물고 늘어선 횟집 앞바다에 섬 하나가 변화를 거부하려고 제 살을 털며 솟아올랐다 솟아올라와 기억 속의 길을 더듬고 있다.
바다를 밀치고 깔아놓은 뱃길 위에 구름이 낯선 걸음으로 가고 있다.
그 뒤를 어릴적 햇빛들이 재잘대며 따라간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덤프트럭 속 자갈과 모래들이 쉴 새 없이 수런거린다.
불안해 자꾸 바깥세상을 내다본다.
길이 된 섬 가장자리에 납작 엎드린 바다 고향 섬은 물새소리에 떠밀려 구겨졌다가 펴지고 펴졌다가 구겨지며 지워져 가고 있다.

_____ 길이 되고 있다 ____
– 정민나, 「길이 된 섬」, 전문

앞에서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나는 운 좋게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는 그 첫 현장의 실상을 시화하면서 ‘시인’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사람이다. 나의 첫 시는 고향 ‘섬’이 ‘길’이 되는 상실의 국면을 솔직담백하게 시화하였는데 평범한 주부로 살던 내가 시인이 되는 일은 그야말로 바다 한가운데 없던 길이 생기는 일과 같은 사건이었다. 그것은 흙과 돌멩이를 투척하면서 맨몸으로 싯푸른 바다를 건너야 하는 ‘불안’ 그 자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뱃길로 이어지던 섬은 이제 바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곧장 세상 사람들과 빠르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혼돈’을 가리키는 앤트로피는 불확정성의 세계를 드러낸다. 안정된 세계의 질서는 부정되고 기존 질서에 대한 경계가 해체되는 이 현상은 나의 문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 세계의 변화는 매우 낯설어 나를 자주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감정은 나의 제 1시집 『꿈꾸는 애벌레』 중 어느 시를 고르더라도 징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나의 첫 시집에 부쳐 문학평론가 이현식 박사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표정이 있듯 사람의 실존 그 자체가 투영된 시 역시 여러 표정이 있다”면서 나의 시에서 “맑고 투명한 모습과 어둡고 지친 모습들이 서로 교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글 쓰는 작업은 자신의 감정이나 기억, 사적 경험을 세상을 향해 드러내는 일이므로 두려움을 자아낸다. 처음 흰 백지 앞에 마주하여 자기 생의 비밀을 누설하려는 자는 특히 더 그러하다. 하지만 인간은 속박된 상황일수록 자유를 꿈꾸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미 시작된 길 위에 놓인 처지라면 어떠한 대상이나 현상 앞에서 스스로를 결단하고 선택하고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 2시집 『E입국장, 12번 출구』

태양 아래 새로울 게 없다’는 말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인식론적 물음뿐만 아니라 ‘시는 어떻게 있는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으로 논의의 방향을 전환시킨다. 나의 제 2시집 『E입국장, 12번 출구』는 사유와 감각을 비교적 예각적으로 드러내면서 언어에 대한 실험적 방식으로 씌여졌다. 이 또한 앞에서 잠깐 소개한 바와 같이 내가 뒤늦게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예창작대학원에 진학하여 글을 쓰게 된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래파 시인들이 활발히 시를 발표하던 2000년대에 접어들어 나는 젊은 문학도들과 어울려 장르가 혼합되거나 결합하여 그 영역이 전보다 넓어지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시를 탐독하고 시론을 쓰고 합평의 시간을 가졌다. 경계선을 넘거나 간격을 좁히는 ‘장르 확산’이나 ‘탈장르’로 일컫는 스타일로 세계관을 표현하는 시인들의 시를 읽고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 자연스럽게 삶의 균형과 관련 있는 기존의 서정시에서 멀어져 갔다. 이러한 시 쓰기의 낯선 정서가 나는 좋았는데 그 이유는 주체성이라는 근원이 나에게 콤플렉스로 작용하면서 오히려 자유로운 세계에 대한 호감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문학의 번듯한 자리에서 ‘나의 시가 이렇다’라고 말할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쓰기 스타일이나 문체를 가졌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어조’나 ‘자기만의 리듬’을 지닌 문장을 쓰겠다는 것이 이 시기 나의 문학적 목표가 되었다. 기왕에 섬 소녀에서 벗어나 ‘나의 바깥’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을 시도한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근원을 탐사하지 않고’, ‘배후(뒤)를 캐지 않는 일’이 될 것이며 그리하여 종국에는 나 역시 자기만의 고유성을 갖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 시기 나는 새롭게 시의 재료를 조직하는 방식과 시의 재료를 다루는 방식을 훈련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원효대교 샛강다리 지나는 음악은 잠시 후 지하차도.
높이 제한표시가 없는 터널을 직진한다 싹둑 잘려나가는 리듬은 전날의 도로를 빙글 돌아 반대 방향으로……
칼바람 추위 속에서도 연녹색 이파리를 탐색합니다. 높이 짐을 실은 음률은 아슬아슬 좌측 도로를 빠져 나가고
종이박스 같은 몸을 밀고 가는 횡단보도 어제저녁 무슨 일을 당했는지 덜컹이는 창문은 입을 꼭 다물고 모든 떠돌이 개와 고양이를 단속 중……
양화대교 국회의사당 이어서 오후,
목적지 주변까지 페달을 밟아 직진 차로를 빠져나가는 노래…… 꺾어지듯 휘감아 오는 종소리 추가 탐색 합니다.
반쯤 닫힌 해피트리는 봄의 소포, 떨리는 손으로 건네주면 새는 들판을 날아오르고
다 쓴 양철들이 실려 가는 언덕까지 돌아오는 길들은 하수오 농원 올라가는 묘지를 터치…… 빈 트럭으로 정차된 운전수를 터치……
저 길가 허공의 수많은 물류 센터는 까마귀 군무 앞으로 배달되는 하늘인데
끊임없이 퍼 나르는 흙더미 위에서 악보는 아직도 저녁의 굴뚝 연기를 톱질 중

– 정민나, 「전방에 음악 – 쇤베르크 음률에 부침」 전문

제 3시집 『협상의 즐거움』

나의 제 3시집은 대다수 시편이 ‘유리섬’이란 제목을 달고 2016년 『문학세계사』에서 출판되었다. 인하대 홍정선 선생님과 동국대 장영우 선생님이 표사를 써 주셨는데 두 분 모두 이 시집을 지배하는 표면적이고 이면적인 주제가 바로 ‘고향섬’이라고 밝혔다. 사실 나의 고향 마을에는 ‘유리섬’이라는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제3시집에 실린 시의 내용들이 모두 고향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고향에 들어와 있는 박물관 ‘유리섬’이란 이름에서 떠오른 영감이 3시집을 준비하는 내내 나의 머리속을 맴돌았기에 결국 ‘유리섬’ 연작으로 시집을 냈다.

이 시집의 해설에서 하린 시인은 ‘왜 유리인가’라는 질문을 한 후 “유리는 투명성, 순질성, 차단성, 경계성”을 갖는데 그는 이 중에서 나의 시가 ”투명성과 순질성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힌다. 사실 나의 2시집과 3시집에서는 인간적인 논평 없이 장면과 사건들을 단지 병치적으로 편집한 시들이 많다. 하린은 이러한 나의 시를 두고 현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는 ‘다큐의 정신’이라고 명명했다. 또한 ‘관찰자로서 솔직담백하게 현상을 감각시키려는 이미지즘 시’라고 평하였다. “유리를 통해서 세계를 보니 ‘있는 그대로’ 대면할 수 있게 되고, 그 이상으로 수식하는 행위나 그 이하로 혐오하는 행위를 자제하게” 된다고 마치 내 속을 유리처럼 꿰뚫어 보듯 말하고 있다.

내가 실제로 다큐의 정신을 의도하고 시창작을 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대상의 즉물적인 속성을 이미지로 감각화하는 습성이 다큐의 근본 기질과 닿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이참에 내 시의 시적 태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새단장 쇼파 전문 매장에서 엔틱 모던 가구 인테리어 소품점에서 토종 순대국 만석 이네 집에서 생기 약국에서 신태양 안경점에서 과외 혁명 원플라스 학원에서 김포 화원에서 씨를 받아 왔다.
생처음 자생란 가게에 낚시 플라자에 클릭 사랑 보드게인 제이제이에 아이미즈 산부인과 에 활어회 직판장에 21세기 미소 치과에 쓰고 남은 씨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발꿈치를 높이 든 전기공 어깨 위에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절뚝이며 뛰어오는 할아버지의발등에 ‘파출부 쓰실 분’ 전단지를 붙이는 여자의 몸 위에 줄기는 왕성하게 피어오른다.
바퀴들 쌩쌩 굴러가는 시내 한복판 목화* 피었다고 이 마을 사람들도 틀어보니 새하얀 무명 꽃이더라고 인견 피그먼트 이불과 극세사 차렵이불 아사 원단 침구류 소매상을 하는 친구에게 편 지를 쓴다 목화솜 이불 덮고 하룻밤 자고 가라고
요즘 신도시 사람들의 감촉이 많이 달라졌다고

– 정민나, 「유리섬- 초대」 전문

2.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30대 중반이 시작될 무렵인 1993년도부터이다. 시 창작 초기에는 자연과 인간의 본성에 다가가 그 무늬를 순연하게 묘사하는 시를 썼다. 이후 변화하는 세계는 나의 시적 자아에도 영향을 주어 ‘시적인 것이 무엇인가’하는 방향 모색을 하게 하였다. 나는 이때 ‘시 쓰기’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하나의 느낌이 움직이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감각적 질감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재의 여건보다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더 컸기 때문에 그 시절 오히려 나는 글을 쓰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98년에 등단하여 문단에 나왔지만 나의 일상의 현실은 바뀐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 나는 무의미해지는 삶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현실 너머에서 꿈틀거리는 것, 혹은 나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거나 생성하려는 것을 포착하여 그 불안한 정서를 마주하고 그것을 지면 위에 시적 현실로 재구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상상력의 통로를 열 때 비로소 비속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기 존재감을 자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가령 제 2시집에 실린 「시베리아 암컷 호랑이」는 티비에서 방영되는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다가 시상이 떠올라 쓴 시이다. 이곳이라는 현실에서의 무기력과 고통을 환기하면서 그 경계를 넘어가 새로운 시적 자아를 출현시키는 존재를 호랑이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종종 내 시 속의 화자는 삶에서 탈주하여 상상의 경주마에 베팅을 하기도 하였다. 이때 시적 자아는 예측할 수 없는 혼돈 속에 있지만 실재로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세계 내 불안한 존재’가 되어 어떤 예감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게 되었다. 이러한 삶과 이상의 불일치는 시적 자아에게 경고를 하기도 하고 권고를 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정서를 형상화한 또 다른 시로는 「물챙이 여울」이 있다.

「물챙이 여울」은 인천 대공원 옆길을 흐르는 여울을 소재로 하여 쓰게 되었다. 장수주공아파트에서 대공원 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작은 시내처럼 흐르는 물길이 보이는데 그 곳에는 물챙이 방죽이 설치되어 있다. 그즈음 나의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자리를 보존하고 계셨는데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는 중에 ‘물챙이 여울’에서 문득 나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는데 나는 ‘‘자식’이라는, ‘엄마’라는, ‘시인’이라는 가면을 쓴 채 어느 하나 제대로 그 본성을 다하지 못하는구나!’라는 내 존재에 대한 결핍감이 엄습했다. ‘물챙이 방죽’은 장수천을 흐르는 물길에서 일종의 쓰레기를 걸러주는 ‘필터’라고 할 수 있는데 ‘아버지에게 잘하지 못하는 내가 자식에게 좋은 모범이 될 리 만무이지’라는 자괴감이 몰려와 그 결핍과 단절감에서 이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산악인들이 산을 오르다 보면 안개나 비바람으로 조난을 당할 수 있다. 자신은 앞으로 전진한다고 생각하지만 있던 자리를 빙빙 돈다고 한다. 이런 현실을 일컬어 소위 ‘링반데룽’이라 한다. 이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은 상황이 안 좋을 때 무턱대고 앞으로 전진하는 일보다 잠시 일이 되어가는 과정이나 형편이 호전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 ‘창작의 조난’에서 귀환하는 일은 나에게 지난한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마음은 뇌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있다고 한다. 호로몬과 효소를 따라 소리•맛•감각이 몸 전체를 따라 흐른다. 따라서 리듬은 우리 몸속에 내재화되어 있다. 엄마 뱃속에서도 아기 심장 박동은 규칙적으로 뛴다. 봄이 오고 공원에 온갖 나무와 풀꽃이 화사하다. 이때는 서로의 리듬 파장이 맞는 남녀 청춘이 벤치에 앉아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새들도 강아지도 저들만의 방식으로 어떤 암놈은 어떤 수놈을 밀치고 어떤 수놈은 어떤 암놈을 차지하여 저들만의 들숨과 날숨으로 생명의 화답을 한다.

나는 현재 대학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 학기 중 후반기에는 내가 맡은 학생들이 프레젠테이션을 하거나 조를 이루어 토론을 한다. 이때 어떤 학생은 약간의 긴장감을 이용하여 자신의 효능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데 어떤 학생은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평소의 교감신경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자신의 영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학생은 평소의 신선한 혈류가 떨어지고 사고력도 떨어져 자신감을 잃은 채 어색한 말투로 한 번의 찬스를 놓쳐버리곤 한다.

드라마에서 보는 의사들도 일분일초를 다투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큰 호흡을 한다. 한 번 숨을 쉬고 두 번 내뱉는 호흡법으로 자신의 리듬을 충분히 견지하여 중요한 일을 백 퍼센트 완결하려는 것이다. 나는 배구 야구 축구 경기 시즌이 되면 스포츠 경기를 즐겨 시청한다. 결전을 앞둔 선수들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선수들과 한 몸으로 이런 큰 쉼 호흡을 갖춘 후에 경기를 관전한다. 무미함과 단조로움을 깨뜨리는 원칙으로 시인 정지용은 시의 음악성을 통해 삿된 인간의 마음을 풀어내고 정화시키는 시를 창작하였다. 박사 논문으로 「정지용 시의 리듬 양상」을 연구한 나 역시 반복되는 지루한 삶은 가능한 한 시적인 리듬에 올려놓고 달래고 어르며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자 한다. 우리 몸의 리듬은 변화를 겪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시의 리듬은 내 스스로 조율할 수 있어서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내 의지대로 통제하는 시적 리듬이 있어 답답하거나 불편한 감정도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된다.

알베르 까뮈가 바닷가에서 성장하면서 뜨거운 햇빛과 일렁이는 파도와 거친 해무를 자신의 감각적인 리듬으로 활용하였듯, 나 역시 일상의 리듬이나 생체리듬을 놓치지 않고 나만의 문체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영혼과 만나는 오감을 작동시켜 여전히 그 파장을 확산하고 융합하면서 리듬에 대한 다양한 실험적 시를 쓰고 싶다. 그리해서 삶의 공간적 리듬이나 생활의 리듬을 시적 리듬으로 표현하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

4.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2022년 동해 산불에서 비롯하여 최근 지구촌 전체에서 일어나는 홍수와 폭설, 폭염은 심각하게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다음 4시집은 ‘생태계 사이에 얽혀있는 생명의 그물’과 같은 문학과 생태학을 접목하는 주제로 생명의 시를 써 보고 싶다. 그렇다고 하여 생뚱맞게 환경오염과 생태 위기에 대한 문명성이나 자연성에 대해 이분법적이거나 비평적 시를 써 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만연된 소재주의나 명분주의보다는 환경 역시 변화하는 삶의 과정으로 인정하고 인간과 세상, 환경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심상치 않은 징후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형상화 해보고 싶은 것이다. 도시 문명주의 안에서도 생명력을 발휘하는 자연성이 얼마든지 눈에 뜨인다. 이런 작업 계획이 아직 구체화 되지는 않았지만, 나의 관심이 이쪽 방향으로 쏠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나의 첫 시집 첫 페이지에 실린 시가 「굴업도」이다. 이 시편을 쓸 90년대 말 나는 ‘인천의제 21’이라는 환경 관련 기관에서 간사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이 기관 소속 인물들과 ‘굴업도’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덕적도와 굴업도 연안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많았던 조기가 모습을 감추어 어부들이 먼바다로 나아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에는 덕적도에서 굴업도까지 향하는 바닷길은 푸르러서 물고기들이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납득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현재 나의 딸과 사위는 친환경 에너지와 기후자금을 관리하는 회사와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기후 온난화로 미래에 세계의 여러 섬들이 가라앉을 위험에 처했는데 이런 작은 나라들은 기후 변화를 대비하는 방식에 있어서 취약하다. 인력도 부족하고 자금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연구원 딸이 하는 일이 기후 변화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만드는데 가난한 섬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펀딩을 하고 어떻게 비즈니스 케이스를 만들고 어떤 단체에서 필요한 기후 자금을 끌어올 것인지, 그 단체가 요구하는 적격 요소를 갖추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측정하고 관리하고 모니터링하는 프레임 워크를 하는 것이다. 가까이서 환경 관련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시를 쓰는 나 역시 자연스럽게 ‘생명의 문학’ 쪽으로 관심의 촉이 뻗는다. 최근에 에코페미니즘을 주제로 산문 한 편을 써달라는 모 문예지의 청탁을 받고 관련 자료를 다루는 중에서도 문득 나의 시적인 눈길이 이 방향으로 기울어짐을 감지하게 되었다.

5. 예술적 영감을 주는 인천의 장소 또는 공간은?

소래포구
연안부두

소래포구 / 연안부두
(사진 제공: 정민나 시인)

우리가 알고 있는 ‘장소(Place)’라는 사전적 의미는 ’형상, 물질, 색, 재질을 가진 구체적인 구성물이거나,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위치나 지리적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바라보는 공간의 의미는 그 공간 속에 녹아 있는 정신적 구성물과 물리적 형태를 함께 바라보는 이중적 시각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의도하는 장소성은 대체로 실존의 통합된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공간에 의하여 작용을 받고 공간에 대한 작용을 하는 것이 우리 인간임을 알고 있기에 나 역시 그 공간 안에 녹아 있는 인간의 관계를 구체화 시키고 그 장소성을 통해 인간과 사회적 상징을 풀어놓게 되는 것이다. 잘 구획된 사람들의 공간보다 불안전하고 흐트러진 타자의 공간을 열어 보임으로써 그 장소적인 맥락을 통해 사회적 존재들을 위치시키고 그들의 구체적 일상과 실존적 토대를 드러내고자 한다.

세 권의 시집을 살펴보니 근접한 환경적 이미지를 통해 특정 장소와 어울리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한 시들이 많았다. 가령 「꽃핀 연안부두」, 「굴포천의 줄넘기」, 「아랫말 고인돌군을 지나다」, 「유리섬 – 구제역」, 「유리섬 – 무녀도」, 「유리섬 – 모래내 시장」, 「장수천 엘리베이터」, 「계명공원」과 그 외 많은 나의 시들이 인천의 구체적인 공간의 한정과 집중 및 방향성의 조절을 통해 인간의 거주를 탐색한 시들이다.

나는 생의 활력이 떨어질 때마다 사람들이 왁자하게 모여드는 연안부두 어시장이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는 소래포구, 북성포구를 다녀온다. 그런 후에는 천장을 치받는 꽃게처럼 다시 생애 열정(시적 욕구)이 퐁퐁 솟아오르게 된다. 쓰레기를 태우는 저녁녘 물이 차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물방울의 입자처럼 다시 계단을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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