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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음과 낯섦. 그 사이에서 만난 상상의 시간, <우주를 건너서>

정지영 (우란문화재단 큐레이터)

매일 매번 바뀌는 낮과 밤, 그 시간들 속에서 만나게 되는 해와 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과 우주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부평구문화재단의 2022년 특별기획전 <우주를 건너서 Across the Universe>(2022.04.13-05.25)는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우주’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들을 꺼내어 펼쳐 놓게 해주는 전시이다.
우주는 어떤 색이며, 무슨 소리가 나고, 그곳에 냄새는 있을까? ‘우주 여행’의 시대를 기대할 만큼 발전된 기술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주라는 세계는 신비롭고 경이롭다. 이론적으로 증명된 여러 사실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기보다는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할 뿐이다. 더구나 한국에서 ‘누리호’ 2차 발사를 앞두고 있는 지금 이 시점, 우주는 더 이상 막연하게 먼 느낌보다는 이제는 저 너머의 어딘가 다다를 수 있는 곳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특별기획전시 전경 사진
특별기획전시 전경 사진

특별기획전시 <우주를 건너서> 전경 사진 (사진제공: 부평구문화재단)

이번 전시에는 우주에 대해 어렴풋이 생각하던 이미지부터 생경한 것까지 다채롭게 등장한다. 3인의 참여작가 이정윤, 오유경, 박경종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며 보는 이들은 너무나도 낯익은 장면부터 낯선 장면까지 전시장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떠오르는 각자의 상상 속 장면까지 더해 깊고 풍부한 풍경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특별기획전시 전경 사진
특별기획전시 전경 사진

이정윤_A Falling Trunk_PVC, 공기주입 모터, 가변설치_600x370x300cm_2022
(사진제공: 부평구문화재단)

전시장을 향하는 길, <하이힐을 신은 코끼리>와 <자가용UFO>가 나를 반긴다. 공중부양하고 있는 풍선들은 마치 내가 무중력 상태에 들어와 있는 듯 지금 나의 시공간을 흐트러트린다. 이정윤 작가의 풍선 작업은 재치 있는 모습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주는 동시에 전기와 같은 도움이 없으면 언제든 주저앉는 풍선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그 이면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경계 위의 존재를 표현한다. 흡사 우주 안에서 한없이 위태로운 인간을 보는 것 같다. <중력을 거스르며 증식하는 식물>까지 보고 나면, 신비로운 우주 속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 창들은 우주의 별들을 표현한 걸까? 전시장 안쪽에 있는 작품 <Code Green>은 언뜻 우주를 그린 것으로 보이지만, 검은 바탕 위의 작은 조각들은 ‘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작품 옆에 설치된 영상이 그 기원에 관해 설명한다. 싱그러움을 잃어버린 꽃이 유리판에서 다시 하나의 작품으로 재탄생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생명의 율동을 보는 것만 같다. 다시금 작품을 보면 모두 타서 사라지고 남은 꽃의 흔적들이 비로소 보이게 된다. 이렇게 작가는 현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상실과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희망으로 바꾸었다.

특별기획전시 전경 사진

오유경 토탈이클립스 컬러보드, 유리,
크리스탈, 메탈,
혼합재료 300x200x300cm_2020
(사진제공: 부평구문화재단)

전시장 중앙 곳곳에 설치된 오유경 작가의 <Total Eclipse>는 보이지 않는 우주의 에너지에 대한 사유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힘에 대한 의미와 그 변화 점을 작품에 담아왔던 작가는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자연의 순환적 과정을 보여준다. ‘토탈 이클립스’란 개기식(皆旣蝕)으로 한 천체가 다른 천체에 의하여 완전히 가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작가는 이 순환적 현상에 대해 이질적인 재료들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물질 간의 에너지를 형상화한다. 크기와 물성, 그리고 모양이 다양한 구의 형태들이 결합하고 중첩된 이 모습은 신기롭고 아름답다. 마치 우주 속 생명체들의 탄생과 소멸의 순환적 상호 작용을 보여주는 것 같다. 벽면에 설치된 영상 작품 <솔트 시티>에서도 역시 작가는 에너지의 순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여러 사각형으로 쌓아 올려진 소금들은 이내 곧 녹아 다시 바다로 돌아가게 되는데,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의 관계성을 표현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주를 상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바로 여러 행성이 내는 빛들로 가득한 밤하늘의 풍경이다. 박경종은 가장 낯익으면서도 낯선 조합으로 우주의 시공간을 표현한다. 평면이 입체가 되고, 정적인 회화 작업이 동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변모하는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의 한계나 경계 없이 현실에서 저 먼 우주까지 넘나들 수 있도록 관람객을 미지의 영역으로 초대한다. 페인팅 애니메이션 <하늘의 씨앗>과 <네모난 이야기 더미>와 함께 설치된 여러 회화 작업을 차근히 보면 작가의 상상 속 우주를 엿볼 수 있게 된다.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상상 속 생명체들은 현실 속의 시공간에서 유희적으로 재구성된다. 전시장 끝, 압도적인 스크린에 펼쳐진 수많은 별은 관람객들을 각자의 상상 속 이미지를 생성하게 이끈다. 마침내 관객들의 체험으로 탄생한 이미지들을 복합적으로 연결하여 편안하고 재미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박경종_별의 정원_3 채널 비디오, 인터렉티브 아트_4min 19sec_2020

박경종_별의 정원_3 채널 비디오, 인터렉티브 아트_4min 19sec_2020
(사진제공: 부평구문화재단)

작가들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된 우주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보고 나면, ‘우주를 건너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세 명의 작가들은 각자 다른 상상과 매체로 본인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우주의 에너지,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생성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은 우주를 떠올렸을 때 가장 낯익은 장면 또는 낯선 장면을 전시에서 마주했을 것이다. 그 장면들 사이에서 각자의 상상 속 풍경을 더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길 기대하며 오늘 밤,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면 어떨까? 다른 무엇이 보이지 않을까?

정지영

정지영 (鄭智渶 Jung Jiyoung)
전시 보는 시간이 좋아 업으로 삼고, 이곳저곳에서 미술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예술이 우리 일상과 사회 속에서 할 수 있는 선한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전시를 통해 긍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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