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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집현 – [관무(觀武)] ‘최고의 무사를 뽑아라’
이재상(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관무(觀武) ‘최고의 무사를 뽑아라’>(연출 이상희-극단집현 상임 연출)는 5월 10일 청와대 개방을 기념해 한국문화재재단이 주최, 5월 10~21일 청와대의 영빈관 앞에서 공연된 프로그램으로 국가의 경사를 맞아 내금위(왕실 경호원) 무사 등용 의식을 재현하는 공연이다. 공교롭게도 필자가 청와대를 찾은 날은 5월 18일이어서 여러 생각을 하게 하였다.
어느 날 청와대가 갑자기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설왕설래가 많았지만, 평일임에도 경복궁에서부터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의 표정은 설레고 반가운 표정이었다. 늘 철통같은 경호 속에 위압감을 주던 거리는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의 밝은 표정과 상인들의 웃음, 그리고 주민들의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과 함께 평일 같지 않은 활기를 띄고 있었다. 한낮의 열기가 막 가시기 시작한 5시가 되자 <관무>의 두 번째 공연이 막이 올랐다. 사람들은 아직은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기대와 호기심의 눈초리를 한 채 공연장 앞에 앉았다. 간혹 외국인의 얼굴도 보였다.
<관무-최고의 무사를 뽑아라>는 조선 시대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국가의 위급 시에 행해졌던 ‘궁궐 호위군 사열의식’ [첩종(疊鐘)] 예식과 국왕이 친히 무사들의 무예를 시험하고 상을 주는 군례의 한 종류였던 [관무] 의식을 바탕으로 청와대 개방과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공정한 인재 등용의 기회를 제공하는 의식으로 새롭게 구성하고 재현한 야외공연이다.
가상의 조선 시대 어느 때, 왕은 대를 이을 원자가 태어나자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의미에서 ‘관무’를 개최한다.
국왕이 친히 무사들의 무예를 시험하고 상을 주는 군례의 한 종류인 관무를 통해 무사들은 자신들이 닦은 무예를 드러내 입신할 수 있는 자리임은 물론 동시에 자신들이 지켜야 할 충성의 대상이 국왕임을 명확히 하게 되는 자리인 만큼 이야기의 주인공인 두 수문위사는 이번 ‘관무’를 기대하면서도 다른 한 편 반쯤은 포기하고 있다. 두 수문위사의 친척이 궐내의 최고의 무위를 다투는 무사이지만 늘 기회를 좋은 집안의 사람들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두 수문위사는 얘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면서도 해설의 역할을 겸하고 있어 이어지는 무예 사열과 실전의 시연에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다.
이윽고 왕명에 의해 ‘관무’가 열리고 18반 병기 중 장창, 대도, 팽배, 장검, 쌍검, 권법의 시연과 평소 보기 힘든 교전과 진법의 시연도 함께 무대에서 펼쳐졌다.
모든 시연이 끝난 후 하이라이트는 무예가 가장 출중한 네 명의 무사가 직접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네 무사의 대련은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고 이를 지켜보던 왕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의미에서 네 명의 무사에게 모두 장원의 상을 내리며 공연은 모두 끝이 난다.
극단 집현 <관무-최고의 무사를 뽑아라> 공연 모습
(사진 제공 : 극단 집현 최경희 대표)
야외공연이고 조명도 사용할 수 없는 한낮의 공연임에도 공연의 몰입도는 상당하다. 평소 볼 수 없는 조선 18반 무예를 실제 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지루하지 않게 구성된 이야기의 흐름과 긴장도를 적절히 유지하며 극의 호흡을 끌고 나가는 연출력이 돋보인 공연이었다.
한 가지 부기할 점은 연기자들과 같이 공연하면서 18반 무예를 실연한 사람들은 18기 보존회의 분들이었는데, 이들 모두 어떤 지원도 없이 지금만큼의 무예를 복원해냈다는 점이다.
십팔기(十八技)는 원래 조선 영조 25년(1749년), 사도세자가 정리해 《무예신보》(武藝新譜)에 수록한 18가지 보병 무예의 총칭이다. 현재《무예신보》는 전해지지 않으나, 정조 14년, 이를 계승하고 보완한 《무예도보통지》(武藝圖普通志)에 기록이 남아 있다.
이렇게 책에만 남아 있던 십팔기를 복원하고 이만큼의 실연까지 가능하게 한 그들의 열정에 다시 한번 놀랐고, 그들의 교전은 실전을 방불케 할 만큼 박력이 있어 그들의 수련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게 하였다.
또 한 가지 ‘관무’가 끝나고 자리를 뜨려던 왕이 지금껏 극을 끌어왔던 두 수문위사 중 나이든 위사의 이름을 친히 부르며 그동안의 노고를 격려하는 장면에서 (사실 이 위사는 나이가 들어 오늘이 마지막 근무였다.) 연출의 따뜻한 시각이 보이는 듯해서 뭉클했다. 신분이 철저했던 조선 시대에서, 가상의 시대라고는 하나 신분의 벽을 넘어 인재를 등용하고 낮은 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군주라는 설정이 또 하나의 전기를 맞는 대한민국에 대한 기대를 담은 듯해서였다.
공연이 끝나고 청와대 개방 시각이 끝난 뒤에도 경복궁 근처의 식당가는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웃고, 떠들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봄날과 청와대 개방, 그리고 오랜 팬데믹의 끝이 모두 어우러져 모든 사람을 들뜨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다른 오월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이재상 (李哉尙, Rhee Jaesang)
극작가, 연출가, 극단 MIR레퍼토리 대표, 아시아희곡축제 예술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