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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과 전문성의 관점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

인천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아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은 내게 특별하다. 인천연구원에 근무했을 때는『(가칭)인천문화재단 설립 운영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펴내었고 그전에는 ‘인천문화를 열어가는 시민모임’에서 인천문화재단 설립을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인천문화재단설립추진위원회’에 참여해서 재단 설립과 관련한 여러 현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던 것도 기억에 새롭다.

초대 최원식 대표이사의 부탁으로 안식년을 앞두고 인천연구원에 사표를 제출하고 인천문화재단에 첫 출근할 때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그동안 주장했던 바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장을 옮기는 결단을 내렸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은 컸고 평생 연구자의 길을 걷겠다는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도 짧지 않았다.

인천문화재단설립 운영방안 보고서 속 표지

인천문화재단설립 운영방안 보고서 속 표지

개인적인 소회는 이 정도로 하고 창립 20주년을 맞은 인천문화재단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몇 가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한다. 인천문화재단은 크게 보았을 때 지방자치제도의 자장 안에 있다. 분권과 자치의 정신으로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전면 도입되어 자치단체의 장과 의원을 뽑는 선거가 시행되었고 인천광역시도 광역자치단체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각 영역이 자율권을 갖고 자치와 분권을 시행할 때 우리나라의 경제도, 그리고 민주주의도 창의성에 토대를 두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민주화 이후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

수도권 주변부 도시로 인천이 낙후한 문화를 융성시키려면 종합적인 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문화예술계와 뜻있는 시민들로부터 제기되었다. 인천문화재단 설립이 다양한 시민들에 의해 제안된 것은 1999년이었다. 그런데 이때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문화재단의 설립 이념은 문화의 자율성과 전문성이었다. 지방 정부 또는 자본으로부터 자율성을 지키고 문화 고유의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문화재단이어야 함이 당시 재단 설립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일치된 생각이었다.

인천문화재단 발기인 대회

인천문화재단 발기인 대회

재단 설립 기금을 1,000억 원으로 조성하자는 주장도 자율성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정책수단의 일환으로 제기된 것이었다. 기금 1,000억 원을 확보하면 이자 수입만으로 사업이 가능하므로 관의 부당한 개입 없이 재단의 자율적 판단과 전문성에 토대를 둔 각종 문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여기에는 재정(財政)의 독립이 자율성 확보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일종의 신념도 깔려 있었다. 당시 금융권의 이자율을 계산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으나 지금에 와서는 물론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설립 당시 민간의 문제의식이 그런 점에 있었다는 점은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그런데 지방자치제도가 30년간 지속되면서 지방 정부의 권한은 더욱 세밀하게 작동해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애초 인천문화재단은 각종 사업과 집행에서 시시콜콜 인천시에서 간섭하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았었다. 인천광역시, 인천문화예술계·시민사회와 인천문화재단은 협력적 긴장관계가 유지되고 있었고 필요할 때는 대립하다가도 협력이 필요할 때는 협력하는 분위기였다. 인천문화재단에 대한 다양한 논란 역시 그치지 않았는데 이 역시 문화재단이나 문화계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초창기 인천문화재단이 입주해있던 구월동 우리은행 지점

초창기 인천문화재단이 입주해있던 구월동 우리은행 지점

그러나 인천시를 비롯한 관의 개입은 눈에 띄지 않게 지속적으로 강화되어갔다. 돌이켜 보면 낙하산식 인사도 있었고 일방적으로 내리꽂는 사업도 그 전에 비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문화재단 역시 제 역할을 다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건강한 상호 비판과 협의, 토의 등이 실무자나 간부, 정책 결정자 단위에서 원활하게 이뤄지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나만의 개인적 체감이라면 다행이겠다.

그런 점에서 창립 20주년을 맞은 인천문화재단이 자율성과 전문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설립 초기의 정신으로 돌아가 문화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재단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재단을 지원하는 인천광역시의 시정 방향과 역행해서는 안 되겠지만 세부의 사업 구상이나 계획, 집행의 자율성을 지켜가기 위한 재단 스스로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아울러 재단 직원 하나하나가 자기의 전문성을 갖추는 노력도 중요하다. 자율성은 전문성을 결여하면 권위가 사라진다. 전문성을 갖추었을 때 자율성의 명분도 확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인천문화재단 사업평가 포럼

2005년 인천문화재단 사업평가 포럼

마지막으로 인천문화재단은 지역 문화예술계와 문화 시민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의 기획자이자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세상은 선험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고가 정해진 것이기보다 서로 대화하고 공감대를 얻느냐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정해진 답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문화계는 정체성이 강한 예술가들이 구성원의 대다수를 이루므로 의사소통의 노력은 다른 어느 영역보다 중요하다. 인천문화재단이 자율성과 전문성이라는 토대를 기반으로 의사소통을 통한 정책 집행의 노력을 기울여 간다면 성년을 넘어 원숙한 재단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현식 李賢植
現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실 전문위원
인천연구원 연구위원 역임, 인천문화재단 사무처장, 경영본부장, 한국근대문학관 관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