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저묾이 아닌 내일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그라데이션, 노을 오케스트라
이 정 찬
오늘도 어김없이 하루가 마무리되는 이 시간. 인천 서구 정서진에서 펼쳐지는 노을의 아름다운 색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영롱하고 신비하기 그지없습니다. 화려하고 활기찬 태양의 시간에 있었던 서로 다른 수많은 이야기들을 조화롭게 품어주며 아름다운 색을 발하는 노을을 바라보면서 화합과 조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서구에 노을 오케스트라가 생겨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녹여져 있는 저희는 노을 오케스트라입니다.
<창단 과정과 거북골에서의 첫 연주>
지금은 무려 60명이 넘는 대식구이지만 노을 오케스트라 시작은 오랫동안 서구 지역에 거주하며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는 몇몇 음악가들의 의기투합이었습니다. 그분들이 서구 각지에서 청취한 공통된 의견은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에게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쉽사리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의욕적으로 악기를 시작했어도 적절한 시기에 합주의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동기 부여가 힘들기 마련이지요. 그런 필요성에 의해서 서구를 기반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주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조직을 구성하는 과정에는 크고 작은 인적·물적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2023년 여름 내내 서구 내 여러 분야의 주민들과 음악인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합하여 드디어 2023년 10월 서구문화재단 내 가정생활문화센터에서 20여 명의 단원들로 첫 정기 연습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창단 초기인 만큼 음악 연습뿐 아니라 여러 가지 외적인 부분에 신경 써야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궂은 일도 마다치 않으며 솔선수범하시는 창단 단원분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으로 빠르게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저희의 다소 빠른 첫 공연은 서구 석남동에 있는 오래된 전통의 거북시장이었습니다. 그곳은 서구의 옛 원도심으로 서구 내에 빠르게 발전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문화예술을 가까이에서 접하기 어려운 지역입니다. 때마침 거북시장은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는 중이었고 그 변화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노을 오케스트라가 소박한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완벽한 공연장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연주자들과 시장 상인분들을 비롯한 관객분들이 12월 연말의 행복과 성취를 나누는 모습을 통해 음악이 가진 문화의 힘을, 그리고 그 힘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노을 오케스트라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창단 후 11월 정기 연습
©서구청
2023.12.01. 신거북시장 공연
©서구청
<공연장에서의 첫 무대. 신년 음악회>
첫 공연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구 신년음악회를 준비하며 2024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정식 공연장인 청라 블루노바홀에서 하는 첫 공연인지라 단원들 모두 설렘과 긴장 가운데 열심히 공연 준비에 매진하였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단원들이 느낀 감정은 마법과 같은 화합의 힘이었습니다. 단원들 대부분이 아마추어인지라 개개인의 기량이 다소 부족한 것이 현실이었지만 합주를 통해 나날이 완성되는 음악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과물이었습니다. 마치 단원들의 합이 덧셈이 아닌 곱셈인 것처럼 개인의 기량의 합을 뛰어넘는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모두의 힘을 합쳐 완성한 음악과 함께 2024년 첫 시작을 함께한 신년음악회는 지역 주민들께는 물론이고 저희에게도 오케스트라의 마법과 같은 묘미를 선사해 준 순간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2024.01.12. 신년음악회(청라 블루노바홀)
©서구청
2024.01.12. 신년음악회(청라 블루노바홀)
©서구청
<공연과 함께한 창단 1주년까지의 기억>
연주자와 관객 모두를 품어주며 함께 즐길 수 있는 주민 오케스트라를 목표로 창단한 후 사계절을 지나고 있는 지금 그동안의 여러 공연들을 되돌아봅니다. 저희의 정기 연습 장소인 가정생활문화센터 내에서 지역 내 다양한 예술인들과 교류할 수 있었던 한마당 축제, 7천여 명의 대관객 앞에서 선보였던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70주년 기념식 축하공연, 무더운 날씨와 비 소식에 노심초사하며 참여했던 보령머드축제 공연, 순수 고전음악을 준비하면서 일취월장했던 정서진 피크닉클래식 공연, 그리고 미처 적지 못한 수많은 작고 큰 공연들의 가장 큰 주역이자 수혜자는 단원들이었습니다. 음악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단원들이 서로의 삶까지도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면서 노을 오케스트라는 지금도 아름답고 조화로운 주민들의 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불러주는 곳이 없었다면 공연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존재 목적도 달성할 수 없었겠지요. 주민 오케스트라 창단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시며 격려해주시고 여러 공연 기회를 마련해주신 서구문화재단 관계자 여러분께 지면을 빌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결코 작지 않은 서구 구석구석 소외되는 곳 없이 문화를 통한 긍정적인 변화와 화합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에 함께할 수 있어 큰 보람이었습니다.
2024.06.15.서구월간생활문화 한마당 (가정생활문화센터)
©서구문화재단
2024.07.04.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70주년 기념식 (남동체육관)
©한국자유총연맹 인천지부
2024.07.26. 보령머드축제 공연 (엑스포 광장)
©서구문화재단
2024.09.21. 정서진 피크닉클래식 (청라 호수공원 플라워 아일랜드)
©서구문화재단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며>
노을 오케스트라는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활약하시는 단원분들이 한 주를 마치시고 토요일 오전에 모여 음악 안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현재는 오케스트라에서 파생된 현악기로만 이루어진 소규모의 노을 스트링 챔버도 조직되어 다양한 형태로 주민분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비록 단원분들 모두 삶의 모양이 다르고 오케스트라 파트가 다른 만큼 각자의 개성도 강하지만 또 그것을 하나의 음악으로 녹여내는 과정이야말로 저녁노을 같은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아닐까요? 그런 화합과 조화의 경험을 간직한 채 노을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내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찬 / 李正讚 / LEE JUNGCHAN
– 서구 노을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 안산 드림유스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 부천청소년현악합주단 부지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