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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인천 ‘원도사제’
유인숙
지난 10월 19일 토요일 미추홀구 용현5동 윤성아파트 건너편 임시도로에서 제7회 인천 원도사제&낙섬축제가 개최됐다. ‘원도사제’는 조선시대 원도1)에서 서해안 여러 섬들의 신주를 모아 인천의 수령이 국왕을 대신해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낸 제사이다. 미추홀구에서는 인천 시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2016년부터 제례를 재현하며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였다. 육지와 서해안 섬들을 잇는 상징적 공간인 원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지역 주민의 화합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 있는 전통 행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추홀학산문화원(원장 정형서)이 주관하며 인천광역시, 미추홀 경찰서, 인천향교 및 지역 기관과의 협력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또한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
1) 원도(猿島)는 20세기 초까지 썰물 때면 걸어서도 왕래가 가능한 곳으로 ‘낙섬’이라 불렸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인천 시민들이 해수욕과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네이버, “원도사제”, 2024.10.29.
원도사제 제례 재현
©미추홀학산문화원
모두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며
행사 관계자가 아닌, 문화기획 실무자도 아닌 온전히 미추홀 구민으로서, 원도사제 행사장을 찾았다. 전날 거세게 내린 비로 하늘이 유난히도 쾌청했다. 제례를 지내기 전 경건한 마음으로 목욕재계라도 한 걸까.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원도사제를 진행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제례 길놀이로 행사가 시작됐다. 낙섬사거리 앞 인천 원도사터 상징 조형물에서 취타대, 풍물팀, 미추홀구 21개 동 주민대표 등 500여 명의 시민들이 길놀이에 참여하였다. 유아차를 끌며 행진 대열 끝자락을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잡념은 사라지고 함께 걷는 이웃들과 내가 사는 이 동네가 평안하고 안녕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앞뒤로는 나와 같이 사전 신청을 통해 함께하는 200여 명의 시민 참여자들이 계셨다. 가족이 도란도란 함께 걸으며 동네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걷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보며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의 안녕과 풍요를 바라는 원도사제의 의미를 함께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원도사제 제례 길놀이 ‘취타대’
©미추홀학산문화원
원도사제 제례 길놀이 ‘원도사제 깃발’
©미추홀학산문화원
다양한 체험, 시민이 어우러지는 전통놀이 시간
길놀이와 원도사제 제례 재현까지 보고 나니 다양한 체험 부스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안영상미디어센터-AI인공지능 캐리커쳐 및 드론체험, 인천업사이클에코센터-업사이클 소품 만들기 등 기관의 성격에 맞는 체험 프로그램도 보였고 도자기, 원목, 가죽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여러 공방들의 프로그램도 있었다. 행사장을 한 바퀴 둘러본 후 전통놀이 부스에 발걸음을 멈췄다. 미추홀학산문화원 회원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었다. 딱지 접는 법을 알려주고, 윷놀이 규칙을 설명해 준다. 제기를 찰 땐 발 옆면으로 차야 오래 찰 수 있다며 몸소 시범도 보여준다. 열심히 설명을 듣다 아빠가 먼저 제기를 차면, 아이도 따라 제기를 찬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제기차기에 아빠도 아이도 지켜보는 엄마도 깔깔깔 웃기 바쁘다.
개인적으로 제기차기를 좋아해서 전통놀이 체험이 보이면 열심히 참여하는 편인데, 몇 해 전 타 축제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 투호놀이, 제기 등을 덩그러니 펼쳐 놓고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젊은 학생들이 부스를 가만히 지키고 있었다. 놀이를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민망해서 제기를 몇 번 차다가 내려놓고 왔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도 회원분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전통놀이 부스에서는 민망함이 아닌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주 손녀에게 알려주듯이 동네 어른들이 모여 윷놀이를 놀며 말 놓는 법을 훈수해 주듯이 훈훈함이 느껴졌다.
학산문화원 프로그램에서 시민들과 능숙하게 소통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모습은 익숙하다. 개원 이래로 지금까지 약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민의 참여로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함께 만드는 학산 네트워크(학산네)로 문학기행, 역사기행, 미술관체험 등을 시민들이 운영진으로 직접 참여했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부터 사전 답사와 준비 등을 회원들이 도맡아 왔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이름은 다양하게 변하였는데 때로는 서포터즈, 주민활동가, 시민제작단, 주민 기획단 등으로 불려 왔다. 문화원 회원들과 시민들이 참여하여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해왔다. 문화원 1호 회원부터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함께한 인천 원도사제는 결코 가볍고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다. 향유를 넘어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문화원 회원들의 내공이 쌓여 만든 묵직한 시간을 엿볼 수 있었다.
딱지 접는 법을 알려주는
미추홀학산문화원 1호 회원 김현자 님
즐겁게 제기 차는 가족
안녕과 풍요가 뭐 별건가
먹거리존을 돌며 출출해진 배를 채우고 용현5동 낙섬축제 무대를 관람해 본다. 용현여중 댄스동아리 친구들이 아이돌 못지않은 춤실력을 뽐낸다. 이번 공연이 끝나면 경품 추첨 진행 예정이라고 사회자가 연신 마이크로 외쳐댄다. ‘아~ TV 당첨되면 어떡하지? 당근해야 하나?’ 스스로도 실소가 터지는 상상을 하며 경품추첨 종이를 꺼내 번호를 되새겨본다. 아쉽게도 대형 TV는 타지 못했지만, 아직 걷지도 못하는 9개월짜리 아들과 꽤 오랫동안 즐겁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도사제 메인 카피를 떠올렸다. ‘미추홀구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그래, 안녕과 풍요가 뭐 별건가. 길놀이, 제례, 축하공연, 주민참여마당, 낙섬축제 노래자랑 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여 운영했기에 아무 탈 없이 편안했고, 즐거운 것들이 흠뻑 많은 넉넉했던 시간이었다. 제7회 인천 원도사제 행사 그 자체가 바로 안녕과 풍요였다.
아이를 재우고 퇴근하고 온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오늘 본 재밌는 일들을 조잘조잘 떠들며 내년에는 꼭 같이 가서 아들과 셋이 제기차기를 함께 하기로 약속해 본다.
유인숙(柳仁淑, YUINSUK)
미추홀학산문화원 시민문화팀 대리 (현재는 육아휴직중)
lis0202@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