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

승기천을 밝히는 변화의 빛

≪형형색색≫ 프로젝트

이주경

인천 연수구에는 사계절 부담 없이 가볍게 거닐 수 있는 산책코스가 있다. 누군가에겐 매일 아침저녁 다니는 출퇴근 길로, 혹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달리기 구간으로 꽤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여가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는 장소가 있다. 남동공단과 연수구를 인접하며 흐르는 ‘승기천’이다. 승기천은 인천에서 전 구간이 도심을 관통하는 유일한 하천으로, 문학산과 승학산에서 발원하여 서해로 흐르는 약 10km의 하천이다. 본래 승기천은 지금보다 더 많은 구간이 존재했지만,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복개와 복원을 거듭해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인류의 쓰임과 필요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온 이곳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내어 주었지만, 동시에 해결해야 할 여러 질문을 안고 있다. 이 질문은 깊고 광범위하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이해관계들에 얽혀 해결되지 않은 채 제법 긴 시간 동안 그저 표류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이는 시급하지만 그만큼 흔하고 일상적인 언어로 고착되어 문제의식이 희석된 환경문제로부터 시작된다. 일상의 익숙한 그늘로부터 가려져 잘 포착되지 않았던 문제를 승기천의 생태와 인류의 관계에 주목하여 그 실타래를 풀어보고자 한다.

“2024 연수문화재단 경관조성 프로젝트 ≪형형색색≫”은 승기천을 둘러싼 지역의 다층적인 맥락을 되짚어 보며, 자연생태와 인류의 상호 공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프로젝트이다. ≪형형색색≫은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승기천과 맞닿아 있는 여러 요소들을 시각적으로 확장한다. 이를 통해 자연생태를 개인적 감상 경험에 머무르는 주관적 인식차원이 아닌, 공존을 위한 공통의 실천대상으로 관객에게 새로운 관계 맺기를 제안한다.

≪형형색색≫ 프로젝트는 승기천의 여러 구간 중 연수동의 승기천 야외공연장 약 150m 구간에서 진행했으며, ‘빛’을 주요 골자로 하여 네온라이트, 조각, 빛 조형물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승기천 생태를 주목하고 빛을 밝혔다. ≪형형색색≫ 프로젝트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파트인 ‘환대’는 프로젝트의 메인 주제 구간으로, 생태정화를 통해 새롭게 돌아온 자연을 인류가 환대하고 또한 인류를 자연이 환대하는 상호호혜적 관계성을 정립함으로 인류가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의 확장과 재사유를 촉구한다. 도입부에 위치한 네온텍스트 <Welcome, this is our nature> 작업은 물리적 정화를 통해 돌아온 생태를 자성적 태도로 환대하며,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종속적 관계가 아닌, 공존의 관계로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이 작품의 오른쪽에는 주제 작품을 확장하는 설치로 시간의 흐름에 걸쳐 인류와 밀접하고 다양하게 관계 맺어온 승기천의 서사를 살펴본다. <변화의 풍경> 작업은 자연을 단순히 현재에 존재하는 풍경이 아니라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함께 엮어가는 서사적 흐름으로 감각하게 한다. 승기천 과거의 모습, 현재의 변화상 그리고 미래의 공존 방향과 태도에 대한 텍스트를 완결된 문장이 아닌, 명료하고 간결한 문구로 병치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생태의 과거-현재-미래의 흐름을 직관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Welcome, this is our nature, 네온텍스트, 시스템구조물, 5m*7m, 2024>

≪형형색색≫ 네온라이트 설치 전경

≪형형색색≫ 네온라이트 설치 전경

프로젝트의 두 번째 파트는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학과 재학생들의 조각전시로 구성되었다. 청년예술가들의 실험적이며 명랑하고 유쾌한 11점의 조각작품이 승기천에 펼쳐졌다. 이장원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학과)의 기획으로 구성된 두 번째 파트는 ‘HOPE’를 주제로 하여 인류와 자연의 조화로운 미래를 예술적 관점으로 모색한다. 이성준 작가의 <부활하는 평화>는 승기천 생태에 서식하는 조류를 부활과 평화라는 성서적 상징성과 연동하여, 자연의 재탄생과 회복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최규범 작가의 <순환>은 인간의 삶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함을 주목하며, 자연과 인류는 공존의 관계망 아래 서로 맞물려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백강혁 작가의 <저녁에는 허니콤보>와 안도영 작가의 <침착맨>은 생태를 바라보는 청년 예술가의 유머러스한 시선과 밝은 에너지를 관객과 공유한다.

이성준,

이성준, <부활하는 평화>

≪형형색색≫ 빛 조형물 설치 전경

≪형형색색≫ 빛 조형물 설치 전경

세 번째 파트는 ‘공존’으로 다양한 생태가 존재하는 승기천의 곳곳을 밝힌다. 먼저, 보름달과 귀여운 열 마리의 토끼 조형물들이 생동하는 자연의 모습과 어우러지며 승기천을 한층 생동감 있고 친근하게 돋보이도록 빛을 밝힌다. 또한 반딧불이 숲과 빛의 숲은 그간 주목하지 못한 승기천 생태의 색다른 면면을 환히 밝히며 조명한다.

인류와 생태의 관계에 주목하여 승기천의 변화의 풍경을 담아낸 이번 ≪형형색색≫ 프로젝트는 자연을 인류와 시간 여정을 함께하고 증언하며 살아가는 공존의 존재로 바라보기를 시도하였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그간 주목하지 않은 생태를 인식하는 태도를 돌아보며 환경문제와 관련된 근본적이고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거듭 되새기게 되길 바란다. 가을 초입에 오픈한 ≪형형색색≫ 프로젝트는 선선한 가을을 만끽하며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예상보다 길어지는 따뜻한 날씨에 더해 몇 차례의 갑작스러운 집중 호우와 늦여름 태풍에 적잖이 당황하고 마음을 졸이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저 매년 늘어가는 이상기후 현상이라고 가볍게 넘기기엔 생태와 인류의 공존에 대한 실천적 태도를 자문하고 견지해야 할 시기인 듯하다.

이주경

연수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차장
예술경영 석사 졸업 후 축제에서 공연기획 및 폐산업시설 문화 재생공간 프로그래머와 다년간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연수문화재단 예술창작공간 <아트플러그 연수> 개관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기획하였으며, 현재는 인천 연수문화재단 예술진흥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