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터와 삶터를 잇는 긴 호흡의 예술가

학교 유휴공간 레지던시 참여 윤혜인 작가 인터뷰

윤혜인

윤혜인

산책에 빠진 예술가. 혼자보다는 함께이기에 가능한 내일을 ‘산보’팀과 향하고 있다.
모든 것에 선행하는 삶 위에서, 삶을 위한 예술을 찾아가고 있다.
대표 작업은 경계의 단절성을 수렴으로 전환하는 <수렴경계> 시리즈, 삶터로서의 지역을 예술로써 조명하는 산보의 <도시-> 프로젝트가 있다.

작가 인스타그램 / 팀 산보 인스타그램

‘학교 내 어딘가에 예술가가 상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여야 할까?’ 학교 유휴공간 레지던시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신흥중학교에서 머물며 작업하고 있는 윤혜인 작가 인터뷰를 앞두고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이다. 이 질문을 조금 더 확장하면 ‘내가 사는 공동체에 예술가가 함께 사는 것이 왜 중요한가?’가 된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그의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에서 밝힌 견해를 빌려와 답을 하자면 예술가는 ‘몰락을 선택한 자’이기 때문이다. 몰락한 자가 아니라 몰락을 스스로 선택한 자인 예술가들에 의해 성공만을 찬미하는 세계는 잠시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들의 예술을 통해 우리는 어떤 삶이 진실하고 올바르고 아름다운 삶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에서 윤혜인 작가에게 물었다.

신흥중 레지던시-윤혜인 작가 작업실 전경
신흥중 레지던시-윤혜인 작가 작업실 전경

신흥중 레지던시-윤혜인 작가 작업실 전경
©인천문화재단

Q “도시에 예술가가 필요한 이유, 우리 삶의 공동체 내에 예술가가 꼭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A “먹고 사는 문제 외에도 더 나은 가치를 생각하고 그걸 추구할 수 있는 의식이 심어진다는 게 너무나 귀중하기 때문에 마을에 예술가가 존재한다면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삶을 더 완전하게 해주는 기회를 함께 찾아가는 데에 예술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 중인 윤혜인 작가

작업 중인 윤혜인 작가
©인천문화재단

작업실에 전시된 윤혜인 작가 작품

작업실에 전시된 윤혜인 작가 작품
©인천문화재단

학교라는 학생들의 삶의 공간에서 함께 살며 작업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관점을 지닌 작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의 대답이다. 레지던시 작가의 학교 내 역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대답이 듣고 싶어졌다.

Q “개인 작업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는 학교 레지던시에 지원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A “전 작가이기도 하지만, 학생들 곁에 있는 가까운 어른이기도 하잖아요. 왜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을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제게도 참 어려운 질문이었어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더 많은 삶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서, 또 누군가가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할 때 힘을 보탤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할 누군가에게 나의 시행착오를 전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제가 고민한 대답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네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도 했어요. 아이들의 질문에서 저도 배울 점이 정말 많고, 그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 제겐 정말 감사한 경험이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예술이라는 언어로 삶의 의미들을 아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찾아갈 수 있는 위치가 학교 레지던시라고 기대하며 지원했습니다.”

이처럼 예술과 삶의 관계에 대한 명료한 관점과 견고한 소신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궁금하여 물으니 자신을 삶의 주체이자 창작의 주체로서 지속적으로 인정해 준 대학 때 은사의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인간관계 속에서 누군가로부터 입게 된 은혜와 가르침은 크면 클수록 보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유일한 길이 있다면 받은 것을 돌려줄 대상을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윤혜인 작가는 그 방법이 지닌 선순환의 힘과 기쁨을 이미 터득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예술 활동이 교육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좋은 프로그램의 기획과 아울러 가르친다는 행위에 대한 자기 철학이 확고히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최근 동구에서 진행한 ‘도시 박제’ 프로젝트의 마무리 전시회 기획에서도 윤혜인 작가가 함께 살아가는 동 지역, 동시대 사람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이끄는 예술가인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프로젝트
프로젝트

<도시 박제> 프로젝트 / 2024.06.01.-10.31 / 인천 동구 일대

프로젝트 전시에 방문한 신흥중 학생들에게 작품 설명을 돕는 윤혜인 작가

<도시 박제> 프로젝트 전시에 방문한 신흥중 학생들에게 작품 설명을 돕는 윤혜인 작가
©윤혜인

Q “도시 박제 전시회에서 오프닝 행사를 안 하고 엔딩 행사를 기획한 이유는 뭔가요?”

A “우리가 지금까지 밟았던 과정들을 돌아보면서 잘 마무리할 수 있으면 했고, 끝날 때 아쉬움을 가지고 헤어질 수 있다면 언젠가 다음 접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습니다.”

학교 공간에 상주하며 작업하길 원하는 작가는 대체로 공동체 예술(Community Art)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작가일 가능성이 크다. 윤혜인 작가 또한 ‘도시 호흡’, ‘도시 박제’ 등 지역성 탐구에 기반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지역’이라고 하기보다 ‘삶터’라고 말하길 좋아하는 윤혜인 작가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한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어주기도 하면서 공동체적인 가치까지도 어우를 수 있는 삶의 토대”이기에 중요하다. 삶의 속성 중 하나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흘러가는 항상성이기에 공동체 내 예술 행위 또한 계속 이어지는 지속성 속에서 빛을 발하게 된다. 학생들과 함께 구도심에 관한 역사적 사건을 조사하고, 학생들의 가까운 어른들이 지닌 도시의 기억과 가치를 찾아보는 아카이빙 활동과 아울러 바다에 관한 사회적 이슈에 주목한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우리가 지킬 수 있는 도시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하는 윤혜인 작가의 계획은 학교라는 배움터를 삶터와 잇는 작업이다. 그리고 이 계획이 잘 진행되리라 믿는 이유는 학교 레지던시 작가로서의 긴 호흡 때문이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윤혜인

기억하기를

기억하기를
©윤혜인

도시호흡 프로젝트 ‘중첩도시’ 시리즈

도시호흡 프로젝트 ‘중첩도시’ 시리즈
©윤혜인

도시호흡 프로젝트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 결과물-산보

도시호흡 프로젝트의 시민 참여 프로그램 결과물-산보
©윤혜인

정원철

정원철 (鄭園澈, JUNG WONCHUL)

시각예술가 / 공동체예술공방+교육예술랩 칼산 운영
추계예술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아르떼365 편집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