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생각들이 모여 만들 방향을 기다리며

손유미

손유미

이름: 손유미(孫柔美, Son Youmi)
2023년 시집 『탕의 영혼들』(창비) 출간
2014년 창비신인시인상 수상
w0thsdbal0w@hanmail.net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손유미입니다. 2023년 4월 첫 시집 『탕의 영혼들』(창비, 2023)을 출간했습니다. 그밖에는 앤솔로지 산문집 『나의 생활 건강』(자음과모음, 2021) 등이 있습니다. 대표작이라기보다는 시집 내에서 제가 좋아하는 시 두 편을 소개하고 싶은데요.

단박에 떠오르는 시가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요즘 제 시집의 시 중 먼저 「시간과 가다」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훌렁훌렁 옷을 벗고 지나간다, 시간이//나는 옷을 주우며 뒤따르는 사람”이란 행으로 시작하는 시인데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나는 또 어떤 시간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는가? 혹은 지난날 어떤 시간의 뒷모습을 남겼는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 시가 생각이 났습니다.

다른 한 편은 시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시 「탕의 영혼들」인데요. 이 시는 코로나 시기 정말 목욕탕에 가지 못할 때에 “목욕탕에 가고 싶은 마음과//목욕탕에 가야 하는 몸을 살뜰히” 모아 쓴 시입니다. ‘목욕탕’이란 장소, ‘세신’의 의미가 단순히 몸을 닦는 것만이 아닌 몸과 어떤 것들을 닦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데요. ‘이러한 느낌을 언어적 세신 과정으로 담을 순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읽는 분들이 시를 통과하여 언어적 세신의 과정을 느낀다면, 쓴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첫 시집 『탕의 영혼들』(창비,2023)

첫 시집 『탕의 영혼들』(창비,2023) ©창비

2. 작업의 영감과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말씀해 주세요.

최근에 ‘여덟 개의 산’이란 주제로 시 쓰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같은 제목의 영화 〈여덟 개의 산〉을 보고 인상 깊어, 이를 주제로 다른 여섯 명의 시인과 시를 써서 모아보는 작업을 해보자 기획하고 진행하고 있는데요. 영화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세계는 여덟 개의 산과 여덟 개의 바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 하나의 높은 산, 수미산이 있다’고. 그리고 묻습니다. “여덟 개의 산을 돌아본 사람이 많은 것을 깨달을까요? 아니면 수미산 정상에 올라본 사람이 더 그럴까요?”(영화 〈여덟 개의 산〉 원작인 파올로 코녜티 『여덟 개의 산』(현대문학, 2017) 중) 저는 때때로 이 질문을 떠올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떤 산을 돌고 있는가? 몇 번째 산인가? 그리고 누군가는 수미산에 도달하였는가?’ 그저 이런 생각이 저는 재미있고 저를 자유롭게 하는데요. ‘여덟 개의 산 프로젝트’를 통해 「강을 업고 가는 사람」, 「개망초 너른 들판」, 「돌탑에 안겨」 등의 시를 썼고 아마 올해 중에 잡지에 발표될 것 같습니다.

영화 〈여덟 개의 산〉 포스터

영화 〈여덟 개의 산〉 포스터
©네이버영화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아직까지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정진하진 않은 것 같아서. 다만 ‘시가 인상적이었다’는 느낌을 주고 싶습니다, 일단은.

4. 예술적 영감을 주는 인천의 장소 또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첫 시집 『탕의 영혼들』을 보면 인천의 장소가 꽤 나옵니다. 인천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거나, 때론 인천 사람들도 잘 모르는. 시집 속 인천의 장소는 ‘애관극장’(「애관극장 앞에서」)을 비롯해 답동성당(「답동성당과 내동교회 사이」), 강화도 ‘부근리’(「부근리 고인돌군」), ‘서문’(「서문안마을」), 평화전망대(「평화전망대행」)가 있습니다. 작년에 인천 중구의 작은 서점에서 낭독회를 했을 때 참석자 중 한 분이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애관극장을 발견했다. 애관극장이 만든 이름인 줄 알았는데 실제 운영하는 극장이어서 놀랐다!”는 후기를 남겨 주셔서 속으로 더 반갑기도 했는데요.

위의 장소들은 인천이라서 썼다기보다는 제가 평소에 관심을 두고 있던 주제 ‘시간이 누적된 장소’에 부합하기에 자연스럽게 써진 시입니다. 같은 공간 속에 지금의 나와 한 백 년 전의 누군가의 발자국이 같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소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인천 장소를 한 가지 더 쓴다면 인천 소금밭에 대해서도 써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생각만 하고 있지만.

시 「부근리 고인돌군」의 배경이 된 강화 ‘부근리 고인돌’

시 「부근리 고인돌군」의 배경이 된 강화 ‘부근리 고인돌’
©손유미

시 「서문안마을」의 배경이 된 강화 ‘서문’

시 「서문안마을」의 배경이 된 강화 ‘서문’
©손유미

5. 예술가로서 요즘 관심을 가지는 일이나, 즐거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해마다 모토가 조금씩 바뀌는 것 같기는 한데요. 어떤 해에는 ‘세상에 시의 총량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또 다른 어떤 날엔 ‘자유! 용기! 그로써 독립 매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이렇게 혼자 생각을 하고, 조금씩 시도를 해보기를 좋아하는데요. 가령 독립출판을 해보기도 하고, 작은 서점 낭독회를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계절에 알맞은 시집 읽기 모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시로 재밌는 걸 해볼까?’라는 모토가 있었고 낭독극 같은 낭독회를 기획, 진행할 예정인데요. 음. 재밌을 것 같습니다. 또 동시에 요즘은 작업 자체에 집중하고 싶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하고 있습니다. 집중을 넘어서는 몰입의 순간에만 쓸 수 있는 작품이 있다고 생각해요. 통째로의 시간 속에서 몰입을 통해 만날 새 작품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6. 앞으로의 활동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가까운 활동은 앞서도 언급했던 ‘여덟 개의 산 프로젝트’ 마무리 낭독회가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함께 하는 시인분들을 만났는데 재밌는 낭독회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개인의 시 그리고 그것들이 모인 여섯 시인의 시 전체가 산과 산맥을 이루는 낭독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어떤 지형이 될지 저도 너무 궁금하네요. 그리고 개인 작업으로서는 좀 쇄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있어서, 이를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과는 다른 것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내년엔 원고를 좀 모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그렇다면 두 번째 시집 제목은 무엇이 좋을까? 어떤 꼴로 나올까? 까지. 지금의 느슨한 생각들이 자연스레 촘촘해지며 앞으로 하나의 방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