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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민 마을영화 만들기
권 혁 성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들이 마을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을 직접 제안하고, 주민의 투표를 통해 선정하는 ‘주민참여예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천서구문화재단은 2023년 제안된 ‘OO동 영화만들기’ 사업을 제안받아 ‘인천 서구민 마을영화 만들기’로 사업화된 내용을 주민의 투표를 통해 선정되어 2024년 사업을 진행했다.
본 사업은 단편영화를 교육하거나, 주민의 아이디어로 단편영화를 촬영해 주는 사업이 아니다. 단편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주민을 모으고, 그룹을 나눠 주 1회의 단편영화 제작을 위한 워크숍 모임을 지원하고, 단편영화 제작에 필요한 제원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를 구분하지 않고, 지역에서 단편영화를 찍고 싶고, 실제로 참여하고자 하는 주민을 선발해 2개 팀으로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의 방향성을 잡아줄 수 있는 멘토로는 인천지역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젊은 감독인 ‘안소희’ 감독이 함께 워크숍에 참여해 주었으며, 영화제작의 이해도가 낮은 참여자들에게는 소재 발굴부터 시나리오 작성 등 초반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마을영화 워크숍 모임(소재 발굴 회의)
본 사업이 타 단편영화 제작지원사업이나 교육사업과 차별화된 점은 참여자들이 직접 방향을 설정하고, 많은 권한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재단은 모임이 지속될 수 있는 것에 집중했으며, 실제로 ‘내 영화를 내가 만든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했다. 해당 사업에 참여한 멘토 감독의 평가에서도 ‘초반 방향성 설정 이후에는 워크숍 참여자들이 스스로 모임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는 평이 있었다.
또한, 영화와 관련된 학력 또는 경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역량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다. 미술가부터 작곡가, 배우, 드라마 작가, 회사원, 영화학과 지망생, 정년퇴직하신 주민까지 다양한 연령과 직업, 경험을 가진 참여자들이 각자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되었다.
3개월의 프리프로덕션 단계였던 워크숍 모임 기간을 거친 후, 촬영팀과 배우 섭외과정을 자율적으로 진행해 촬영과 편집을 진행해 ‘백허트’, ‘고통은 없습니다’ 2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2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 주민에게 사업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백허트’ 연출 정원준]
‘백허트’ 연출 정원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전 영화, 드라마 업계에서 신인작가로 작품 집필 중인 작가 정원준입니다. 이번 작품에서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습니다.
Q. 마을영화 워크숍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A.제작사와 극본 집필 계약하고 드라마 집필한 지 1년이 넘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긴 호흡의 드라마 집필에서 오는 부담감을 벗어나는 일탈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동료 작가들을 보면 누구는 지인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또 누구는 헬스장에서 몸을 단련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더라고요. 전 술자리에 큰 재미도 못 느끼고 평소 수영이랑 러닝으로 재충전을 하긴 하는데 몸 쓰는 일에 특화된 사람은 아니거든요. 길어야 한 시간이에요. 그럼 저는 어떤 사람인가? 누가 의뢰하지 않아도 콘텐츠 기획과 아이디어 상상으로 삶을 유희하는 종자거든요. 20대를 그렇게 쭉 보내왔고요.
그러던 중, 집필실 출근길에 우연히 서구 주민마을 영화 워크숍 현수막을 발견했습니다. 짧은 호흡의 콘텐츠라도 주민들과 제작하면 어떨까? 이것도 뭔가 저 같은 종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계기는 되겠다, 또 영화 수다라도 실컷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으로 드라마와 달리 짧은 이야기를 쓰면 재충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러자 창작 욕구가 갑자기 우물에서 물이 터지는 것처럼 샘솟더라고요. 버스 안에서 신청서를 작성하였고 감사하게도 결국 단편영화 연출까지 맡게 된 셈입니다.
Q. 단편영화 ‘백허트’를 소개해 주세요.
A. 허리디스크로 혼자 발톱을 못 깎는 겁 많은 남자가 발톱 깎으려고 네일숍에 방문하는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네일숍 사장이 남자의 여자친구인 게 드러나요. 이 네일숍에서 오랜 연인인 남녀가 각자의 불만을 토로하며 충돌하는 드라마입니다.
Q. 시나리오는 어떠한 소재나 경험에서 시작되었는지?
A. 현재 저의 집필 드라마는 시대극입니다. 그래서 단편영화는 작은 일상의 소품 이야기이길 바랐고 일상에서 제가 제일 잘 아는 사람, 입봉만을 바라며 집필하는 신인 작가 정원준을 누구일까 연구했죠. 그러자 얼마나 제가 웃기고 별 볼 일 없는 놈인지 객관화가 됐습니다. 돈도 잘 못 벌고 예술적으로 그렇다 할 성과도 하나 없는데 허리는 망가진 청년이니까요. 20대 때 셀 수 없는 시간을 영화 보는 데 써서 퇴행성 허리디스크가 생겼고 허리를 제대로 구부리지도 못하는 부실 남성 작가! 이런 남성이 혼자 발톱도 못 깎는 바람에 네일숍에 가면 어떤 이야기가 생길까? 이야기적 상상이 시작됐죠. 한 마디로 일상의 웃긴 아이러니를 포착해 낸 성장 드라마입니다.
Q. 지역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이 있을까요?
A. 근 10년 동안, 세계 3대 영화제에서 각광받는 일본의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를 아실까요? 이 감독은 일본 각 지역의 주민영화 워크숍에서 주민을 배우로 고용하고 지역 예산 지원금으로 독립장편영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그리고 상업영화 예산의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돈으로 세계영화제에서 예술적인 성과를 이루어 차기 거장 감독으로 인정받아요. 그런 성공의 바탕엔 지역성, 다시 말해 지역 주민들의 스토리를 최대한 시나리오에 이용한 덕이라고 봅니다. 주민들 각자의 일상과 삶의 굴곡을 시나리오 집필하는데 많이 참조했더라고요. 물론 그들의 삶이 깃든 얼굴을 카메라에 담은 덕도 있고요. 따라서 앞으로도 시에서, 구에서 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교류하여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을 지원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분명 지역에서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문화예술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2의 하마구치 류스케가 나오지 않으리란 법이 있나요? 전 그런 스타 예술가의 출현을 늘 믿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10.2일 상영회에서 영화를 상영한 뒤 파이널 후반작업을 거쳐서 내년 국내 영화제에 출품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요. 올해에 단편영화 찍을 줄은 몰랐던 것처럼 내년에 제가 어디서 연극 연출을 하고 있을 줄 모르잖아요? 기회가 오면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의외성을 즐길 줄 아는 인천 지역의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울만큼 인천에서도 창조적인 크리에이터 집단이 많아지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백허트’ 미술감독 김기홍]
‘백허트’ 미술감독 김기홍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김기홍이라고 합니다. 인천 서구에 거주하면서 작가, 공연기획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여러 가지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요. 먼저 콘티 작가, 소품 제작, 미술감독, 음악감독, 모션그래픽 타이틀 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예술활동이 모두 한 작품 안에 담기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여러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Q. 마을영화 워크숍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평소에 영화를 즐겨보고, 주변에 영화 미술과 관련된 친구들이 있어서, 저도 언젠가 한 번쯤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제작이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 이루어지다 보니, 제 생업상 여건이 안 되었고, 제가 사는 구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라 저의 상황에 맞아떨어져 신청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단편영화 ‘백허트’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주세요.
A. 작품은 표면적으로 애인 간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습니다. (감독님과 저의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저는 영화 내에서 신체의 분절된 이미지들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손, 발, 허리, 분절된 곤충의 사체까지. 이러한 이미지들이 신체를 하나의 유기체로서가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보게 하는 그런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Q. 지역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이 있을까요?
A. 우선, 같은 지역에서 삶을 산다는 것이 어느 정도의 공통된 경험을 가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들이 참여자들 간의 유대와 팀워크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화 제작 과정의 어려움, 돌발 상황들을 겪으면서 고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준비하고, 촬영하고, 편집을 위해 다시 재조립하고, 음악과 색 보정들의 전체 과정을 보면서,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하게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Q. 마을영화 워크숍 종료 이후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마을 주민들과 작은 영화사를 차렸습니다. 이 프로그램 이후에도, 다른 영상 형태의 창작물(영화, 광고, 드라마 등)을 제작할 것 같습니다.
[‘고통은 없습니다’ 공동연출 강성은]
‘고통은 없습니다’ 연출 강성은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감독을 꿈꾸는 스무 살이자, 사람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강성은이라고 합니다. 영화 보는 걸 좋아해서 영화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저에게 영화는 사람을 섬세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 같은 느낌이라 더 와닿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Q. 마을영화 워크숍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영화를 하고 싶어서 다니던 대학교 휴학하고 오는 날, 아파트 앞 홍보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기회다 싶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단편영화 ‘고통은 없습니다’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A. 우리 작품은 ‘고통은 없습니다’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 ‘아라’에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다는 초월적인 기회가 주어지는데요. 그 기회를 두고 아라가 고민하는 선택의 간격을 이해해 보시길 바랍니다.
Q. 시나리오는 어떠한 소재나 경험에서 시작되었는지?
A. 우리 팀은 시나리오를 다 같이 진행하였습니다. 시나리오 회의가 진행되던 5월은 점점 따뜻했던 날이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사람의 마음이 흔들린다고 합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이게 소재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주인공으로 할지, 어떤 사건을 넣을지, 어떻게 연출해 볼지 서로가 팀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맞춰갔습니다. 죽는 것에 대해서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대화하면서 도출해 낸 결과는 ‘우리가 답을 주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대한 모든 경계를 허물고, 그냥 웃게 하자. 라는 단순한 답이 더욱 와닿았다고 해야 할까요?
Q. 지역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느낀 점은?
A. 저는 서구에서만 20년 토박이인데요! 그사이에 많은 건물이 들어서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항상 사람들이 지나간 그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 것 같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살았지만, 너무나도 다른 서로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저에겐 가장 큰 자극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팀은 나이대가 다양했습니다. 20대부터 40대, 그 이상까지 서로가 살아왔던 삶을 내뱉으며 이해하는 과정이 사람을 배우고 싶은 저에겐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순간들이었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많은 도전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도 만나보고 싶고, 포크레인 자격증도 따보고 싶고, 정해지지 않은 일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좋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많은 걸 경험해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입시를 끝내야겠죠?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단편영화 ‘백허트’, ‘고통은 없습니다’ 편집 중인 참여자
본 사업의 제안자와 제안 내용의 사업화를 위해 첫 미팅을 했을 때, ‘여기서 만든 단편영화가 영화제에 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 사업은 온전히 참여 주민들의 힘으로 완성되었다. 특히, 완성된 2편의 단편영화는 제작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내용에 적합한 배급사를 찾아주고, 영화제 출품을 위한 전 단계를 2024년 안에 마치는 것으로 사업이 종료될 예정이다. 2024년 전국 어딘가의 영화제에서 인천광역시 서구의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가 상영되는 모습을 바라며, 앞으로도 주민의 작은 제안으로 시작되는 주민을 위한 문화예술사업이 활성화되길 기원한다.
권혁성 (權赫星, Kwon HyukSung)
인천서구문화재단 문화예술진흥팀
前)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경영지원팀
前) ShortShorts Film Festival&ASIA 영상팀
前) 인천영상위원회 영상산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