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 놀이 포스터
전통은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온 과거의 문화이지만 미래의 문화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전승되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전통 안에 내재된 집단의 창조적 지혜와 슬기는 미래를 설계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전통은 한국인의 사유체계, 흥과 신명, 한국적 정서와 미학을 담고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소중한 자산이다. 빠르고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동 속에서 전통의 전승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무형유산 황해도평산소놀음굿보존회의 이번 학산소극장 무대는 그 의미가 깊다 하겠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1)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2)
온 마을의 축제가 되어 굿을 통해 협동과 화합을 다지며 개인에겐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놀이이고, 의례(ritual)에서 연희(drama)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예술성과 오락성이 뛰어난 “국가무형유산 황해도평산소놀음굿” 속의 ‘굿 춤’과 ‘소놀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무대화하는 작업을 통해 동시대인과 교감하며 살아 숨 쉬는 문화로 이어가기 위한 고민을 반영한 무대였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3)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4)
한국 무(巫)의 기능을 사제(司祭), 점복예언(占卜豫言), 무의(巫儀), 오락예능(娛樂藝能)의 넷으로 나눈다면, 소놀이는 오락예능적 기능의 비중이 큰 것이라 하겠다. 황해도 평산(平山)소놀음굿은 경사(慶事)굿에서 놀아왔다. 농사나 사업, 장사 등의 번영을 빌거나, 자손의 번창을 비는 뜻에서 행하여졌는데 이때는 온 마을의 축제가 되어, 이 굿을 통해 마을의 협동(協同)과 화합을 다지며 개인에겐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놀이였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5)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6)
굿(巫儀)이나 판소리가 대개 무당이나 광대의 독연(獨演) 형태인 데 비하여, 소놀음굿은 칠성님과 마부를 중심으로 주요 등장인물들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가장(假裝)한 소와 주요 배역들과 많은 구경꾼의 참가로 이루어진다. 연희자가 부르는 소리는 황해도 무가(巫歌)와 서도소리(民謠)이며, 놀이 내용에 맞게 다듬어진 세련된 가사의 노래이다. 칠성제석거리가 끝난 후 팔선녀를 앞세우고 칠성님과 일곱 나졸들, 소와 송아지, 놀이에 참여하는 모든 연희자가 마당으로 등장한다. 먼저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칠성이 지상(地上)에 강림하여 인간을 탄생시키고 조선국(朝鮮國)을 개국(開國)한 서사 무가를 칠성님이 노래 부른다. 연희는 칠성님과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의해 진행된다. 특히 장구를 연주하는 악사는 장단으로 놀이의 완급을 조절하기도 하며 문제를 풀어주고 해소시키는 진행자로서 놀이에 중요하게 참여한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7)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8)
논밭 일구기, 씨 뿌리기, 김매기, 집터 다지는 지정 닦이, 수확한 농작물의 방아찧기 등 농경사회의 모습을 재현하는 집단적 놀이가 장단에 맞추어 노래와 춤과 함께 연희된다. 목화를 물레에서 돌려 옷감 만들기, 신발 만들기, 여러 종류의 술과 나물 등 먹거리의 묘사, 팔도 이름 짓기, 천상의 명복 나누어주기, 송아지의 재롱, 소의 모양 치례 등이 이어지고 법(法)과 뜻을 알려주는 천자문의 해학적 풀이를 끝으로 다시 천상세계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맺는다. 소놀이 속의 ‘소’는 놀이의 중심에서 벗어나서 공동체놀이의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놀이는 농경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와 다양하고 폭넓은 소재를 표현하고 있는 놀이이며 공동체의 대동(大同)을 위한 놀이 정신을 강하게 보여 준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굿 춤 (1)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굿 춤 (2)
무의(巫儀)의 거리마다 추어지는 황해도 굿춤은 오랜 삶의 현장에서 우러난 깊이와 신명을 지니고 있고 황해도 춤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황해도 굿춤이 겉으로 보기엔 활달함을 표방하는 무방비 상태의 동적인 춤인 것 같지만 속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움직이는 것과 같은 활동 폭이 한정되어 있으며 정적인 춤이다. 그러므로 상당한 억제가 필요한 춤이다. 이러한 춤 형식은 오랜 경륜으로 자연스럽게 숙달되어야만 표현될 수 있는 춤, 즉 춤 맛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춤이라고 할 수 있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굿 춤 (3)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굿 춤 (4)
전통연희가 현대의 관객들이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공연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연희의 본질적 특징을 깊이 천착해 들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전통연희의 특징은 첫째 현장성을 들 수 있다. 극중시간(劇中時間)이나 공간이나 내용에 상관없이 모든 행위는 관중의 눈앞에서 살아 있는 행위로써 전개된다. 둘째로 연희는 유희성을 지닌다. 놀이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지는 연희는 연희자나 관중을 물론이고 모든 참여자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제공한다. 유희성은 연희의 본질이다. 셋째로 연희는 양식성을 지닌다. 연희는 개별적으로 독자적인 표현 방법인 어떤 양식 혹은 형식을 통해 관중에게 제시되며, 이러한 양식들은 한편으로는 원형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언제나 변화하려는 가변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양식과 내용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전체다. 여러 가지 표현 매체와 방법과 기능을 종합적으로 늘어놓지 않고 총체적으로 구조화시키는 것, 동시에 고도로 압축되고 상징화된 표현을 구사하는 것 역시 연행의 효과를 최대한 높이려는 양식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넷째로 연희는 창조성을 지닌다. 위에서 이야기한 현장성, 유희성, 양식성은 바로 연희자의 창조성에서 비롯되고 빚어진다. 연희자야말로 창조의 주체이자 기술자이며, 그 몸이 창조의 도구이자 악기고 결과적인 창조체로서 관중 앞에 존재하게 마련이다. 연희자들은 생동하는 연희로 훌륭하게 연희를 창출해낸다. 연희자의 잠재적인 능력과 풍부한 상상력과 고도의 수련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또한 창조는 즉흥성과 가변성을 동반하게 마련이다. 연희는 원형적인 질서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순간순간 즉흥과 변화를 불어넣음으로써 개성적이고 발랄한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굿 춤 (5)
‘까막까치 말씀 적에’ 황해도 평산 소놀이 굿 춤 (6)
(사)국가무형유산 황해도평산소놀음굿 보존회의 지난한 작업을 향한 발걸음이 이번 한 번만의 시도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 도전으로 전통연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결실을 맺기를 기원한다.
이미지 제공: 사단법인 국가무형유산 황해도평산소놀음굿보존회
글 이상희(李常熙, Lee Sanghee)
연출가
한국전통연희연구소(Korea Traditional Theatre Institute) 대표.
극단 제의와 놀이, 극단 코티(KOTT) 대표
(사)국가무형유산 황해도평산소놀음굿 전승교육사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집행위원
2022 청와대 개방행사 “관무” 연출
2019 동아시아문화도시 한중일 인시토(인천.시안.도쿄)연극제 예술감독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 소망의 불꽃(Show6) 감독
2016 문화재청 궁중문화축전 집행위원, 경복궁수문장교대식 운영위원
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조직위원회 대회연출전문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