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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구름 같은 소리라도 비가 되어 내릴지 모르니까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
이예린
뜬구름 같은 소리
문화정책 사업을 담당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다. 간혹 라운드 테이블이나, 포럼을 운영할 때 참여자들께서 주시는 말씀. “맨날 말하라고 하고 변하는 건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들어야 한다, 뜬구름 같은 소리라도 비가 되어 내릴지 모르니까.
왓 구민 원트 카드뉴스 ©남동문화재단
최근 여러 지역의 문화정책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때 우리 모두의 공통된 고민은 “관계자의 의견을 잘 듣고, 이를 어떻게 정책화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시사점들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아요. 이 이야기들을 실제로 땅에 가라앉히고 싶은데 항상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허공에 있다 사라져 버리는 거 같아요”
지역 관계자나 예술인들은 각종 라운드 테이블, 포럼, 토론 등에 반복되는 “목소리 내기” 행위에 피로감을 느끼게 될 수 있고 의견이 반영되지 않거나 변화가 없는 경우에는 문화재단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 담당자들은 더욱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했다. 이제는 이야기들을 가라앉혀야만 했다. 사업을 고도화하고 구민들의 니즈에 맞춘 프로그램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하여야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업이 바로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이다.
속마음을 듣고 싶은 마음에
남동문화재단 2024년 문화예술 진흥 정책사업 중 일환으로 추진하는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는 영화 <왓 위민 원트>를 모티브로 한 사업명으로 우연한 사고로 타인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이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것처럼 구민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사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마련하여 문화정책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라운드 테이블 프로젝트이다.
왓 구민 원트(청년) ©남동문화재단
왓 구민 원트(환경ㆍ생태) ©남동문화재단
본 사업은 남동구의 대내외 환경에 맞춰 6개의 아젠다(청년, 환경ㆍ생태, 거버넌스, 남동산단, 예술인, 원도심)를 도출하고 이를 주제로 구민ㆍ예술인ㆍ유관기관 등 재단 고관여자와 협력하여 정책 과제를 발굴한다.
내가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를 통하여 기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구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채널을 마련하여 문화정책 참여의 허들을 낮추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닌 보통의 구민들도 라운드 테이블이나 토론 등을 통해 주도적으로 정책 개발에 참여하여 도시문제를 고민하고 문화적으로 해결ㆍ실천하는 역할을 해나갈 수 있도록 문화적 역량 강화 관점으로 방향성을 수립하고자 했다.
둘째, 라운드 테이블을 통해 도출한 결과로 아주 작은 변화라도 가시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아주 작은 하나라도 실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경영 부서와 협의를 통해 사업 실무자들 대상 임직원 내부 교육 연계 프로세스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각 사업의 실무자들이 라운드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현장의 의견을 빠르게 수렴하고 환류하여 나아갈 수 있는 활로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구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 정책이 자리 잡고, 더 나아가 지역 사회의 문화적 풍요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과정이 결국에는 더 나은 문화 환경을 만드는 초석이 될 것이고,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길이 되기를 바라며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를 기획했다.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
24년 6월 남동구 청년 창업지원센터에서 진행된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는 청년예술인과 창업기업 대표 8명이 모여 현장의 의견을 공유했다.
먼저 문화예술 분야 청년 창업기업인 프리즈미의 김태헌 대표가 청년 예술인, 청년 창업기업, 그리고 문화재단이 협업한 우수사례를 공유하며 “연결과 해석”의 중요함을 상기시켰다. 각각의 주체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 방향이 한곳을 흐를 수 있도록 하는 협력과 목표 설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에 진행된 자유 토론에서는 청년들이 남동구에 뿌리를 내리고 정주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이를 위해 남동 국가 산단, 소래, 생태 문화 등 남동구만의 지역 자원을 활용한 청년 중심의 프로젝트를 요청했다. 또한 지원 사업의 형태가 아닌 기획부터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파트너십의 관계가 이어지길 바란다는 의견을 내었다.
왓 구민 원트(청년) ©남동문화재단
왓 구민 원트(청년) ©남동문화재단
다음으로 진행한 <구민이 원하는 문화: 왓 구민 원트>는 2024년 7월, ESG의 관점에서 생태ㆍ환경을 주제로 진행되었다. 남동구 예술단체인 코드아트의 김예훈 대표의 업사이클링 공연기획 사례공유를 시작으로 남동 국가 산단 내 유수지에 소재하는 저어새 생태학습관과 남동 국가 산단을 관리하는 한국산업단지 공단 인천지역본부 관계자, 생태 보존 활동가, 재단 임직원 등이 참여하여 열띤 논의가 진행되었다.
참석자들은 소래습지, 저어새 등 남동구의 풍부한 생태 자원을 알리고 지키기 위한 인식 개선 노력을 한 목소리로 요청하였고, 남동문화재단, 한국산업단지 공단 인천지역본부, 저어새 생태학습관 등이 공동으로 ESG 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의견도 도출되었다.
앞선 두 프로젝트를 통해 남동문화재단은 청년들이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기반으로 주도적인 참여가 가능한 신규사업을 기획하여 2025년 경영계획에 반영하고자 하며 저어새 생태학습관과 MOU를 체결하고 남동문화재단 임직원과 예술인 대상 지역 생태자원 교육 및 환경 보존을 위한 인식개선 교육을 협력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왓 구민 원트(생태ㆍ환경) ©남동문화재단
왓 구민 원트(생태ㆍ환경) ©남동문화재단
뜬구름 같은 소리라도 비가 되어 내릴지 모르니까
문화정책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대화와 협력이 계속된다면 구민들은 지역 문제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높이고 자발적인 참여와 실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남동문화재단은 구민 및 예술인과 신뢰를 구축하고 협력적 거버넌스를 형성하는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비록 당장에 대단한 성과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가랑비가 마른 땅을 서서히 적시듯 구민들의 문화적 역량이 조금씩 자라나 언젠가는 그 결실이 풍성한 나무로, 또 숲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이에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진정으로 구민들의 소리를 듣겠다.
뜬구름 같은 소리라도 비가 되어 내릴지 모르니까.
이예린(LEE YE RIN)
남동문화재단 정책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