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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목소리로 만드는 큰 축제 <학산마당극놀래>

박수희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사회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었다. 숲속의 나뭇잎처럼 각양각색인 도시인들은 저마다 욕망을 꿈꾸며 다채로운 목소리로 도시를 가득 채운다. 하지만 모든 목소리가 같은 무게와 속도를 갖는 것은 아니어서 때로는 웅얼거림으로 목구멍을 타 넘지 못하고 가슴께에 무겁게 가라앉기도 하고, 혼잣말이 되어 입에서 나오자마자 바닥으로 툭 떨어져 소멸해 버리기도 하며, 공기 속을 부유하다 길을 잃기도 한다. 목소리는 공기의 진동을 타고 타인에게 가닿을 때 비로소 소릿값을 갖게 된다.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타인과 공명할 때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되고 도시의 서사가 되어 생명을 갖게 된다.

미추홀구 숭의동 ‘꽃차마실’에서 열린 마당예술동아리 시민리더 모임

미추홀구 숭의동 ‘꽃차마실’에서 열린 마당예술동아리 시민리더 모임
©미추홀학산문화원

미추홀구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로 가득 찬 축제 <학산마당극놀래>가 열린다. 야트막한 담장으로 에워싸인 우리나라 전통 주거 공간인 ‘마당’은 안과 밖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비어있어 더 많은 것을 품는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부터 대소사에 이르기까지 자질구레한 삶의 이야기로 풍성한 우리네 마당처럼, ‘마당극’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모든 형태의 놀이를 품는 공연예술로 참여자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연희극이다.

<학산마당극놀래>는 ‘미추홀학산문화원’이 주관하는 시민창작예술축제로 올해 11회째다. 매해 봄부터 미추홀구의 어린이, 청소년, 중장년, 노인, 직장인, 장애인, 이주민 등 100명이 넘는 주민들로 구성된 마당예술동아리들이 마당극을 준비한다. 가을이 되면 높고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열린 마당에서 동아리마다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엮어 마당극으로 풀어놓는다. 지난 10년 동안 2천여 명의 주민이 140개 창작극으로 무대에 올랐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모인 관람객은 3만 명이 넘는다. 동아리들은 춤, 노래, 풍물, 인형극, 난타, 영상, 마임에 이야기를 담아 펼치고, 관람객으로 온 가족과 이웃은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하나가 된다. 축제가 마무리될 즈음이면 밤하늘을 밝히는 무수한 별처럼 개별적인 나의 목소리가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져 모두의 마음을 가득 채운다.

<학산마당극놀래> 포스터 모음 ©미추홀학산문화원

<학산마당극놀래> 포스터 모음
©미추홀학산문화원

각각의 마당예술동아리 회원들은 매주 모여 예술 강사와 마당극을 준비한다. 서로의 눈을 맞추며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여러 목소리는 하나의 형태를 갖추게 되고, 예술 강사는 여기에 회원들의 개성과 장르적 특성을 담아 대본을 만든다. 대본 초고는 모두와 공유되고 수정을 반복하면서 완성된다. 작은 삶의 조각들은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겨 여름 내도록 동아리 회원과 예술 강사의 땀으로 무르익는다. 올해도 총 9개 동아리, 100여 명이 넘는 회원들이 ‘아름다운 동행’이란 주제로 마당에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

초등학생 18명으로 구성된 동아리 ‘마당깨비’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AI돌봄로봇과 노인의 동행을 탈춤으로 엮어 들려줄 예정이다. “학교에는 선생님이 있고, 동아리에는 스승님이 있다”라고 말하는 마당깨비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스승님’과 만나 탈춤극 <난 너의 친구야>를 신나게 준비하면서 쑥쑥 자라난다.

초등학생으로 이루어진 마당예술동아리 ‘마당깨비’ 연습 풍경

초등학생으로 이루어진 마당예술동아리 ‘마당깨비’ 연습 풍경
©미추홀학산문화원

부부의 연을 맺고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다문화 워킹맘 7명이 모인 동아리 ‘클로벌’은 마임극 <연緣>을 준비 중이다. 아직은 한국 사회가 낯설지만, 동네와 직장에서 따뜻한 인연을 만나 단단하게 관계망을 형성해 나가는 그녀들의 분투기를 담았다. 목소리를 소거한 채 몸짓만으로 전해질 떨림과 파동이 기대된다.

이 밖에도 중장년층으로 구성된 동아리 ‘둥우리’, ‘아름다운 비행’, ‘학나래 두드림’, ‘별마루’, ‘어수선’은 이야기극 <세상에 이런 집구석이>, 연극 <안녕을 위하여>, 난타극 <학익1동 학나래빨래방>, 입체낭독극 <김밥과 초밥>, 연극 <밥줄까 물줄까>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이웃, 반려동물과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청소년 연극 연합동아리 ‘무대위너’는 MBTI 유형별로 돌봄 사례를 흥미롭게 보여줄 뮤지컬 <그 해 우리는 T라미수케>를 준비 중이고, 시니어 합창단 ‘미추홀 하모니’는 음악극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 어르신들의 힘겨웠던 과거와 찬란하게 빛날 미래를 담아 노래할 예정이다.

미추홀구 도화동 주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당예술동아리 ‘어수선’의 연습 풍경 ©미추홀학산문화원

미추홀구 도화동 주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당예술동아리 ‘어수선’의 연습 풍경
©미추홀학산문화원

‘학산마당극놀래’에는 마당예술동아리와 함께 ‘시민이 주인이 되는 축제’의 양축을 이루는 주민심사단 ‘함께봄이’가 있다. ‘함께봄이’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축제의 마당을 넘어 동네 구석구석으로 흘러넘치도록 증폭시켜주는 역할을 맡는다. 매해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하며 축제의 날 마당극을 보고 심사를 하게 된다. 지금 학산문화원에서는 9월 28일 토요일 수봉공원 인공폭포 앞 야외마당에서 함께 축제를 완성할 200명의 ‘함께봄이’를 모집 중이다. 누구나 간단하게 온라인 구글폼으로 신청하면 축제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다.

복잡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가까이 부대끼며 서로 울림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우리 주위에는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챌 수밖에 없는 큰 울림도 있지만, 애써 귀 기울이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숨죽인 목소리와 작은 몸짓으로 가득하다. 열린 마음과 오감으로 무장한 시민들의 축제인 <학산마당극놀래>는 도시의 작은 목소리들이 소릿값을 갖고 공명하고 증폭되어 도시로 흘러넘치는 커다란 폭포다.

지난해 가을 수봉공원에서 펼쳐진 제10회 현장 ©미추홀학산문화원

지난해 가을 수봉공원에서 펼쳐진 제10회 <학산마당극놀래> 현장
©미추홀학산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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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제11회 학산마당극 놀래 포스터
©미추홀학산문화원

박수희

박수희 (SuHi Park, 朴秀姬)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지금은 문화대학원에서 지역문화를 공부하고 있다.
다채롭고 평범한 사람들의 공간과 일상을 시속 4km의 속도로 걷고, 보고, 말하고, 읽고, 쓰고, 노래한다.
특히 오랜 시간과 성실한 손길이 담긴 것들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