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인공지능의 시대’를 꿈꾸며
김정배
프랑스의 상업 예술가 장 마르크 코테(Jean-Marc Côté)는 120년 전 20세기 말의 사회를 상상하며 재미있는 삽화 작품을 여럿 남긴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의 파리 사람들은 코테의 작품을 보며, 100년이 지난 2000년대에는 사람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일상을 살아가게 될지를 그림으로 상상하곤 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지만, 당시 코테가 그린 삽화는 현재를 사는 우리 삶의 모습과 그 의미 면에서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하면, 2022년 11월 말 오픈AI(Open AI)가 내놓은 대화형 전문 인공지능 챗GPT는 세상을 한 번 더 들었다 놓는다. 인공지능학자들은 웹3와 AI가 만난 이 시기를 “디지털 생태계 속 캄브리아기 대폭발 같은 혁신”이라고 입을 모아 규정한다. 이때 우리는 10년 동안에 있을 변화를 단 1주일 만에 경험하는 놀라운 시대를 살게 된다.
1900년 장-마르크 쿠티(Jean-Marc Côté)가 2000년을 상상하며 그린 삽화 작품
Apple, 최초의 공간 컴퓨터 Apple Vision Pro
Hello Apple Vision Pro 영상
“석기시대는 돌이 없어서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OPEC을 이끌었던 ‘석유왕’ 야마니가 미래 인류 역사의 과정을 논하는 자리에서 던진 어록이다. 이 문장은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제는 누구나 다 아는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를 떠올려보자. AI가 생성한 디지털 아트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이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사건 말이다. 당시 이 사건은 많은 예술가에게 큰 반향과 이슈를 일으킨다. 수상 작품은 ‘미드저니’라는 AI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었으며, 설명문을 입력하면 이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기술이 그대로 적용된다. 이 사건은 예술의 창의성과 AI의 역할에 대한 다양한 논쟁거리를 불러온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예술이 죽었다”라는 비판 속에서도 “결국 창의성이 요구된다”라고 반박하며, AI가 인간의 예술 창작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이에 발맞춰 음악 생성 AI ‘믹스오디오’도 등장하는데, 이 도구는 사용자가 원하는 음악을 텍스트 프롬프트나 이미지, 오디오 등 다양한 입력을 통해 멀티모달 AI로 생성하는 서비스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이러한 AI 기술은 창작 과정의 큰 혁신을 가져오며, 이미 1만 5천곡 이상의 음악을 생성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AI가 생성한 디지털 아트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
GPT-4o 공개 유튜브 캡쳐 화면
Open AI는 2024년 5월 GPT-4o를 새로 공개한다. 이날 세상은 한 번 더 뒤집어진다. GPT-4o의 o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Omni의 약자로, 텍스트와 오디오, 이미지를 동시에 입력받고 출력할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된다. GPT-4o는 사용자와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으며, 대화 상대의 감정을 인식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감정 표현을 제공한다. GPT-4o의 음성 모드는 말하기 전 1~2초의 대기 시간이 있던 기존 버전과 달리 언제든지 말을 시작할 수 있으며, 답변도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따라서 인간에게 농담도 하고, 상황에 따라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GPT-4o도 삼일천하로 끝날 분위기에 직면한다. MS와 구글의 기기 전쟁이 곧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MS는 예고한 대로 PC에, 구글은 스마트폰에 AI를 접목한다. 별도의 클라우드 연결 없이 단말 기기에서 바로 AI가 작동하는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장착해 ‘내 손안의 AI’를 가능케 한 것이다.
겉으로만 보면 기선 제압은 구글이 압도하는 눈치다. 사실 구글은 2023년부터 ‘AI 폰’ 출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메이드 바이 구글(Made by Google)’ 행사에서 신형 스마트폰 ‘픽셀8’ 시리즈를 공개하며 스마트폰에 AI를 접목한다고 선언한 바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구글은 AI 비서 기능과 이미지 수정 기능을 강화한다. 기존에 운영하던 AI 비서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에 자체 개발한 대화형 AI 도구 ‘바드’를 탑재한다고 밝힌다. 이를 통해 날씨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을 넘어 복잡한 대화까지 가능한 AI 비서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고 소개한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저장한 일정을 자동으로 안내하거나 복잡한 대화 검색까지 가능해진 것이다. 더불어 구글은 이미지 수정 기능도 강화한다. 원하지 않는 이미지나 영상 내 소리를 없앨 수 있는 ‘매직 지우개’ 기능을 추가하고, 비슷한 사진들을 활용해 최선의 사진을 만드는 ‘베스트 테이크’ 기능을 개선한다. 구글 포토의 ‘매직 에디터’에도 생성형 AI가 적용되어 간단한 조작만으로 피사체의 위치와 크기를 조정하거나 다른 배경을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I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과 그의 작품
AI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의 작품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AI와 예술의 융합에서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동반한다. 예를 들어, AI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인간의 감정과 창의성을 AI가 대체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에게 더욱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AI가 창작 과정에 더 많이 관여할수록, 우리는 AI의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 책임, 진정성 등의 문제를 더욱 심도 있게 논의할 필요가 제기된다. AI가 예술가의 일자리를 위협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AI와 NFT(대체 불가능 토큰)의 결합은 ‘넥스트아트’(Next Art)라는 새로운 예술 흐름을 형성한다. 디지털 아트와 AI 기술이 결합된 작품들은 기존의 예술 형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가령, AI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Refik Anadol)은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활용하여 몰입형 디지털 설치 작품을 창조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그의 작품 ‘Unsupervised’는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큰 주목을 받으며, AI와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디지털 아트,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가 NFT로 거래될 가능성을 확장한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수익 모델을 제공하며, 예술 작품의 유통 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NFT로 발행하여 전 세계의 수집가들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된다.
밤하늘의 별 이미지(GPT-4o로 생성한 이미지)
영화 <크리에이터> 포스터
1984년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Terminator)는 2029년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핵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기계들이 일어나는 내용을 담는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터미네이터는 그 의미 그대로 ‘종말’이라는 강렬한 주제 의식을 통해 AI의 파괴적 가능성을 경고한다. 이와 다르게, 2023년 개봉한 영화 <크리에이터>(Creator)는 ‘창조’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시각으로 AI와 인간의 공존을 탐구한다. 이는 인공지능의 관점이 종말에서 창조로 이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화 <크리에이터>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사람, 창조자, 창작자, 생산자, 개발자, 작가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물론 영화 포스터 속 로그라인은 우리에게 그 의미의 방향성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남겨놓고 있다. “인간의 적인가, 인간적인가”라는 물음으로 말이다.
헝가리 철학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라고 되묻는다. 이 말은 인간이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찾고, 그 길을 밝히는 별을 보며 나아가는 과정을 행복으로 여겼던 시절을 회상하게 만든다. 이제 우리는 AI라는 새로운 별빛 아래서, 문화예술의 새로운 길을 탐구해야 한다. AI가 우리에게 새로운 창조의 지도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과정에서 우리의 윤리적 나침반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정배(金正培, KIM JEONG BAE)
글마음조각가라는 별칭으로 시인, 문학평론가, 포엠송라이터,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그림’ 작가로 활동 중.
인문학연구소장, 글로벌K-컬처선도융합인재양성사업부단장(단장대행), 글마음조각가의 한 뼘 미술관 ‘월간 그리움’ 대표 운영자.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음악문화학과 대학원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페르케스트와 포트폴리오 독립생활자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습니다.
grigo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