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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편안한 가족과 함께 낯선 식탁으로 <두근두근 식탁>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제2전문위원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낯선 것들을 만나왔다. 따뜻하고 안락한 엄마의 품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다. 안온하고 익숙한 세계에서 모든 것이 낯선 세계를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생이란 매 순간이 용감한 모험과 도전의 연속이다. 수도 없이 새로운 환경, 사람, 도전과제를 만나며 우리의 문화다양성 역량은 점차 성장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고 익혀가는 데에 보다 능숙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런데 스펀지처럼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익히고, 받아들이던 우리는 어느 순간, 익숙한 것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 낯선 것을 먼저 찾지 않게 된다. 일상의 무게에 지쳐 에너지를 아끼고 싶을 때, 내가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거절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더욱 그러하다. 새로운 것을 위해 열어두는 내 삶의 문의 폭이 좁아질수록 ‘내 문화’의 담은 두텁고 견고해진다.
문화다양성이란 익숙함에서 시작해 낯선 것들을 안아가며 우리 자신의 품을 넓혀가는 여행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문화다양성 확산을 위해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여정을 그치지 않고 계속해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문화다양성 확산에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 중 하나는, ‘어떻게 낯선 것을 조금 더 편안하게 계속 경험할 수 있게 할 것인가’다. 그래서 우리가 기획한 문화 프로그램은 이러한 낯선 경험을 함께할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 ‘가족’과 함께했다. 또한 식탁과 식사라는 일상이 다양성의 체험이라는 비일상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낯선 음식에 대한 설렘과 기대, 걱정과 두려움. 다소 에너지가 필요한 이 경험에서 가족은 서로의 뒷배가 되어주며 용기를 북돋고, 서로를 안심시켜 주었다.
5월 5일 어린이날에 열렸던 <두근두근 식탁>은 부평구문화재단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되어 2021년부터 수행 중인 문화도시사업 중 문화다양성을 알리기 위한 사업이다. 행사의 기본 개념은 무척 간단하다. 다 같이 모여 미얀마, 중국, 베트남의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왜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는지 가볍게 행사 취지 소개가 있었고, 간단한 사진 자료와 퀴즈를 통해 오늘 음식으로 만날 세 나라의 문화적 특성을 나누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된 가족 참가자들은 집에서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과 함께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세 나라의 음식을 맛보았다.
두근두근 식탁의 낯선 음식들의 설명을 읽어보며 음식을 신중하게 고르는 어린이 참가자들
©부평구문화재단
준비된 다양한 음식을 즐겁게 나누는 시간 ©부평구문화재단
이 간단한 식사의 과정에 문화다양성의 의미와 가치, 즐거움을 실어보고자 했다. 두근두근 식탁에 준비된 음식은 미얀마의 ‘황금 계란 카레와 토푸짜옥(두부튀김)’, 중국의 ‘냉면구이’, 베트남의 ‘반미’였다. 이 음식들은 모두 각 나라가 다른 나라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서로 영향을 받아 토착화한 음식들이다. 참가자들에게 음식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음식이 탄생한 역사적, 지리적 관계를 이야기와 문답으로 전했다.
카레 하면 떠오르는 나라는 인도지만, 미얀마는 인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 옛날부터 교류가 많았기에 카레가 미얀마의 보편적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바게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지만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베트남에 맛있는 바게트가 전파되고 베트남의 전통 음식과 섞이며 현재의 베트남 대표 음식 중의 하나인 반미가 되었다. 중국의 냉면구이는 한국인들이 익히 알고 있는 중국 음식이 아니라, 중국 북동부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와 영향을 받으며 만들어져 불과 3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최신 음식이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나라들의 음식도 다양한 교류를 통해 영향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새로운 맛이 탄생하는 것처럼 문화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교류하고 섞이는 것,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되 내가 가지고 있던 고유의 것에 맞게 소화하여 자기화한다는 것을 음식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문화다양성의 의미와 가치를 함께 나누기 ©부평구문화재단
<두근두근 식탁>에서 음식으로 만나는 나라들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통하는 시간
©부평구문화재단
각 참여자 가족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이 프로그램에 기여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로 역할 할 수 있도록 했다. 음식과 문화의 이야기를 퀴즈를 통해 이야기 나누는 순간에서도 참여자들은 적극적 주체로 함께했다. 중국 이주민 가족들은 냉면구이의 소개 이야기에서, “맞아, 맞아!”, “그건 그렇지.” 하며 진행자의 이야기에 사실 확인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어린이 참가자들은 세 나라의 문화에 대해 지식을 뽐내며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처럼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고 함께 먹는 우리는 서로 관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참여자들에게 매우 짧은 시간의 기억이겠지만, 음식 속에 담긴 이야기를 음미하며 함께 식구가 되는 과정이 행복한 경험으로 남았으면 한다.
두근두근 식탁은 다양성 실현이 일상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가치가 아니라, 우리 삶에 늘 함께하는 것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물론 이 한 번의 경험으로 갑자기 다양성이 확산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익숙함에서 낯선 것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 일상의 이벤트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우리가 종종 헤어지기 아쉬울 때 쓰는 말처럼 말이다. ‘우리 언제 밥 한 끼 합시다!’
이완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국가인권위원회 자유권 제2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