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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섬, 어디까지 가봤니

홍인희

인천문화재단은 인천시립박물관, 옹진군청과 섬 조사‧연구 및 섬마을박물관 조성(운영)에 관한 협약을 맺고 사라져가는 인천의 섬 생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해양문화유산을 보존하여 기억하기 위해 2021년부터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1년에 1개의 섬을 선정해서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조사한다.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천문화재단에서는 인천 섬 생활사 조사보고서를 내고, 인천시립박물관은 전시회를 개최한다. 그리고 옹진군청이 섬에 유휴공간을 마련하면 섬마을 박물관을 조성하는 것이 이 사업의 구조이다. 2021년에는 볼음도를 조사했고, 2022년에는 신도‧시도‧모도, 2023년에는 자월도를 조사하여 보고서를 발간했다.
(각 보고서는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제1집 볼음도

제1집 볼음도
ⓒ인천문화재단

제2집 신도‧시도‧모도

제2집 신도‧시도‧모도
ⓒ인천문화재단

제3집 자월도

제3집 자월도
ⓒ인천문화재단

첫 공동 조사를 했던 볼음도는 강화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볼음도에는 북한과 연결된 전설을 간직한 천연기념물 은행나무가 있고, 백합과 상합 등의 조개가 많이 난다. 일제강점기 광산의 흔적도 볼 수 있다. 서해안의 섬들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시대에는 볼음도에도 목장이 있었으며, 요망대도 있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상여집과 당집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으면서도 100년이 넘은 볼음교회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황금어장이었던 볼음도 인근 바다는 남북이 분단되면서 더 이상 고기잡이를 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떠났고 볼음도 북쪽 바다는 민간인 통제구역이 되었다.

볼음도 은행나무 ⓒ인천문화재단

신도에도 일제강점기 광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조선의 작은 섬까지 들어와 우리의 광물을 캐간 것을 보면 일제의 수탈이 얼마나 작은 곳까지 뻗어있었는지 알게 된다. 시도에는 일제강점기 도리이 류조가 조사한 패총의 흔적이 있다. 당시 시도까지 온 조선총독부 고적조사위원회 소속 고고학자이면서 인류학자이며 민속학자이기도 했던 도리이 류조는 당시 시도의 패총에 대해서 유리 건판 사진, 유적 도면, 수습 유물들의 탁본 등을 남겨 놓았다.

조선시대 섬은 주로 목장으로 사용했다. 신도와 시도에도 역시 목장이 있었다. 신도 출신 독립운동가로 최수연, 이호승 두 분이 있으며, 독립운동가로 추서되지는 않았지만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신도 출신 이경례라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모도에서는 각각 1909년, 1915년에 사용 승인된 집들을 발견하고 기록해 놓았다. 한국전쟁 이후 신도에 정착한 피난민 1세대를 만나 인터뷰하고, 당시 공생염전을 만든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만든 공생염전은 없어졌지만, 시도에는 아직도 운영 중인 염전이 남아 있다.

1966년 신도 하머리 선착장 ⓒ차학원

1966년 신도 하머리 선착장 ⓒ차학원

자월도에도 당연히 조선시대 목장이 있었다. 자월도에서는 1881년과 1886년 상량문이 남아 있는 살림집을 발견해서 기록화했다. 그러나 올해 초 1881년 상량문이 있었던 집은 철거 되고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상량문이 적힌 나무 기둥 하나만 겨우 수습했다고 한다. 비록 빈집이었지만 무려 1880년대 집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섬이다. 상상이 가는가? 무려 1880년대 지어진 집이다. 그러나 섬도 예외 없이 오래된 집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옛날부터 섬은 물이 귀한데 자월도는 물이 많았다고 한다. 자월도에서 이장님과 옛날에 쓰던 우물의 흔적을 찾았다. 지나가던 배도 자월도에 들러 물을 보충받을 정도로 물이 많은 섬이었다고 한다.

자월도 전경 ⓒ박경배

자월도 전경 ⓒ박경배

섬에도 학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교되었거나(볼음도)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폐교될 위기이다. 인구감소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쩔 수 없는 형국이다. 점점 학령 인구가 줄어서 도심 한복판에서도 폐교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100년이나 학교로 썼던 공간을 방치하거나 철거하기보다는 의미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하는 방법도 상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 공간을 채우기 위한 콘텐츠 수집이 우리 섬 조사의 의미이기도 하다.

2024년에는 영흥도를 선정하여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영흥도는 섬이 크고, 시설이 많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 2년에 걸쳐서 조사할 예정이다. 기존에는 재단 직원과 박물관 직원만 조사단으로 참여했는데, 올해는 외부 집필진도 위촉하여 내용과 전문성 면에서 더 성장한 보고서로 발전시키려 한다. 영흥도는 2001년에 이미 연륙교가 개통되어 이젠 더 이상 도서지역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영흥화력발전소가 들어오기 전 조사보고서가 나온 이후 한참을 조사하지 않았다. 이후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영흥대교 건설과 주민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기록으로 남길만한 시간이 되었다. 영흥도의 이야기는 2년 동안 섬 생활사 조사 보고 제4집과 제5집에 담길 예정이다.

인천에는 많은 섬이 있다.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힐링 포인트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섬을 관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섬에서 정주하는 주민들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많이 부족하다. 섬에 살고 계신 분들은 이미 연로하셔서 결국 돌아가시거나 뭍으로 나오게 되면 섬은 무인도가 된다. 정주 여건을 개선해서 섬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서해안 섬들은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는데, 앞으로도 인간의 흔적이 계속 이어져 그 세월 위에 켜켜이 또 다른 흔적이 쌓이길 바란다.

인천은 하늘길과 바닷길이 만나는 한반도의 중심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 수도권 주변에서 갈만한 섬을 인천은 많이 갖고 있다. 그 섬에 대한 이야기를 발굴해 내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흥미이지만, 섬에 살고 계신 분들에게는 자부심이 될 수 있다. 올해는 인천의 섬을 하나씩 방문해 보는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홍인희(洪仁姬, Hong In Hee)

정책연구실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