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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구도심 골목에 찾아온 변화, 복합문화공간 <화안>
박경호
인천의 유명 관광지 인천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 사이에도 방문객의 발길이 좀처럼 가닿지 않는 골목길이 있다. 도로명 주소로는 인천 중구 자유공원서로37번길. 주말이면 인천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엔 인파가 넘치지만, 이상하게도 200m가 조금 넘는 이 골목길은 한산했다. 주변 다른 골목보다 가볼 만한 장소가 적기 때문일까.
지난 3월 이 골목 마을에 예술가 부부가 아늑한 둥지를 틀면서 분위기가 점점 환해지고 있다.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인천의 대표적 실내악단 i-신포니에타 조화현 단장과 서양화가 김영규 부부의 복합문화공간 ‘화안’(hwa-an)이다.
벽돌을 쌓은 것처럼 꾸민 외관의 4층 건물의 1층은 카페 겸 갤러리, 2층은 갤러리 겸 공연장이다. 3~4층은 김영규 작가 작업실과 부부가 사는 집이고, 루프탑도 있다. 1층 외부엔 진돗개 ‘진주’의 집이 있다. 진주는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 화안의 마스코트다. 바깥에서 볼 땐 여느 카페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1층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각양각색의 화초와 그 화초들보다 훨씬 화사한 김영규 작가의 그림들이 눈에 띈다. 꽃밭으로 들어온 듯하다.
2층은 김영규 작가의 대작이 사방을 둘러싸고, 그랜드 피아노가 한 편에 놓인 본격적인 문화공간이다. 미술과 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인천에선 흔치 않은 공간이다. 3월 개관 이후 『고유섭 평전』을 쓴 이원규 작가의 북 콘서트와 클래식 공연이 2층에서 잇따라 열렸다. 화안의 첫 공연은 지난 3월 8일 마을 주민과 인근 상인들을 초대한 집들이 겸 신년 음악회였다. 주민들도 악기를 연주해보는 마을 연주회이기도 했다.
인천차이나타운과 송월동 동화마을 사이 골목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화안’ 전경
©박경호
복합문화공간 ‘화안’을 운영하는 화가 김영규(오른쪽), 음악가 조화현 부부.
그리고 반려견 진주 ©박경호
화안은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등장한 곳이 아니다. 예술로 공동체를 이루고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예술가 부부의 신념과 그들이 걸어온 삶이 녹아든 공간이다. 인천의 열정적인 음악가와 남도의 예향 순천에서 이름난 화가이자 대학교수의 만남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조화현 단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남편이 학교를 그만두고 작업실이 필요해 여수와 순천의 경계에 있는 시골 마을에 집을 짓고 5년 동안 살았어요. 대다수가 농사짓는 7~80대 어르신 38가구가 사는 조용한 마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마을에서 가장 젊었죠. 우리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마을 어르신들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 마을 주민들을 초대해 집 앞마당에서 <시골집 콘서트>를 열었어요. i-신포니에타 단원들을 다 내려오라고 해서 턱시도를 차려입고 진행한 정통 클래식 공연이었습니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보는 분도 계셨는데, 어찌나 감동하셨는지 주머니에서 1만 원씩, 2만 원씩 제 손에 쥐여주는 거예요. 마다하느라 혼났죠. (웃음)”
여수 율촌면 가장리, 일명 ‘난화마을’의 시골집에서 시작한 콘서트는 12차례 이어졌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마을 주민들의 숨통을 틔워준 청량제 같았다. 금세 입소문이 퍼져 외부 손님들도 음악회를 찾았다. 조화현·김영규 부부의 집 앞마당은 공연이 있는 날엔 주민들이 정성스레 키워낸 청계란이나 양파, 감자 등을 파는 장터가 열리기도 했다. 문화예술이 찾아온 마을엔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난화마을 특산물 금화규로 만든 꽃차는 화안에서 마실 수 있다.
난화마을 시골집에서 열린 <시골집 콘서트> 장면 ©조화현
복합문화공간 ‘화안’에서 열린 이원규 작가 북 콘서트 ©조화현
부부가 난화마을을 바꿨듯, 마을에서의 5년도 부부의 삶을 바꿨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고 조화현 단장의 활동 무대인 고향 인천에서 일이 많아지면서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던 중 우연찮게 화안 건물을 만났다. 애초 강화도나 영종도 쪽에 조그마한 갤러리와 작업실 겸 집을 지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인천미술협회장을 지낸 중견 서예가 최원복 선생이 지난해 2월 신축한 갤러리 겸 카페 ‘화안’을 더는 운영하기 어려워지면서 조화현·김영규 부부에게 맡아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화안 인수) 얘기가 나왔는데, 최원복 선생님이 연말에 이사 오라고 하는 거예요. 12월 초 선광미술관에서 개최했던 김영규 작가 전시가 끝나자마자 작품들을 곧바로 화안으로 옮겼어요.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난화마을에 있는 짐을 아작 다 못 뺐고요. 제 이름에 ‘화’가 들어가는 것도 인연이라서 화안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기로 했어요. 개관 준비에 김영규 작가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4월 3일~18일)까지 겹치면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요.”
조화현 단장이 동인천역 인근에서 운영하던 ‘콘서트하우스 현’이 2018년 문을 닫으면서 아쉬워했던 이들은 화안을 찾으면 될 것 같다. 이젠 김영규 작가의 거친 붓질에서 화려하게 핀 꽃들이 함께한다. 한산하던 거리를 북적이게 만들고 싶다고 한다. 동네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을 난화마을에서 배웠다.
복합문화공간 ‘화안’ 2층의 갤러리 겸 공연장 ©박경호
복합문화공간 ‘화안’에 전시된 김영규 작가의 작품 ©박경호
지난달 25일 화안에서 개최한 <개항장 이야기와 함께하는 하우스 콘서트>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4월 <개화기 의상을 입고 떠나는 개항장 나들이> 관객 23명을 모집해 개항장 투어를 한 뒤 개항장 역사와 관련된 클래식 음악을 설명과 함께 공연했다. 하우스 콘서트는 누구에게나 문을 열었다. 인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은 학교와 화안을 오가며 예술치료 프로그램과 음악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개항장의 또 다른 갤러리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김영규 작가도 본격적인 인천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이곳에서 받은 영감이 앞으로의 작업에서 표현될 것 같다. 예술의 본질은 변화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수·순천 시골 마을과 인천 구도심을 오가며, 음악과 미술을 오가며 탄생한 작은 문화공간 ‘화안’이 동네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된다.
박경호(朴璟浩, Park Kyoung ho)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