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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가 예술가와 문화예술교육으로 만날 때
(인천 유아 문화예술교육에 담는 마음)
최라윤
칠 년 전, 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7살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밧줄, 파이프, 폐바퀴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널브러진 공터였다. 그곳의 담당자는 아이들과 ‘잘 노는 것’이 나의 업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잘 놀고 있었고 그사이에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였다. 제 몸만 한 구덩이를 파겠다고 끙끙대거나, 밧줄을 집어 들고 나무에 오르려 씨름하거나,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땅에 뿌리기를 반복하는 등. 공터 구석에 어정쩡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별안간 흙바닥에서 삽질하는(진짜 삽으로 땅을 파는) 동료 예술강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미션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쉬지 않고 팔을 움직이며 삽질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철없는 어른 같기도 그냥 덩치가 큰 아이 같기도 했다. 그의 주변으로 어느새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더니 너도나도 눈을 반짝이며 더 깊이 더 넓게 구멍을 파는 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잘 노는 어른임이 틀림없었다.
예술가는 유아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그렇다면, 특별한 준비 없이 유아와 예술가가 만나 잘 노는 것만으로도 좋은 예술교육이 될 수 있을까? 예술가가 유아를 만날 때 필요한 태도로 여러 전문가가 강조하는 것들이 있다. 예술적 감각을 지닌 예술적 존재로서 존중하는 것,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특성을 배려하는 것. 감각적 사고를 제한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말이 어려운데, 소위 양질의 프로그램에서 예술가가 유아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떠올리면 어렴풋이 이해되기도 한다. 그들은 아이들의 표현하는 감각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저마다 다른 반응에도 꼬리를 물어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아이들이 마음껏 표현하고 상상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인천의 유아 문화예술교육은 이런 치열한 고민을 이어가는 예술가들과 2019년부터 꾸준히 유아들을 만나고 있다.
극단들락 <도서관에서 만나는 예술가 이야기> 중,
유아와 함께 일상에서 발화되는 이야기 씨앗을 포착하고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극단들락
인천의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이하 유아 사업)은 유아의 일상적 예술경험을 지원한다. 정확하게는, 예술단체 혹은 문화시설을 공모하여 선정해 유아 대상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인천 내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대상으로 보급한다. 인천문화재단의 유아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인천시 매칭 예산으로 2019년부터 추진되었다. 사업 초기에는 재단과 예술단체 모두, 유아라는 대상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기에 유아 발달과정이나 개정 누리과정과 관련된 강의를 진행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예술 중심으로 돌아와 예술가의 감각을 깨우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유아 사업은 매년 연속으로 참여하는 단체가 많은 편인데, 재단이 주최하는 행사가 연중 수시로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단체 간 네트워킹이 구축되는 셈이다.
공모는 ‘운영형’과 ‘개발형’ 두 가지로 구분된다. 유아 대상을 처음 마주하거나 새로운 유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연구 과정이 필요한 경우 ‘개발형’에 지원하면 된다. 상반기(4~8월)는 프로그램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하반기(9~11월)는 실행에 집중한다. 반면, ‘운영형’은 이미 개발된 프로그램을 연구 과정 없이 상반기에 곧바로 실행하게 된다. 만약 프로그램 수정하고자 한다면 운영형도 일부 예산을 연구비로 편성할 수 있다. 단체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개정 누리과정과 문화시설 고유 콘텐츠 등을 고려해야 한다. 연구 과정에서 주어지는 미션이 많기에 연구를 진행하는 모든 단체는 연구진으로 유아교육 전문가와 문화시설 담당자가 함께한다.
지난 몇 년간 여러 문화예술교육 공모를 진행하며 자주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참여자 모집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민간 예술단체는 상대적으로 기관에 비해 홍보 기반이 미약하다. 때문에, 단체가 직접 홍보하여 참여자를 모집한다면 부득이하게 아주 좁은 범위의 특정 지역에 수혜가 집중될 수 있다. 그래서 유아 사업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재단이 직접 모집하고 선정한다. 홍보를 진행할 때는 인천시 관내 육아종합지원센터나 인천시육아종합지원센터, 인천광역시교육청유아교육진흥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작년에는 지원금 예산과목에 사전방문비를 새롭게 편성했다. 예술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전에, 직접 유아교육기관에 방문하여 유아 교사의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때 실무적으로 필요한 협조 사항을 협의하거나 공간을 점검하는 등의 작업도 이루어진다. 그만큼 유아 사업에서 교육 현장의 주축인 교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매년 6개 내외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한다. 작년 한 해 동안에는 공모사업만으로 48개의 유아교육기관에서 1,151명의 유아를 만났다.
이아예술컴허니 <소래로 떠나는 예술 기차여행> 프로그램 운영 현장
©이아예술컴퍼니
공모사업의 영역, 그 밖에서
유아 사업에서 공모사업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나 이게 전부인 것은 아니다. 연수나 공연 등 기획사업의 방식으로도 유아와 유아 매개자와 만나고 있다.(유아 매개자는 부모, 조부모, 유아교사, 보육교직원 등을 포함한다) 기획사업은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의 유아교육 유관기관과 협력하여 운영한다. 인천광역시교육청유아교육진흥원, 인천시육아종합지원센터, 관내 구 육아종합지원센터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매년 연초가 되면 각 기관으로 재단 담당자가 찾아가, 그해에 계획된 사업들을 공유받고 협력이 가능한 영역을 찾아 공동
기획·운영한다.
재단은 협력기관을 통해 다양한 매개자와 만나 유아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가치를 알린다. 협력기관은 재단을 통해 검증된 연수 프로그램과 공연, 예술가 풀을 제공받는다. 올해 재단은 인천광역시육아교육진흥원의 유치원 조부모 동아리 「할빠·할마의 마주육아」를 협력 운영하고, 기초육아종합지원센터와 교사 연수 프로그램과 유아 가족공연을 개최할 계획에 있다. 특히 교사 연수 프로그램과 유아 공연의 경우, 올해 유아 사업 공모에 참여하는 예술단체 ‘좋은음악 소리랑’, ‘극단 우주선’과 함께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예술단체의 자생성과 지속성, 환류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 유아 사업안에서는 공모와 기획사업을 넘나들며 단체의 예술작업을 독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극단 우주선 <우주로 간 토끼> 공연
©극단 우주선
진심을 담아, 사심을 담아
굳이 밝히자면, 서두에 이야기한 나의 경험은 결과적으로 아쉬운 기억으로 남았다. 보조강사로 있던 6개월 동안 소위 ‘티칭’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인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건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18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직접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추진하던 시절, 기초문화재단에 들어가 유아 사업 담당자로 지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전국의 광역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로 넘어온 유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인천문화재단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한때 유아들과 직접 만나고 싶었던 나의 꿈이, 그것이 실현되는 현장 속에서 채워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좋은음악 소리랑 <오색이가 사는 향교> 프로그램 운영 현장
©좋은음악 소리랑
우리 팀에는 7살 남짓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직원이 있다. 유아 문화예술교육을 4년간 운영한 전 담당자이다. 그에게서 종종, 유아 사업은 내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사심을 다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다른 재단의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슷한 말을 자주 듣는다. 유아라는 존재 자체가 주는 사랑스러움도 있지만, 유아와 예술가가 예술로 소통하는 틈 속에서 포착되는 특별한 순간이 더 큰 이유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인간의 생애에 첫발을 내딛는 유아들이 부디 이 순간을 간직한 채, 제멋대로 잘 노는 힘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최라윤(Choi Ra Yoon)
인천문화재단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대리
lalayoon@ifa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