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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앞에 결코 시들지 않는 열정

시니어 작사가 프로젝트 <오작쓰작>

강백수

부평구문화재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것은 작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다가오는 가을에 노인을 대상으로 한 창작 수업을 진행하고 싶은데, 수업의 진행과 커리큘럼의 개발을 맡아줄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다. 거의 모든 제안에 마음을 열어두자는 것이 프리랜서 예술인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태도인데, 이번 제안은 단번에 승낙을 하기가 어려워서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창작 수업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나는 나만의 창작 수업 커리큘럼을 하나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 진행해 왔던 작사·작곡 클래스는 어느 새 9기 수료생까지 배출해내고 있었다. 약간 망설여지는 점은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는 비교도 안 되게 오랜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에게 내가 무언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 나와는 다를 텐데, 우리 사이에 매끄러운 소통이 가능할까?

문득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노인이라는 대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노인이라 하면 나는 지금 92세이신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곤 했는데 사실 우리 아버지도 이미 69세로, 노인이라는 범주 안에 충분히 들어갈 연배이신 것이다. 나와 아버지는 그다지 살갑지는 않지만 그래도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부자관계보다는 빈번하고 내실 있는 소통을 주고받고 있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이십 대 때까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생각보다 열려 있고, 나보다 많은 면에서 지혜로운 분이다. 스마트폰 다루는 속도가 조금 느리고 요즘 유행하는 말들을 내 또래보다는 조금씩 늦게 접해서 그렇지, 세상 돌아가는 일을 파악하시는 것이나 무언가 중요한 문제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는 삼십 대인 나보다 기민한 모습을 보이신다. 젊어서 명석했던 두뇌는 아직 녹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 그런 분들이 오신다면 얼마든지 해 볼 만 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작사 수업 <오작쓰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재단과 함께 수업을 열어주신 부평남부노인문화센터에서 모집해주신 열 분의 선생님들은 내 예상대로 우리 아버지만큼 열려있고 지혜로운 분들이었다. 적게는 60대부터 많게는 80대까지 다양하게 모이신 선생님들은 수업시간마다 하나같이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님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선생님들은 내게 창작을, 나는 선생님들께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

수업시간 ©부평구문화재단
수업시간 ©부평구문화재단

<오작쓰작> 수업시간 ©부평구문화재단

수업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노래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고, 이를 에세이 형식으로 적어 내려가는 과정을 거쳤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대부분 부끄러워하시고 어려워하셨지만 막상 첫 문장을 적어낸 이후로는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들을 술술 꺼내어 주셨다. 그러면 나와 보조강사 이청록 씨가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곡을 각각 하나씩 총 10곡 작곡해드리고, 선생님들과 우리가 함께 앞서 쓰셨던 에세이들을 곡에 맞추어 깎아내어 노래를 완성하는 식으로 곡이 완성되었다. 마지막은 그렇게 완성된 곡들을 녹음실에서 직접 불러서 음원으로 만들어보는 것으로 맺었다.

완성된 10곡의 노래들에 대해 나는 커다란 기대를 갖지 않았는데, 막상 마주한 결과는 대단했다. 나와 이청록 씨의 음악적 노하우에, 그보다 값진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니 우리끼리 듣기 아까우리만큼 훌륭한 곡들이 탄생했다. 그 이야기들은 직접 그 세월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콘텐츠들이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요리사라 해도 오랜 세월 묵은 장맛을 며칠 만에 구현해 낼 수 없는 것처럼, 선생님들의 가사에는 우리가 흉내 낼 수 없는 그야말로 깊은 맛이 깃들어 있었다.

수업 중에 마주한 선생님들의 눈물과 웃음들도 기억에 남는다.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울고 우셨던 부분을 두 가지 정도 꼽을 수 있겠는데, 하나는 당신들이 적어 내려간 이야기들을 직접 소리 내어 읽어주실 때였고 다른 하나는 녹음실에서 직접 자신의 노래를 완성하던 그 순간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던 때의 눈물과 웃음은 아마 치유의 증거였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 자연스레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발생한다. 그것이 눈물과 웃음으로 구현되어 나타난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녹음실에서 보여주신 눈물과 웃음은 스스로 해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의 증거였을 것이다. 인생의 노년기에 새로운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나 지켜보는 이에게나 감동적인 일이다. 그날의 눈물과 웃음이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선생님들께서 직접 고백해 주셨다.

결과공유회 ©부평구문화재단

<오작쓰작> 결과공유회 ©부평구문화재단

수료증을 받으신 선생님들 ©부평구문화재단

<오작쓰작> 수료증을 받으신 선생님들 ©부평구문화재단

이 수업은 결국 10곡의 멋진 노래들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길 위에서 치유와 성취감을 선생님들께 안겨준 행복한 과정을 선사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얻어가게 된 이들은 선생님들만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이 수업의 최대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이 수업은 나로 하여금 노인이라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게 해 주었다. 노인은 더 이상 인생의 무탈한 마무리만을 바라는 맥없는 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만난 분들은 여전히 가슴에 뜨거운 불꽃을 품고 언제든 앞으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정열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창작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때로는 나보다 젊은 친구들의 반짝임 앞에서 좌절하곤 했지만, 이제는 긴 세월을 살아간다는 것만이 줄 수 있는 선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 세월 창작을 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 것이다.

선생님들이 빚어낸 아름다운 결과물들은 유튜브에서 <오작쓰작>을 검색하면 모두 만날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한 번쯤 선생님들의 노래를 들으며 삶의 깊이와 꺼지지 않는 열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안하며 이 글을 맺는다.

강백수

강백수(Kang Baek-soo)

시인, 싱어송라이터
anomia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