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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갈매기의 날갯짓, 그것은 우리들의 도전의 날갯짓이다.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김용현

2024 IFEZ 송도 대표축제 <송도 바람 축제>가 열린 송도달빛축제공원에 검은머리갈매기 떼가 나타났다. 가로, 세로 4미터, 길이 12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목재 파고다에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검은머리갈매기 떼가 초록빛 잔디밭 위로 날갯짓을 하고 있노라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가 만든 새는 어디 있지?” 어떤 이는 자신의 갈매기를 찾았고, 어떤 이는 “진짜 갈매기 떼가 비행하는 것 같아!”라며 갈매기에게 먹이를 주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검은머리갈매기 떼 아래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가을 끝자락을 붙잡고 날아가는 철새 떼를 보고 있노라면, ‘저 철새들은 어디에서 왔을까?’하고 그들의 비행길을 되짚어 상상해보곤 한다. 필자는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의 운영자이며, 검은머리갈매기 군집 비행 전시의 제작자로서 완연한 봄에 불쑥 나타난 이 검은머리갈매기 날갯짓의 시작을 공유하고자 한다.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지난 4월,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이 진행된 연세대학교 메이커스페이스 i7으로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 워크숍은 예술과 기술이 합쳐진 움직이는 예술, 즉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이해하고 직접 구현해보며 시민들이 보다 쉽게 예술과 기술을 접해볼 수 있도록 준비된 프로그램이다. 본 프로그램은 연수문화재단과 연세대학교 메이커스페이스 i7 그리고 필자가 소속된 팹브로스 제작소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한 프로그램이다.

익숙한 동네에서 특별하게 만나는 검은머리갈매기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을 준비하는 과정은 고민과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 시작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였다. 송도라는 지역을 답사하고 또 탐구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바로 송도가 전 세계 철새들의 도래지라는 점이었다. 송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서해안과 습지 일대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철새들의 중요한 도래지이자 번식지다. 특히 전 세계 추정 2만 마리도 되지 않는 검은 머리 갈매기는 송도, 영동도 일대에서만 번식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평범한 일상으로 가득하던 익숙한 동네가 검은머리갈매기에게는 매우 중요한 번식지라는 ‘특별한 사실’에 주목했다.

검은머리갈매기를 함께 만들어보며 그들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의미를 넘어서 멸종위기에 처한 검은머리갈매기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검은머리갈매기의 날갯짓, 그것은 우리들의 도전의 날갯짓이다.

이번 워크숍의 주 참여층은 청소년들과 그들의 가족이다. 교육장에 들어선 이들이 낯선 재료와 도구를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설렘이 얼굴에 만연했다. 하루에 진행될 수 있는 짧은 워크숍이었지만 참가자 가족들은 아래의 적지 않은 과정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 1. 나무 다듬기 (거칠게 가공된 나무를 사포로 매끈하게 다듬는다)
  • 2. 새 몸통과 날개 사이 경첩 제작 및 조립 (철물도 직접 만들고 부드러운 움직임을 할 수 있게 만든다)
  • 3. 나만의 검은 머리 갈매기 색칠하기 (아크릴 물감을 활용해 아름답게 도색한다)
  • 4. 모터 스위치 배선하기 (기본적인 전기전자 파트를 조립한다)
  • 5. 모터 구동 하드웨어 조립하기 (모터의 회전운동을 수직운동으로 바꿔줄 수 있는 구조를 제작한다)
  • 6. 와이어 조정하기 (아름다운 날갯짓을 찾기 위해 와이어의 길이를 조정한다)

낯선 과정은 청소년 친구들이 스스로 헤쳐나가기엔 다소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부모님과 함께 목재를 다듬고 색칠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느끼고 있을 창작의 어려움과 동시에 찾아오는 즐거움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전기 장치를 연결하고 모터가 구동되어 새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땐 참을 수 없는 미소와 함께 기쁨의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들뜬 표정을 보고 있으니, 필자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생 어느 때에, 교내 물로켓 발사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아버지와 물로켓을 만들어 동네 놀이터에서 발사를 연습했던 때가 있었다. 처음 물로켓을 만들어본다는 설렘으로 한껏 들떴지만, 처음 제작한 물로켓이 단번에 잘 날아오를 리가 없었다. 물로켓을 여러 차례 제작하며 어떻게 하면 물로켓이 더 높이, 안정적으로 날아오를 수 있을지 치열하게 탐구하고 궁리했으나, 실패는 끊임이 없었다. 물로켓이 수십 번 날아오르다 땅에 고꾸라지기를 반복한 끝에 비로소 물로켓이 힘차게 날아올랐을 때의 벅참과 성취감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생생히 기억하는 한 편의 기억 조각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어렵고 힘들었지만 아버지와 함께한 즐거운 추억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

이후 크고 작은 기억 조각들이 쌓였다.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하나둘씩 쌓여왔던 기억 조각들이 한데 모이며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필자가 기계장치와 ‘움직이는 어떤 것’을 만드는 일에 매료된 것도,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움직이는 장치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팹브로스 제작소를 꾸리게 된 것도, 모두 그 시작은 크고 작게 쌓인 기억의 조각들에 있었다. 다양한 경험으로 쌓인 기억 조각은 꿈을 그리고 나아가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다.

이번 <철새 DIY 키네틱 아트 제작 워크숍>이 ‘움직이는 완성된 장치’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처음 접해보는 청소년들에게는 그저 새롭고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그들은 나무를 매끈하게 다듬고, 갖가지 철물과 공구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새를 만들었다. 그리고 100마리의 새가 모여 한꺼번에 날갯짓하며 군집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함께 완성했다. 물론 어려운 과정도 있었겠지만 그중 몇 가지 단계는 본인의 재능과 흥미를 자극했을지 모른다. 이 자극은 시간이 흘러 다시금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 더욱 강한 자극이 되고 즐거움이 될 것이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부드러운 날갯짓을 위한 일련의 과정들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조각’으로 남길 바란다.

김용현

김용현 (金容賢, Yonghyun Kim)

㈜팹브로스 제작소 대표
Yongyong@fabbro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