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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 따라 인천의 역사를 거닐다

김상태

공간으로서의 길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일까? 공간으로서의 길은 규모나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불린다. 오솔길, 산길, 들길, 자갈길, 진창길, 지름길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관념적 이해가 확대되면서 뱃길, 철길, 하늘길 등이 생겼다. 무선통신의 발달은 우리 눈앞에 바로 보이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문자와 말이 가상의 길을 따라다니게 하였다.

10여 년을 넘게 지속적으로 걷고, 기록하고 자료들을 찾으면서 바라본 철길은 참으로 다양한 인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갑게만 느껴졌던 쇳조각들이 제 모습을 갖기까지 용광로 속에서 엄청난 열을 견디며 온전한 형태를 드러내듯 철길은 하나씩 하나씩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가던 이야기들을 소환하기 시작하였다. 그 기억을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저장해 본다.

이 각각의 철길들은 어떤 연유로 만들어졌을까? 어떤 생성 소멸 과정을 거쳤을까? 이 철길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운송수단과 도로망이 미비했던 시간 철길은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 철길을 통한 소통이 인천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길을 ‘청복(淸福)’이라 하여 ‘밝은 즐거움’이라 하였다. 이제 미담완보(美談緩步)의 느긋함과 기억의 흔적을 따라 기워본다.

현재 인천에서 운행 중인 철길은 국철 1호선, 공항철도, 자기부상열차, 지하철 7호선, 인천지하철 1호선, 2호선, 수인분당선, 월미도 바다열차이다. 그렇다면 과거 인천에는 얼마나 많은 철길들이 있었을까? 소위 청원선(請願線)이라는 이름으로 인천제철선, 동국선, 흥국선, 호남정유선, 석탄부두선, 제3부두선, 강원연탄선, 유공선, 동양화학선 같은 철길은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하다. 그렇지만 인천에 존재했던 철길은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자료로 확인된 철길은 한국유리선, 대림산업선, 대우중공업선, 대일목재선, 대한석유공사선, 대한제분선, 동양연탄선, 군전용선, 삼미사선, 쌍용양회선, 이천전기선, 삼천리선 등이 존재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직 이야기하지 못한 철길은 좀 더 정리가 필요하다.

각각의 철길은 우리의 기억을 소환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인천 철길에는 별칭으로 부르는 이름이 세 개인 역이 두 곳이 있다. 축현역·상인천역으로 불렸던 동인천역과 인천항역·수인역으로 불렸던 남인천역이 그것이다. 역의 별칭은 시기별 변화를 드러내는 역사이다.

©인천역

©인천역

다음의 사진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남인천역이 있던 시절 역사에서 저네들을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2021년 8월 코로나19 팬데믹 상태에서 지독히도 힘들었던 시간 자기부상열차 인천공항터미널역에서 외로이 홀로 계신 두 분의 어른을 보았다. 이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역을 떠올리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인천일보(연대미상)

©인천일보(연대미상)

2021년 8월 7일 자기부상열차 인천공항터미널역 촬영

2021년 8월 7일 자기부상열차 인천공항터미널역 촬영

2021년 8월 7일 자기부상열차 인천공항터미널역 촬영

2021년 8월 7일 자기부상열차 인천공항터미널역 촬영

1937년 수인선 개통 당시 남인천역의 본래 이름은 여주·이천의 쌀과 군자·소래의 소금 수탈이라는 부설 목적이 반영되어 인천항역이었다. 그러다가 1946년 수인선이 국철로 흡수, 통합되면서 1948년 일제 강점기 때의 이름을 버리고 수인역으로 개칭하였다. 그리고 수인역은 1955년 다시 남인천역으로 개칭되었다. 마지막으로 1973년 남인천역이 폐역되고 국제철도연맹 표준인 표준궤(1,435㎜)가 부설되었다. 이전의 수인선은 궤간 762㎜의 협궤철도였다.

수인역을 중심으로 곡물시장이 형성되었는데 시장 개시가 언제부터 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1940년대 발행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가게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남인천역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인 1955년 이전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수인역 주변에는 대형 정미소들이 있었고, 기차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경기 주변 지역 농산물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수인역 인근에 농협 공동판매장이 들어서고 공판장을 중심으로 좌판도 벌어졌다. 박정희 정부의 혼분식장려운동도 시장 활성화에 일조하였다고 한다.

1973년 남인천역이 폐역되고, 1995년 수인선의 완전 폐선 그리고 농협공판장이 철수하면서 수인곡물시장도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수인곡물시장은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는 중국 등의 수입 곡물을 빠르게 확보하면서 대도시 도소매상을 대상으로 도매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곡물시장에는 값싼 들깨 참깨 등 수입 곡물을 이용한 참기름집도 많고 또 다른 소비 계층을 만들었다. 때문에 이곳을 지나다 보면 구수한 기름 냄새가 발길을 잡아끈다.

수인역 주변은 과거의 번창했던 모습은 아니지만 전국 유일의 곡물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간판에 ‘전국최저가격’이라고 적어 놓기도 하였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곳을 남인천역보다는 수인역으로 부르는 것에 익숙하다. 수탈의 현장에서 묵묵히 지켜낸 그들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지만, 산업구조·매립으로 인한 길의 변화 속에서 곡물시장도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길은 소통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단절의 공간이기도 하다. 수인선은 수원을 중심으로 여주와 인천을 연결해 주었지만, 그 철길을 따라 나누어진 동네는 단절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길은 우리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내어준다. 지금 수인역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고 당대를 살아왔던 사람들의 기억과 과거의 사진들 속에서 간간이 추억을 소환할 수 있을 뿐이다.

수인선 구간 중 수원에서 송도구간 사이의 역과 관련한 사진은 협궤열차가 1994년까지 운행되어 그 모습이 곳곳에서 찾아진다. 그러나 1973년 남인천역이 폐역되었기 때문에 수인역 관련 사진들은 흔하지 않다.

이렇게 사라진 협궤열차 수인선은 2020년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도권 전철 표준궤로 복선화되어 운행되었고, 수원에서 왕십리까지 연결되면서 수인·분당선으로 명명되고 있다.

오복참기름 제공 수인역 앞 번성했던 1960년대 곡물시장의 모습
오복참기름 제공 수인역 앞 번성했던 1960년대 곡물시장의 모습

오복참기름 제공 수인역 앞 번성했던 1960년대 곡물시장의 모습

2021년 5월 촬영한 오복참기름집과 수인곡물시장 간판 모습
2021년 5월 촬영한 오복참기름집과 수인곡물시장 간판 모습

2021년 5월 촬영한 오복참기름집과 수인곡물시장 간판 모습
(이전에 보이던 수인선 철길의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왼쪽 위에 보이는 신광초등학교 운동장 자리가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고 붉은색 원 부분이 곡물상가가 있는 곳의 1994년 8월 13일 모습

왼쪽 위에 보이는 신광초등학교 운동장 자리가 연합군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이고
붉은색 원 부분이 곡물상가가 있는 곳의 1994년 8월 13일 모습
©인천일보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대한인천」이라는 미군들이 사용한 지도의 일부분 확대한 것으로 ‘남인천신호소’는 우리들이 흔히 ‘남부역’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남인천역과 남부역과의 거리는 900m 정도이다.

「대한인천」이라는 미군들이 사용한 지도의 일부분 확대한 것으로 ‘남인천신호소’는 우리들이 흔히 ‘남부역’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남인천역과 남부역과의 거리는 900m 정도이다.
(사진 제공: 부평역사박물관)

수인선 인천구간 중 송도에서 인천역구간은 지하구간으로 운행되어 지상에서는 수인선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하대 앞에서 소위 남부역이라고 불리는 구간은 이곳이 수인선이 지나던 길임을 알리는 ‘수인선 바람길숲’과 ‘수인선 도시생태숲길’이라는 이름으로 공원화되어 남아있다. 이 공원의 일부 구간에서는 예전의 수인선 철길을 활용하여 길을 만들기도 하였다. 수인선 바람길숲이 끝나는 도로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수인선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다. 바람길숲이 끝나면 도시생태숲길이 인하대역까지 이어진다.

소위 남부역 자리에 남겨진 수인선의 흔적을 조형화한 모습

소위 남부역 자리에 남겨진 수인선의 흔적을 조형화한 모습

수인선 바람길 숲(수인분당선 숭의역~인하대역)

수인선 바람길 숲(수인분당선 숭의역~인하대역)

경인대로 밑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수인선 철로 모습

경인대로 밑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수인선 철로 모습

수인선 도시생태숲길

수인선 도시생태숲길

김성태

김상태

사단법인 인천사연구소 이사장/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