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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리와 나의 주위

전유동

2024년이 왔다고 한 해 계획을 세우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4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새해를 맞아 인천에 있는 문화재단 두 곳의 간담회를 다녀왔다. 대중음악 싱어송라이터인 나를 포함하여 다채로운 영역에서 활동하는 음악계 예술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한 예술창작의 과정을 거치며 지역에서 무언가를 일궈가는 이들을 보니 그동안 지역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성했다. 누군가는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창작의 지속성을 위해 재단 측에 자신의 경험과 어려움을 전달했다. 인천은 예술과 문화가 태동하는 곳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지반을 뚫고 자라나고 있다. 단지, 땅이 척박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장소 불문 모든 예술가들이 현재 동일한 여건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인천의 사연은 무언가 다르다. 그런 인상이 강하다.

인천에서 벌써 6년을 지내며 인천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적극적으로 해왔다. 2019년, 컴필레이션 앨범 인천의 포크 두 번째 시리즈 [서울. 변두리](2019)와 세 번째 시리즈[모두의 동요](2019), 네 번째 시리즈 [유령놀이](2023)에 참여했고 영종도 카페 륙에서 진행한 <륙 페스티벌> 등 몇몇 공연을 기획하고 인천을 전면에 내세운 라이브 클립을 촬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뼈대가 되는 활동은 주로 서울에서 이루어졌다. 인천에서는 정기적으로 공간에서 자체 기획하는 대중음악 공연이 없진 않지만, 장르적 유연함을 가진 공간들과 관객이 많은 서울과 비교되며 많은 음악가들이 서울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력이 많지 않은 음악가들은 돈을 들여 공간을 대관하지 못하지만 누구든 작은 요건을 맞추면 올라갈 수 있는 오픈 마이크 공연을 신청한다. 오픈 마이크를 거쳐 간 일부 음악가는 공연장 측에 섭외되어 기획 공연에 올라가며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 간다. 인천 내 공간에서는 이러한 오픈 마이크 공연 신청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천은 사비를 들여 직접 대관을 하고 기획까지 해야 하는 공간이 많았다. 경력이 짧거나 이제 씬에 진입을 시도하는 음악가들 관점에서 자체 기획을 하고 대관료 보전을 위한 모객 활동은 진입장벽이 높다. 더욱이 근래에 공연 시장이 좋지 않아 초심자가 아닌 나도 대관료를 지불하고 공연을 기획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리고 오픈 마이크와 같이 입장료가 무료인 공연장 대부분은 무료로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자율적으로 공연료를 산정하여 지급하게 하거나 음반이나 굿즈를 판매할 수 있게 매대를 제공하는 등 상호 협의하여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데 인천에 있는 공간 중 이러한 안전장치를 시행하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단돈 천 원을 받아도 자신의 음악이 시장에서 사랑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계기가 중요하다. 이런 동기를 통해 힘든 순간을 버티고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계속 소비되지 않고 지속과 존속의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물론 금전적 이익보다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원하는 음악가들이 각자 다양한 방식과 가치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공간 또한 특성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서로가 조금씩 지속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남겨보는 것이다. 얼마 전 동구에 있는 유유기지 동구청년21에서 오픈 마이크가 시작되었다. 문화가 있는 날에만 공연이 열리는 것과 공간의 특성상 특정 악기 사용의 제한은 아쉽지만, 공연 신청 시에 작성하는 인천 청년 예술인 네트워크 신청서의 긍정적인 영향과 지속해서 열릴 공연이 기대된다.

인천대공원에서 녹음과 촬영이 진행된 [참새는 귀여워] 연주 모습

인천대공원에서 녹음과 촬영이 진행된 [참새는 귀여워] 연주 모습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사운드, 메모리 라이브 클립 촬영 현장

인천문화재단에서 진행한 사운드, 메모리 라이브 클립 촬영 현장
ⓒ김시훈

부평문화사랑방 특별기획공연 with 프로듀서 단편선(오소리웍스)

부평문화사랑방 특별기획공연 <전유동 콘서트> with 프로듀서 단편선(오소리웍스)
ⓒKOKOPLAY

인천에서 이루어지는 지원 사업들과 예술 활동을 수행하며 매번 느낀 갈증은 가까운 서울과 비교되는 인프라였다. 하지만 인프라는 첫 번째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 지역에 어떤 예술가들이 있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사실 내가 8년 동안 인천에서 발표한 음악들은 별개로 우물 안 개구리인 채로 경험하며 가지게 된 견문은 하나도 중요치 않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기에 편협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작년 말, 부평문화재단의 워크숍을 통해 만난 20대 학생은 인천에 본인이 원하는 연습 공간이 없어서 스스로 만들고 싶다며 사업 레퍼런스를 제시하였다. 신생으로 활동하게 된 그는 경력이 부족하다고 어느 기관 내에서 받은 무시와 차별을 얘기하며 속상해했지만, 지역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필요로 하는 공간을 설명하며 지역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었다. 어린이 오케스트라를 운영하시던 40대 대표님은 아이들에게 시장의 논리나 어른들의 어두운 사정보다 평등을 배울 수 있게 몸소 실천하며 노력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워크숍에서 나는 지역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속할 수 있는 끈기”와 “자본”을 꼽았다. 서로 다르지만, 지역 안에서 반짝이는 모두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다양한 견해 속에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런 자리가 좀 더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직플로우페스티벌 무대

부평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직플로우페스티벌 무대
ⓒ뮤직플로우페스티벌

인천의 포크 네 번째 컴필레이션 [유령놀이]의 쇼케이스

인천의 포크 네 번째 컴필레이션 [유령놀이]의 쇼케이스 @인천 노크
기획자 싱어송라이터 이권형의 무대

인프라의 중요성은 제공해 주는 주체의 역량과 태도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진다. 창작자가 아무리 노력하여도 제공자가 양질의 창작품 제작과 쾌적한 환경 구축을 소홀히 하면서 단지 성과나 업적처럼 창작품 발표에만 집중한다면 우수한 인프라도 소용이 없다. 발화하는 예술가든 제공자 또는 크레딧에 올라가는 제작자든 모든 예술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때로 타자를 투영하거나 인용하더라도 예술은 예술가(사람)의 예술적 표현을 통해 드러난다. 당연히 표현의 수단이 되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나에게 어떤 음악을 하는지 묻는 누군가의 질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는 말처럼 들린다. 이 질문은 확장이 되어 지역음악가로서 나는 어떤 예술 활동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지역 내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 둔 메모를 다시 찾아보았다. 지역 문화 발전을 바라는 거창한 사명 의식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서울로 오가며 축적되는 피로감으로 시작되어 사소하지만 내가 잘 있을 수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담았다. 언제 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차근히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경제적 위기나 인공지능의 발달로 야기된 예술 시장의 위기 속에서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는다면 지역 내에서 우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만 힘들어하던 것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나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위안을 얻기도 한다. 그러니 힘든 시기에 지역 내 음악가들의 네트워킹이 지금보다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면 좋겠다. 음악가뿐만 아니라 많은 예술가가 함께 지역 내에서 서로를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해결해 나갈 인프라 부족, 예술가들의 서울 이동 같은 여러 가지 과제들을 아예 차치해둘 수 없겠지만, 지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지는 그때부터 활발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제자리는 저의 자리일까요. 자리는 잘 있을 수 있는 곳 아닐까요.
저는 제자리에서 많이 벗어난 건 아닌지 생각하니 타닥타닥 흔들려요” 전유동 – 주안

전유동(全宥垌, Jeon Yoodong)

싱어송라이터
2023. 12. 컴필레이션 인천의 포크 네 번째 시리즈 [유령놀이]
2023. 11. EP [아주 아주 오래 돼서야]
2023. 06. 정규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불러 자주 안 쓰는 말이지만]
2022. 11. 싱글 [참, 맞다]
2021. 11. EP [이소]
2021. 04. 싱글 [디플로도쿠스]
2020. 08. 정규 [관찰자로서의 숲]

wjsdbehd10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