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질문과 열린 결말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을 마치며

임은정

인천시는 2017년 「인천 예술사 연구 및 아카이빙 시리즈 기본계획」을 세우고, 사진(2018), 음악(2019), 문학(2020), 연극(2021), 미술(2022), 무용(2023) 분야 원로예술인을 구술채록하는 〈인천 예술사 구술채록 및 아카이브 전시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인천 원로예술인 구술채록을 통해 인천 예술사에 대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고, 문화적 자산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인천문화재단은 2023년 무용 분야 구술채록을 인천시 위탁사업으로 진행했고, 올해는 지금까지 사업 내용을 정리하는 디렉토리북을 제작하고 이 사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필자는 2023년 무용 분야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했다. 기록학을 전공하고, 기록관리 업무를 하면서 구술기록을 종종 만나곤 했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구술기록을 정리하는 일과 구술채록 사업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은 너무나도 달랐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구술기록을 어떻게 해야 잘 남기고, 활용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의 맥락은 맞닿아있었다. 이번 사업과 함께한 시간은 그 고민에 관한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원로 예술인 구술채록,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이전에 진행했던 구술채록 사업은 약 10개월의 기간 동안 구술채록을 진행하고 자료집을 만들고, 전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짧은 시간에 구술채록, 자료집 제작, 전시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기간 안에 원로예술인의 구술을 충분히 담기는 어려웠다. 기존 사업처럼 10개월 동안 ‘구술채록’과 ‘전시’를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예산과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사업 진행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영희 구술채록 진행 모습(2023.06.21)

이영희 구술채록 진행 모습 (2023.06.21)

무용 분야 구술채록은 선진 사례를 참고해 사업 방식을 인천 예술사 연구의 기초 자료를 수집·조사하는 사업의 원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방향으로 변경하여 사업을 진행하였다. 구술채록은 예술인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하되, 기간과 예산 등을 고려해 구술채록 횟수를 조정해 그동안 1~2회 진행했던 구술채록을 2~3회로 늘려 진행했다. 구술채록을 좀 더 충실히 진행하기 위해 타기관 사례와 관련 문헌자료를 참조해 「인천 예술사 구술채록연구 매뉴얼」을 제작하였다.

구술채록연구를 위해서는 구술자의 생애와 활동 분야에 대해 지식이 풍부하고, 구술채록 경험이 있는 연구자를 선정해야 한다. 무용 연구자인 최해리와 김재리, 국악평론가이며 인천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윤중강이 책임연구자로 구술채록연구와 면담을 진행했고, 보조연구자 김은수, 노소희, 이영찬은 채록문 작성과 소장자료를 정리하였다. 촬영팀(씨스튜디오)은 구술채록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자 선정 기준은?

2003년부터 꾸준히 예술인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한 아르코예술기록원은 구술자를 선정할 때 예술적 기여도와 중요성을 고려하여 연장자를 우선으로 하되, 구술 결과물의 질적 특성을 고려하여 구술자의 건강 등도 함께 참고하여 결정한다. 또한 국립국악원이나 국사편찬위원회 등 유관기관에서 진행한 사업이 있을 경우에는 우선순위에서 제외한다.°

이번 사업에서 아르코예술기록원과 구술자 선정의 큰 방향은 같았지만, 특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바로 ‘인천 지역’과 구술자와의 ‘관계’이다. 인천 무용사는 세 가지 발전 거점 또는 전환기가 존재한다. 첫 번째 거점은 6·25전쟁 때 월남한 북한 실향민 예술가들이 주도했던 고전무용학원과 근대적 전통춤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950년대이다. 두 번째 거점은 대학에서 교육받은 무용가들이 주도하던 무용학원과 학교 무용교육이 꽃피던 1970년대이다. 마지막 거점은 1981년 인천직할시의 승격과 함께 창단된 인천시립무용단을 필두로 인천 창작춤이 눈부시게 발전해가던 1980년대이다.°° 더불어 한국무용협회(현 대한무용협회) 인천시지부(이하 인천무용협회)는 1982년 결성되어 1980년대 인천 무용의 발전과 함께 했다.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 예술인을 선정하기 위해 자문회의를 개최하였다. 예술적 기여도와 중요성, 인천 무용사의 발전 거점에서 예술인의 활동 등을 고려해 김나연, 김묘선, 오문자, 이선주, 이영희(가나다순) 이렇게 5명의 구술자를 선정했다.

인천 예술사 구술채록, 무엇을 남기고 보여줄 것인가?

예술사 구술채록은 예술인의 생애를 조망하는 ‘생애사’와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주제사’로 나눌 수 있다. 그동안 진행했던 인천 예술사 구술채록은 예술인의 ‘생애사’ 구술채록을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이번 무용 분야도 동일하게 생애사 구술사를 진행했다. 구술채록 자료집은 두 버전으로 제작하였는데, 향후 연구를 위해 구술채록 전문을 정리한 ‘구술채록집’과 인천 지역과의 관계와 주요 예술활동을 중심으로 재정리한 ‘시민용 자료집’이다. 특히 시민용 자료집은 예술인의 사진, 관련 기록도 함께 수록해 예술인의 작품활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집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집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집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집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집

인천 예술사 무용 분야 구술채록집 『시민을 위한 인천 예술사의 기록』(전 5권)
김나연, 김묘선, 오문자, 이선주, 이영희(가나다순)
(자료집 다운로드: 인천문화재단 홈페이지)

김나연(金娜延, 1939년생, 황해도 무형문화재 화관무 명예보유자)은 황해도 연백군 출신으로 1950년 인천으로 이주한 실향민 무용가이다. 해주 권번과 개성 권번의 수장을 지낸 민천식(閔千植, 1898∼1967)의 문하생이 되어 그로부터 다양한 전통춤을 배웠고, 인천에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며 활동하였다. 이번 구술채록을 통해 그동안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민천식 춤 복원과정과 인천국악무용학원 시절을 상세히 기록할 수 있었다. 또한 김나연의 후계자인 차지언(車知彦, 1969년생, 인천출생, 황해도 무형문화재 화관무 예능보유자)이 배석자로 함께해 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민천식-김나연-차지언’이 이어간 실향민 예술가의 춤 계승에 대한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

김묘선(金昴先, 1957년생, 국가무형문화재 승무전수교육조교)은 인천에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전수소를 운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발림무용단 총감독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국무용가이다. 구술채록에서는 1970년대 후반 김묘선(김묘선으로 개명하기 전 이름 김진선)이 인천에서 운영한 김진선무용학원(이후 한월무용학원)의 활동과 일본으로의 이주, 다시 인천에서 활동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오문자(吳文子, 1959년생, 인천출생, 현대무용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를 인천에서 보냈다. 한양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현대무용의 다양한 무대에 출연·안무가로 활동하면서 동아무용콩쿠르 동상, 전국무용제 금상 등을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은 현대무용가이다. 1989년부터 원광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주요 활동 무대는 전라북도 지역으로 옮겼지만, 《인천무용제》, 《인천이 낳은 무용가들》 등의 공연을 통해 인천에 무용 작품을 선보이는 등 인천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이번 구술채록에서는 인천에서의 성장 과정과 현대무용가로서 오문자의 작품세계를 두루 다루었다. 특히 송림초등학교 시절의 《승공학예발표회》, 송현동 민천식 학원의 경험, 인천여고 무용반과 국제무용학원의 경험은 1960∼70년대 인천의 학교 무용 교육과 학원무용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기록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선주(李鮮周, 1938년생, 인천출생)는 인천무용협회 회장(1982~1998)과 인천예총 회장(1998~2004)을 지내며, 오랫동안 인천에서 꾸준히 조직을 기반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향토춤과 문화재 발굴 등을 통해 지역 무용 발전을 위해 힘썼다. 이번 구술채록을 통해 인천무용협회와 인천예총 시절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천민속예술학원과 생활무용강습회 등 1960~70년대 무용 문화와 관련된 자료와 증언을 수집할 수 있었다.

이영희(李榮熙, 1943년생, 인천시립무용단 초대 상임 안무가)는 1971년부터 1980년까지 인천 무용 인재의 산실로 알려진 국제무용예술학원을 운영하면서 인천의 학원무용과 학교무용의 발전에 기여했다. 이후 1981년부터 1987년까지 인천시립무용단의 초대 상임안무가로 활동하면서 인천의 정체성, 생태환경, 전통문화를 표방한 작품을 다수 창작했다. 1987년 경성대학교 무용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제자들과 ‘새앎춤회’를 창단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구술채록집에서는 무용가와 교육자로서 활동한 이영희의 생애 전반의 활동을 기록하였고, 시민용 자료집은 국제무용예술학원과 인천시립무용단 활동을 중심으로 발췌하여 담아냈다.

그리고 열린 결말

필자는 평소 드라마를 즐겨보는데, 특히 ‘열린 결말’로 끝나는 드라마를 좋아한다. 보통 ‘열린 결말’을 가진 드라마는 ‘뭔가 다음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데?’라는 궁금증을 일으키고 다음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때론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구술채록 결과물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열린 결말’을 담은 드라마와 같은 기록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들과 시민들이 이 기록을 통해 예술사 연구의 실마리를 얻고, 새로운 연구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기록으로.

인천문화재단은 문화예술 기록을 열람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인천의 기초문화재단과 함께 2024년부터 3단계 사업으로 인천문화예술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2023년 무용 분야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섯 분의 구술자에게 이러한 계획을 설명해 드렸고, 선생님들께서는 기꺼이 향후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자신의 기록을 찾아 제공해 주셨다. 그 결과 이번 사업으로 구술채록 자료집뿐 아니라 원로예술인들의 예술 세계가 담겨 있는 사진, 활동 자료(리플릿, 팸플릿 등)도 함께 수집할 수 있었다. 2023년 사업은 마무리되었지만, 아카이브 사업담당자로서 이 소중한 기록들이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연구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록이 되도록 2024년에도 업무를 이어갈 예정이다.

<일러두기>

2024년 5월부터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되면서 ‘국가무형문화재’가 ‘국가무형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이 글은 〈2023년 인천 예술사 구술채록 및 아카이브 전시 사업〉에 대한 글로, 2024년 4월을 기준으로 쓰였으므로 ‘국가무형문화재’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 이수빈, 「사라졌던 역사가 되살아나는 순간, 예술자료원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 『무용월간지: 몸』, 2015.12. (출처: 무용월간지 몸 블로그 바로가기)
°° 인천문화재단·최해리, 『시민을 위한 인천 예술사의 기록: 인천시립무용단 초대 예술감독 이영희』, 2023, 11쪽

임은정

인천문화재단 정책연구실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