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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의 에너지로 삶을 회복하기

인천시립무용단 <원천>

김재리

1. 잠시 멈춰 삶의 근원을 생각하기

지금 삶의 근원을 이루는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세계를 구성하는 태초의 물질을 현재에 불러오는 것은 지금의 현실에서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인천시립무용단과 부평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한 작품 <원천>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삶의 근원과 생멸의 원리를 이야기하기 위해 동양 철학에서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물질인 불(火), 물(水), 나무(木), 금속(金), 흙(土) 즉, 오행을 무대 위로 불러온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 세상과 우주를 이루는 물질의 성질을 추적하며 삶과 죽음의 궤적을 춤을 통해 펼쳐놓는다.

ⓒ인천시립무용단

ⓒ인천시립무용단

2. 오행의 ‘행함’- 생성, 변화, 소멸의 순환

작품의 내용은 오행의 각 요소를 중심으로 다섯 개의 부분으로 구성하여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상호관계성과 순환의 원리를 통해 각 물질을 엮어낸다. 오행이라는 단어가 다섯 가지 물질의 ‘행함’이라는 의미를 지닌 것처럼 무대 위에 펼쳐진 물질들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질이 변화, 소멸하고 다시 생성되는 생멸의 과정을 드러낸다. 즉 이 작품에서 오행은 세계를 구성하는 원료이자 삶의 순환을 촉진하는 물질로서 세계와 자연, 그리고 인간의 삶을 지속시킨다는 것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원천>은 각 요소가 가지는 물질의 성질과 색깔을 무대의 배경으로 시각화하여 관객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물이나 불의 성질이 무엇인지에 관해 관객을 이해시키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음양오행의 원리에서 오행의 성질은 그것의 물성과 인간 세계에서의 해석적인 측면이 양립한다. 물질에 내재된 잠재력은 인간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힘과 행위를 촉진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원천>에서 춤의 역할은 우주와 세계의 근원을 이루는 물질이 무엇인가를 잘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관계, 에너지, 다이내믹 등으로 지속되는 삶의 보이지 않는 순환과 모습을 ‘감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무용수의 몸짓과 에너지, 다각적인 감정의 표출은 사물이 가지는 속성을 인간의 감정과 사회적 관계의 다이내믹, 즉 유기적이거나 카오스적으로 얽혀있는 인간의 삶과 세계의 질서를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이를 통해 사회의 단면과 인간관계의 얽힘들, 그것이 상징하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에서 들끓는 감정을 구체화한다.

ⓒ인천시립무용단

ⓒ인천시립무용단

3. 춤의 생기적 에너지

<원천>에서 오행의 물질들은 춤의 생기적 에너지로 연소된다. 한국춤의 호흡과 섬세한 움직임으로 세계와 자연을 이루는 물질을 우리의 신체로, 공기로, 삶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한다. 이러한 신체와 물질의 연속적인 결합을 통해 생성되는 춤은 물질을 재현하는 몸짓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과 에너지로 발산되는 추상적인 움직임으로 표현된다. 무용의 추상성은 관객이 작품에 접근하는 데에 한계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추상화를 보면서 그것의 의미와 상징을 ‘이해’하려고 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의 다른 경험과 직관으로 ‘감상’하듯이, 춤의 추상적인 형태는 우리를 다른 차원에서 현실과 만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원천>에서는 추상적 몸짓을 통해 물질과 이상, 몸과 마음, 그리고 현실을 초월한 대상 사이에서 다양한 경험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우리를 예술 감상으로 이끈다.

ⓒ인천시립무용단

ⓒ인천시립무용단

4. 삶을 회복하기

자연의 에너지를 개인의 신체로 체현하여 그것이 인간과 주변의 다른 생명체와 공유하기 위해 초월된 에너지로 변화할 때, 끊어져 있던 우리 삶의 연속성을 회복하고, 결국 희망의 에너지이자 미래의 삶의 가치를 회복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소개된 ‘흙(土)’의 요소는 오행의 모든 물질이 조화를 이루고 삶을 회복하기 위한 하나의 관문으로 작동한다. 무대 위의 충만한 춤의 에너지는 모든 물질들이 상생과 조화의 원리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제목처럼 삶의 ‘원천’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태초에, 혹은 과거로 회귀하여 삶이 ‘본질적’으로 어떠했는가를 살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 사회적 구조, 환경의 모든 세계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기억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우리의 사회에서 가치를 평가하지 않거나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자연’의 물질로 되돌아가는 것은 황폐해진 지금의 인간 세계를 회복하는 예술의 임무이기도 하다.

ⓒ인천시립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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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리

김재리(金哉利, Kim Jae Lee)

현) 무용 드라마투르그, Maska Journal in Slovenia 객원편집장
무용역사기록학회 공동편집위원장(2020-2022)
국립현대무용단 드라마투르그(2014-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