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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대장간 이야기』를 읽고

박경호

『대장간 이야기』(2024) 정진오 지음. 교유서가 펴냄. 296쪽. 1만8천원

경인일보 인천본사 편집국장과 인천광역시 대변인을 지낸 정진오 작가의 『대장간 이야기』(교유서가·2024)는 우리나라의 대장간을 다룬 첫 논픽션이자 인문서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지난 2021년 말 ‘서울의 대장간’을 발간하긴 했으나, ‘서울미래유산기록사업’의 조사·아카이브 결과 보고서 성격이 강해 대중을 독자로 삼진 않는다.

왜 저자는 수많은 논픽션 작가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은 대장간을 파고들었을까. 우선 책 표지에 적힌 ‘첨단 기술의 원점을 찾아서’란 부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책 머리말인 ‘책을 펴내며’에서 저자는 대장간을 취재한 이유와 결과를 이렇게 집약한다.

“첨단 무기, 첨단 기술이라고 할 때 ‘첨(尖)’이라는 글자는 뾰족하다는 뜻으로도, 날카롭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뾰족하면서 단단한 창. 날카로우면서 무르지 않은 칼을 만드는 부류가 대장장이다. 그들의 일터인 대장간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금속 소재 산업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그 대장간은 생동하는 기술 박물관이다. 그곳에 첨단 기술 산업의 원형질이 숨쉬고 있다.”(6~7쪽)

국내 마지막 남은 대장간 거리는 인천 중구 도원동에 있다. 동인천역에서 제물포역으로 가는 대로변 도원역 부근에 인일철공소, 인천철공소, 인해철공소가 나란히 모여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과거 수많은 대장간이 도원동 거리에 모여 있었지만, 대다수가 이곳을 떠나거나 문을 닫아 셋만 남았다. 저자는 인천 대장간 거리 최고령 대장장이 1938년생 송종화 장인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풀어내며 이 시대 마지막 대장간의 현장을 기록했다.

“85세 대장장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화로에서는 지름 5센티가 넘는 굵은 쇠막대기가 누런 색깔로 달구어졌다. 대장장이는 커다란 집게로 그 쇠막대기의 끝을 잡고 바로 옆에 놓인 기계(스프링 해머) 쪽으로 가져갔다. 의자에 앉아 오른발로 해머 페달을 밟자 해머 머리인 네모난 쇳덩이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땅~땅~땅~땅~. 대장장이는 양손으로 쥔 쇠막대기를 해머가 고르게 때릴 수 있도록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밀었다 당겼다 하기도 했다.”(24쪽)

송종화 장인이 일하는 인일철공소는 지난 연말부터 문을 닫고 있다. 송종화 장인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다. 이 책에서 송종화 장인이 망치질을 한 시점은 2023년 1월이다. 그사이 대장간 하나가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 송종화 장인이 자동차 판스프링으로 만드는 전국 최고 품질의 엿장수 ‘엿가위’는 또 누가 만들어야 할까.

대장간은 우리 사회·문화와 너무나도 끈끈하게 붙어 있어서,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신화, 문학, 역사, 그림, 영화, 음악, 지명, 철학을 다 동원해야 한다. 대장간과 대장장이는 중국 지린성 지안의 옛 고구려 무덤의 벽화(「신화 속 대장장이」)에 등장하고,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그림 속 대장장이」)에도 등장하며, 홍명희·박경리·김훈 같은 대가들의 소설(「문학 속 대장장이」)에서도 만날 수 있다. 진도아리랑의 세마치장단은 대장간의 마치질 소리(「음악 속 대장간」)다. 백범 김구의 인천 감리서 탈옥, 이순신이 개발한 조총,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까지도 대장간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보자. 농업, 맨손어업, 무속 같은 전통 영역에서 쓰이는 각종 기구와 도구는 여전히 대장간이 아니면 적확하게 만들지 못한다. 강화도에서 쓰는 호미와 장봉도에서 쓰는 호미, 황해도 옹진에서 쓰는 호미가 다 다르다. 이런 차이를 알고 지금도 뚝딱 만들어 내는 대장장이가 바로 1945년생 영흥민속대장간 이규산 장인이다. 이규산 장인은 화재로 소실된 국보 1호 숭례문 복구에 참여한 대장장이다. 국보 1호 복구에 쓰인 ‘못’부터 어촌 아낙이 쓰는 ‘호미’까지 못 만드는 게 없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이동식 대장간’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과거 4~5명이 달려들던 대장간 일을 이젠 대장장이 혼자 떠맡더라도 못 만드는 건 없다.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은 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챕터에서 관련 현장을 찾아 확인했으며, 그 날짜를 기록했다. 저자는 아차산 아래 고구려 대장간 마을 야외 전시장(영화세트장) 현장에서 전통 대장간에 서양식 모루를 놓아둔 ‘고증 오류’를 발견해 지적하기도 한다. 그것은 25년 신문기자 경력에서 나온 습성임을 저자와 적지 않은 시간을 기자 동료로 함께한 필자는 잘 알고 있다.

저자가 대장간 취재를 시작한 건『세월을 이기는 힘 오래된 가게』(한겨레출판·2015)를 쓴 2014년부터다. 저자는 10년 동안 부단히 대장간을 들락날락했다. 백범 김구가 인천감리서에서 탈옥할 때 쓴 ‘삼릉창’을 대장장이에게 맡겨 재현하기도 했고, 술자리에서 만난 무속인에게 선물할 ‘작두’를 대장장이에게 맡기기도 했다. 이들은 「대장간과 무속인」 챕터에 등장해 국가무형문화재 제90호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을 펼치는 무속인이다. 그 세월을 생각한다면 이 책이 조금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대장간에서 만드는 각종 철물뿐만 아니라 대장장이가 쓰는 화로, 모루, 수십 가지 망치와 집게 등 도구 자체가 박물관에서 전시해야 할 만큼 희귀해진 시대다. 그것들이 사라진다면 다음 순서는 그와 관련된 ‘말’들이 사라지게 된다. 그 다음은 존재 자체가 영영 잊히게 되는 것이다. 저자가 책의 마지막 챕터로 「우리말의 곳간, 대장간」을 배치한 것이 꽤나 의미심장하다고 느꼈다. 서평가로서 많은 글을 쓰고 있는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 책에 담아낸 것들은 역사학자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깝지만, 누군가 기록해두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것이 쌓여 이야기가 되고, 역사가 된다. 이 책의 귀함과 무게가 거기에 있다.”

이보다 더 이 책이 지닌 의미를 잘 설명하는 문구는 없을 것 같다. 무한한 정보가 축적되고 생성되는 첨단의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쳐선 안 되는 것, 잊어선 안 되는 것, 반드시 기록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이 책은 알려준다. 쉽고 술술 읽히는 책이다.

박경호

박경호(朴璟浩, Park Kyoung ho)

경인일보 인천본사 문화체육부 차장

대장간 이야기 표지 ©고유서가

『대장간 이야기』 표지 ©고유서가

󰡔대장간 이야기󰡕 출판기념회

지난달 20일 인천 미추홀구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 꿈’에서 열린 『대장간 이야기』 출판기념회에서 저자 정진오(왼쪽) 작가가 숭례문 복구에 참여했던 대장장이 이규산 장인에게 책을 헌정하고 있다. 이들 대장장이가 없었다면 책이 나올 수 없었다는 감사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