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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만 파는 학교 앞 간식 ‘초계란’을 아시나요?

곽은비

“나 때는 말이야~ 1,000원이면 학교 앞 분식집에서 배 터지게 먹었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이제는 어른이 되어 버린 80~90년대생들의 추억 이야기는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얘기이다.

학교 앞 분식 ⓒ곽은비

학교 앞 분식 ⓒ곽은비

요즘의 물가라면 1,000원으로 배불리 먹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약 20년 전쯤인 90년대~2000년대 초반 학교 앞에서는 그것이 가능했다. 95년생인 필자의 초등학생 시절에는 컵떡볶이 한 컵(300원), 슬러시 한 컵(300원), 떡꼬치 하나(200원)를 사 먹어도 200원이 남았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먹는 양도 적어서 컵떡볶이와 슬러시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그래서 친구를 함께 사주거나, 남는 돈으로 문방구에서 팬시-완구류를 구매할 수도 있었다.

최근 Y2K가 유행하면서 필자는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어렸을 때 추억과 기억은 무엇이 있을까?’에서 시작된 생각은 물 흐르듯 타고 넘어가 초등학생 시절 하굣길로 넘어갔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놀거나 학원에 갔다가 저녁밥 먹으러 집으로 들어가면 끝났던 하루 일과, 아무 걱정 없이 놀고 다음 날 등교와 숙제만이 걱정이었던 어렸던 날의 행복했던 기억들. 그리고 그 사이 우리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문방구와 분식점에 팔던 추억의 ‘간식거리’가 떠올랐다.
*Y2K란 Year(연)의 Y와, 1000을 뜻하는 Kilo에서 K를 따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2000년대를 뜻하는 단어이다.

재개발로 위치를 이전한 학익초 앞 제일분식 마지막 풍경 ⓒ곽은비

재개발로 위치를 이전한 학익초 앞 제일분식 마지막 풍경 ⓒ곽은비

그렇게 2022년 말, 문득 학교 앞 간식거리를 먹고 싶어 오랜만에 졸업한 초등학교 앞 분식집을 찾았다. 그러나 재개발로 분식집에는 곧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고, 사라지기 전 기록으로 남겨두려 분식집 사장님을 인터뷰하게 되었다. 인터뷰하면서 바로 옆 문방구 사장님도 함께 기록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영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가게마다 서로 다른 특색 있는 음식을 판매하며 학생 손님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던 기억들이 재밌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을 또래 친구들과 공유하니 함께 인천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옆 동네 학교였음에도 기억하는 간식거리 메뉴가 달랐다.

서로 다른 메뉴를 학교별로 나눠서 기록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모였는데, 최근 아카이빙한 자료들의 시대가 60~70년대에 머물러 있다 보니, 비교적 최근 현대에 속하는 80~90년대 학교 앞 풍경들이 기록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필자는 친구와 또래 지인들의 기억을 모아 인천에서의 학창 시절 간식거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재개발로 사라진 학익초 앞 샛별문구 간식거리 ⓒ곽은비

재개발로 사라진 학익초 앞 샛별문구 간식거리 ⓒ곽은비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가면 추억의 거리 풍경이 대부분 전쟁 후부터 70~80년대 정도를 재현한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시절의 변화된 풍경과 사회 모습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있고 현재도 끊임없이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막상 가장 근접한 현대라 생각되는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기록은 그만큼 체계적으로 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벌써 거의 30년 전 이야기가 되어 가고, 필자는 최근 계속되는 도시 재개발로 아마도 학교 앞 골목길과 문방구, 분식점들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세대가 바로 80~90년대생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학교를 다녔던 90년대~00년대 초반까지는 간식거리가 대체로 비슷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불량식품’과 식중독, 위생이 사회 이슈로 떠오르며 많은 종류가 사라졌기에 2000년대생들부터는 그 기억이 조금씩 다르다.

필자의 학창 시절 때는 자극적인 맛에 사로잡혀 위생이 크게 상관없었다. 새까만 철판에 쥐포나 후랑크소시지를 아주 납작하게 구워, 어디서 가져왔을지 모르는 두꺼운 도화지의 귀퉁이를 오려서 음식을 집어 먹었다. 가끔은 그 철판 사이에 손이 끼어 다치는 사고도 발생해서 문방구 아주머니가 대신 구워주곤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간식들을 어떻게 먹었는지 신기하기도 하지만, 그 시절 우리의 기억은 많은 미화를 거쳐 몽글몽글한 추억이 되었다. 이제는 학교 앞에서 사 먹던 쥐포도, 떡볶이도 쌓아두고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맛과 기억은 따라갈 수 없다.

컵냉면을 팔았던 용일초등학교 앞 분식점 ⓒ곽은비

컵냉면을 팔았던 용일초등학교 앞 분식점 ⓒ곽은비

필자의 동네인 미추홀구 학익동부터 기억 수집을 시작하여, 가까운 용현동과 주안동, 조금 거리가 있는 연수구 옥련동과 연수동, 남동구 간석동 정도까지 서로 다른 학교 앞 간식거리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어느 분식점이나 기본적인 추억의 메뉴들은 비슷했다. 컵떡볶이, 슬러시, 떡꼬치, 라면땅, 피카츄 돈가스 등… 그러나 종종 그 사이에서 분식집마다 특별 메뉴를 개발하여 학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그 예시로, 필자가 나온 학익초등학교 앞에서는 ‘문어바’라는 메뉴가 있었다. 컵떡볶이가 300~500원 하던 시절에 700원이라는 고가의 오징어 모양의 핫바 분식이었다. 오징어 모양을 했으나 이름은 문어바였고, 맛은 어묵바와 비슷했다. 어느 순간 물량이 나오지 않아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근처 용일초등학교 앞 분식점에서는 여름 시즌 메뉴로 ‘컵냉면’을 판매했었다. 700원 정도의 가격에 빨간 양념장과 미리 삶아둔 면발을 육수에 넣어 오이를 송송 썰어준 형태였다. 지금은 해당 분식점에서 컵냉면을 찾아볼 수 없지만, 용일초등학교를 졸업한 그 시절 학생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메뉴가 되었다.

주안8동에 있는 주안남초등학교 앞에서는 ‘문어발 튀김’이라는 특별한 메뉴가 있었다. 어린아이 손가락 정도 크기의 문어발을 기름에 바싹 튀겨서 판매했다. 기름에 갓 튀긴 문어발이 뜨거울까 신문지로 밑을 감싸서 먹던 맛이 아직도 생각난다는 제보자는 ‘처음에는 뜨겁지만 부드러웠고, 식은 다음에 먹으면 딱딱했지만 짭조름해서 참 맛있었어요!’라며 그 시절을 회상했다.

연수구로 넘어가면 학교 앞 피자집에서 ‘조각 피자’를 판매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1,000~1,500원 사이로, 한 조각씩 피자를 팔았던 형태였고 종이컵에 담아서 하굣길에 하나씩 먹었다는 색다른 간식거리에 대한 제보였다.

계란초(초계란) ⓒ곽은비

계란초(초계란) ⓒ곽은비

그리고 무엇보다 인천에서만 먹었다는 간식 ‘계란초(초계란)’에 대한 기억들이 공통되어 있다는 점이 인천만의 특별한 점이 아닐까 한다.

‘계란초 혹은 초계란’은 인천에서만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까지 인천 남구, 동구, 남동구 원도심을 기준으로 판매하던 간식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부터 판매했는지는 확실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녔던 해당 지역 학생들의 기억 속에 공통으로 남아있는 간식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한데 삶은 달걀 위에 오이를 얹고 초고추장을 쓱 발라 한입에 쏙 넣어 먹었다. 보통 150~200원 사이로, 남는 동전으로 저렴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좋은 간식거리였다. 계란초가 인천 전역에서 판매되던 간식은 아니라서 부평구, 계양구 및 섬 지역 등에서는 기억이 없는 이들이 더 많다. 원도심 학교 앞에서 주로 판매하던 계란초의 맛은 쫄면의 고명만 모아 먹는 우리 모두가 상상하는 그 맛이다. 어떤 곳에서는 어슷썰기로 오이를 크게 하나 올려주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채썰기로 오이 고명을 잔뜩 얹어주기도 했다. 사실 필자는 초등학생 시절 계란초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지만, 인터뷰했던 학익초 앞 문방구 사장님도 계란초를 팔아 학생들 입에 쏙 넣어줬다는 기억을 공유해주셨다.

또한 계란초를 먹고 자란 어린아이들은 이제 어느덧 성인이 되어 술집 안주로 계란초를 내놓기도 한다. 용현동 토지금고, 구월동, 부평까지 계란초를 술안주 메뉴에 올려놓은 곳들이 꽤 있다. 이제는 추억이 된 간식거리들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문방구와 분식집이 아닌 술집에서 판매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필자의 아카이빙 작업은 지금도 계속된다. 아직 인천의 아주 일부만 수집했기에 점점 지역을 넓혀가는 것이 목표이다. 추억을 수집하면서 신기했던 점은, 시간이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앞 추억의 간식거리에 대한 기억들이 또렷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지인은 그 당시의 맛에 대해 생생하게 기억하며 양념장의 맛을 자세하게 서술해 주었다. 또 다른 제보자는 당시의 상황과 간식을 판매하던 학교 앞 풍경까지 이야기하며 당시 유행했던 놀이와 문방구 팬시류 등까지 함께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모두 공통된 마무리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의 맛과 풍경을 그리워했다.

학교 앞에 생긴 무인문방구와 키오스크 ⓒ곽은비
학교 앞에 생긴 무인문방구와 키오스크 ⓒ곽은비

학교 앞에 생긴 무인문방구와 키오스크 ⓒ곽은비

최근 재개발로 학교 앞 문방구가 모두 사라진 학익초등학교 앞에는 ‘무인문방구’가 대로변에 새롭게 등장했다. 또한 간식거리를 판매하던 분식점이 사라지고 ‘무인편의점’이 들어왔다. 학원이 끝나는 시간쯤 방문해 보니 초등학생 아이들이 카드를 들고 줄을 서서 키오스크에서 계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대표적인 학교 앞 풍경이겠지만, 옛날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낯선 풍경일 것 같다.

필자의 아카이빙 작업을 들으면 ‘이런 기억까지 수집을 한다고?’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의 기억과 추억이 사회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가는 문화와 역사의 한 부분이 될 수도 있기에 오늘도 기억 수집은 계속된다.

곽은비

곽은비(郭은비, KWAK Eunbee)

로컬 아키비스트. 동네 기록가 ‘학익동 지킴이’로 활동하며, 나고 자란 ‘미추홀구 학익동’을 위주로 인천의 사라져가는 이야기를 기록하여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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