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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인천의 맛집들

김윤식

사람이 나서 자란 고토(故土)에만 줄곧 머물러 있으면 틀림없이 소견이 비루(鄙陋)해지기 마련이지만, 한 가지 즐거움은 있다. 구미에 당기는 자기 고장 음식이 생각날 때 즉시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집의 밥 말고, 나다니며 먹는 음식은, 나의 경우 한 일주일쯤, 길어야 한 열흘 정도 지나면 문득 생각이 난다. 혀가 가지고 있는 오묘한 맛의 기억이라고나 할까. 생전 번듯한 곳에 나가보지 못한 변명을 이렇게 옹색하게 음식을 핑계로 대려 하는 속셈이다.

근래까지도 가장 자주 먹는 음식이 냉면이다. 어려서 인현동 대한서림 뒷골목에 살 때, 근처 냉면집들 풍경은 숱하게 보았지만, 냉면은 어른들이나 먹는 음식으로만 알았다. 그러다가 1963년 고등학생이 되어 어느 초여름 날, 선친께서 나를 함 씨 할아버지가 하는 경인면옥(지금은 경인식당이다.)에 처음으로 데려가셨다.

내동 경인식당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내동 경인식당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자리에 앉자, 당신은 냉면을 주문하시면서 내게는 갈빗국, 곧 갈비탕을 먹으라시는 것을 나도 냉면으로 하겠다고 고했더니, 나를 한 번 흘끗 건너다보시고는 주인 함 씨 어른께 냉면 두 그릇을 시키셨다. “냉면이 시원할 게다.” 함 씨 어른이 나를 보는 대신 내 선친을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고는 주방 쪽으로 갔다. 함 씨 어른은 내 선친과는 연배가 비슷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냉면을 먹으면서는 크게 후회를 했다. 내용물이 한없이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냉면은 쇠고기 편육 한 점, 삶은 달걀 반쪽, 그리고 육수에 잠긴 회색 면발 사리! 그것이 전부가 아닌가. 갈빗국을 주문했었더라면…

대학생 시절 여학생들과 몇 번 먹은 외에는 이 집에 거의 출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십 후반이 되어서야 진정한 경인면옥의 냉면 맛을 알았다. 함 씨 어른이 돌아가시고 그 부인 되시는 할머니가 도맡아 하실 때였다. 이 무렵은 내 질풍노도의 음주 시대였다. 음주 다음 날이면 꼭 오전 11시쯤 찾아가서 냉면으로 속을 풀었다. 그때 비로소 냉면 참맛을 알았다. 육수의 시원함, 뚝뚝하고 담백하게 씹히는 면발의 맛, 그리고 먹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지는 상쾌함! 먹기 전에 식탁 위에 따라 주는 더운 육수는 또 얼마나 정다운가. 이 육수야말로 양지머리 따위를 고아낸 진육수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최고 일품이다. 이 육수는 미리 두어 컵 마셔서 속을 달랜 다음 냉면을 먹는 것이다.

이 경인면옥 할머니마저 가시고, 식당을 관장하던 며느리도 떠난 뒤 서너 해 전, 몇 살 연상 그 남편 함원봉 사장마저 돌아가 어언 2대가 지났다. 지금은 손자 부부가 3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한다.

요 얼마 전 영하 11도이던 날, 냉면을 먹으러 갔더니 손주며느리가 냉면 육수만큼 청량하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할머니 생각도 난다. 할머니는 냉면을 좋아하는 나를 당신 자식만큼이나 귀여워해 주셨다. 특히 냉면에 고춧가루를 넣어 먹는 내게 고향이 평양이냐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답동관 광고 ©평화일보 1948. 3. 3.

답동관 광고 ©평화일보 1948. 3. 3.

문을 닫은 지 벌써 30년도 더 지난 해장국집 답동관은 말 그대로 추억 속에만 남았다. 신포시장 두 번째 길에서 신포국제시장 사무실이 있는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서 끝 쪽에 있었다. 쇠뼈와 배추 우거지를 밤새 끓여 뜨거운 토장국에 한가득 뚝배기에 내놓는 구수하고 목구멍에 부드러운 국이 이 집의 대표 메뉴였다. 동갑내기 인정 많은 유 씨 처녀가 가난한 예술인들에게, 자기 아버지 몰래 한 뚝배기씩 보시를 하기도 했었다. 미식가이시던 고 신태범(愼兌範) 박사의 저서 『우리 맛 탐험』에도 “지금은 평양옥이 대표적인 해장국집이지만, 당시에는 최근까지 3대를 이어 영업하던 신포시장 답동관이 유명했다”는 구절이 그 증명이다.

신흥동 평양옥 주방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신흥동 평양옥 주방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지금도 건재한 노포 신흥동 평양옥은 쇠불갈비와 해장국이 유명하다. 그중 해장국은 서울서 이따금 내려오는 친지들에게 한 끼쯤 추천할 만한 인천의 대표 토속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입안에서 얌전히 녹는 배추 우거지와 흠씬 무른 뼈에 붙은 살코기와 구수하고 담백한 토장국이 어우러져 내는 맛은 노소 누구의 미각도 사로잡는다. 1960년대부터 드나들었으니 대략 60년은 넘을 듯하다. 한 가지, 과거에는 이 집 평양냉면도 시원한 육수와 진품 면발로 크게 명성을 떨쳤다.

신생동 신성루 ⓒ김보섭

신생동 신성루 ⓒ김보섭

짜장면의 탄생지 인천에 남은 중국집 노포는 그나마 몇 집 안 된다. 자주 다니던 신생동 신성루가 고맙게도 여전히 남아 성업하고 있어 반갑다. 1963년 2월, 중학 졸업식 날, 인천여중 동급생들과 마치 인생을 졸업이나 하는 듯, 건방지게 백알 한 잔씩을 곁들여 그 진품 짜장면을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이 집은 지금도 유니짜장의 명소이다.

숭의동 로터리, 무슨 건강검진센터가 있던 골목 안쪽의 춘천막국수집은 거무튀튀한 빛깔의 면발 막국수를 내놓던 집이었다. 맑고 정결한 맛을 바라는 속 조용한 사람들이 찾던 아주 착한 집이었는데 근래에 문을 닫았다. 맛은 냉면보다 거친 듯, 덜 예의 바른 듯했지만, 그 반대로 사람의 입맛을 들뜨지 않고, 건방지지 않게 하는 데 딱 맞는 온건한 메밀국수 집이었다. 주인의 소박하고 넉넉함, 다정함도 그랬다. 이 집이 대를 잇지 못한 것이 사뭇 안타깝다.

중앙동 명월집 ⓒ김보섭

중앙동 명월집 ⓒ김보섭

백반집으로 미식가 신태범(愼兌範) 박사께서도 생전에 신포동 동사무소 뒤쪽 옛 한진식당과 함께 꼽으시던 중앙동 명월집의 백반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삼백육십오일 변함없이 끓여내는 묵은김치 찌개와 대표 반찬 메뉴 계란말이와 가지가지 우리들 어머니께서 밥상에 올리시던 옛 맛 반찬들이 대할 때마다 가슴을 흔든다. 아무리 지금이 맛의 세계화, 맛의 퓨전 시대라 해도, 이 집에서만은 한국 토착 백반 맛의 정체를 그대로 고스란히 확인하게 해 준다고나 할까.

화수동 서울식당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화수동 서울식당 ⓒ김윤식 ‘인천의 향토음식’

이외에 아직 남아 있는, 그 맛이 여전히 혀끝에 살아 있는, 오랜 단골집들이라면 사동의 족탕집 선미정, 송림동 동구청 지나 시장 끝머리쯤의 설렁탕집, 배다리 복매운탕 집 송미정, 화수동 포구 저 안쪽의 복탕과 서대기매운탕을 끓이는 서울식당, 남구 용현동 성진물텀벙이집, 부영선짓국집, 주안의 옹진면옥, 오징어 매운 찌개를 끓여내는 8부두 앞의 황성식당 등등이다.

김윤식

김윤식(金允植, Kim Yoon Sik)

1947년 인천 출생.
시인(현대문학 추천 등단)
전 인천광역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