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인터뷰-유쾌한 소통 2>
인천문화통신3.0은 2020년 9월부터 지역 문화예술계 · 시민과 인천문화재단과의 소통을 위해 <유쾌한 소통>이라는 이름의 기획 인터뷰 자리를 마련하였다.
매달 2개의 인터뷰 기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시민과 예술인들을 만나고 있다.

“차가운 뒤집기. 신용진 작가의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

김재은

신용진

신용진(申龍振, Shin, Yong-jin, b.1991~ )

인천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졸업 및 동대학원 미술학과 수료

개인전
2024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 공간불모지, 인천
2023 563, 온드림소사이어티, 서울외 다수

그룹전
2023 인공청년, 공간불모지, 인천
2023 CV: 부산, 안녕, 예술가, 부산
2023 10, 100, 아트스페이스 인, 인천외 다수

프로젝트
2023 만남, 재탄생, 포레스트 아웃팅스(클래식×미술 축제), 인천외 다수

기획
2022 김용권 작가 개인전, 심방의 말(공간 운솔, 인천)

수상
2023 현대차정몽구재단 Onso Artist 선정 작가

작년 12월 신용진 작가의 논문이 석사학위 심사에서 최종 탈락하며, 해당 미술학과에 유례없는 일이 일어났다. 논문의 탈락 이유는 구어체로 작성된 논문 형식과 작성 과정에서 발생한 담당 교수와의 작은 오해와 마찰이었는데, 오해와 마찰이 해결되었음에도 논문이 통과되지 못하였음에 작가는 다시 논문을 재점검하기 전 본인만의 언어와 표현으로 완성되어 어찌 되었든 세상에 나온 이 논문을 새롭게 제시하여 외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논문이 글이고 사람들이 읽어서 소비하는 형태였다면, 세상에 나오길 거부당한 논문에 조형성을 입혀 읽는 것이 아닌 시각적이고 물리적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는 조형작품으로 제시하면 어떨까라고 생각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소위 멘붕이 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신용진 작가는 차가운 뒤집기를 시도했다. 2024.01.27~02.11 인천 연수동 공간 불모지에서 신용진 작가의 개인전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_ No X Thesis>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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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진 작가는 인천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데뷔 4년 차의 시각예술작가이다. 작가는 동양철학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이치가 작가 본인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고하는 과정과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작가는 ‘허와 실’의 필연적 공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가령 우리가 세상에 쓸모없다고 혹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허수의 것들이 존재하기에 대체로 가치 있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실질적인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전시에서 작가의 판단과 개입을 통해 만들어진 핵심 ‘작품’만을 전시하여 세상에 내어놓지만, 작가는 앞서 진행한 전시들을 통해 그 바깥의 것들. 핵심적인 것들이 있기 위해 존재했지만 작품으로 포함되지 않은 것들을 조명하고 이를 다시 조형화하여 제시하는 작업들을 진행했다. 이러한 점에서 작가가 그동안 바라보고 뒤집어 제시했던 것들과 논문을 글이 아닌 조형작품으로 바라보기는 어떻게 보면 쓸모없어진 것들을 새롭게 해석하여 제시했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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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다양한 조형의 언어로 표현되었는데, 전시장 가운데에 놓인 데스크 위 노트북에서는 신용진 작가의 목소리와 언어를 학습한 AI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 논문을 읽으며 공간 불모지를 채우고 그 앞 프린트기에서는 읽을 수 없는 논문들이 출력되어 흩뿌려져 우연한 조형성을 쌓아가고 있었다. 이는 논문이 더 이상 언어로 읽히고 소비될 수 없는 논문이 제3의 존재에 의해 다른 감각으로 소비될 수 있도록 해놓은 장치이다. 계속해서 쌓여가는 읽을 수 없는 종이 논문들과 AI에 의해 완전히 인간의 언어로 감각하기 힘들어 듣다가 놓쳐 인지할 수 없이 전시의 BGM으로 쓰여버리는 소리 논문은 한때는 작가의 아픔이었겠지만 관람자들에게는 쌓이고 겹칠수록 흥미로운 지점이 생기는 시청각 조형물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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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작가는 철골구조인 아시바에 현수막 개첩의 형식을 차용하여 중첩된 논문의 페이지들을 제시하였는데, 손에 들어 펼쳐 넘겨보는 논문의 형식을 완전히 파괴하고 중첩된 글자들이 더 이상 글자로의 역할이 아닌 이미지로 전환되어 관람객들에게 커다란 페인팅을 마주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선사했다. 이번 전시의 시작과 과정을 모르고 처음 전시장을 접했을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들에게 이 작품이야말로 시각 작품으로써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색화일까? 추상화인가? 싶다가도 그림이 아닌 프린트네? 하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며 글자의 중첩이었음을 알아차렸던 관람자였던 필자도 가장 오래 발길을 멈춘 작품이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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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프린트가 주는 물리적 압도감과 시크함이 주는 흥미로움도 있지만, 전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 것들은 작가가 논문 크기를 그대로 옮겨와 페이지들을 겹쳐 만든 액자 작품들이었는데. 작가는 프린트라는 것이 결국 판화적인 개념과 같다고 생각하여 판화작품처럼 논문을 제시한 작품들이었다. 앞서 작품들을 통해 작품에 비치는 글자를 읽지 않고 조형적인 이미지로 바라보기에 학습이 되어있었기에 액자에 담긴 작품들은 하나하나 드로잉처럼 보였다. 논문의 페이지별로 다른 글자의 배치, 사진 이미지들의 중첩이 정말 드로잉 작품에서 찾아지고 보이는 점, 선, 면의 기본적인 조형요소를 담고 있음에 흥미롭게 보였고, 비로소 <이것은 논문이 아니다>라는 전시 제목을 관람자로서 온전히 이해하고 완성할 수 있었다.

수년의 미학적 연구의 진액를 담았을 논문 탈락이라는 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차갑게 바라보고 세상에 나와 읽힐 수 없는 글자를 조형화하는 것으로 뒤집어버린 신용진 작가의 도전. 그 덕에 관람자들은 양질의 전시를 관람하며 조형언어에 대한 새로운 바라보기와 사고를 할 수 있었음에, 그의 논문 탈락은 성공적이었다. 이는 작가가 가진 허와 실의 필연적인 공존 결국 그 사상을 관통하는 ‘필요 없는 존재는 없다.’ 나아가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전달하며 마무리되었음에 논문으로 통과되었을 때 글자로 마주했을 그 내용들보다 더욱 파급력 있고 좋은 제시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김재은

인터뷰 진행/글 김재은

공간불모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