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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의 나를 꺼내어 대화를 시도하는 작업,

<나의 사춘기, 송림동 달동네> 최정숙 작가 인터뷰

권근영

최정숙 작가

최정숙 작가 ⓒ최정숙

최정숙X권근영

권근영: 작가님 안녕하세요. 개인전 오픈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네요. 작업실에서 작업하시다가 이제는 우리미술관에서 작품으로 관람객과 만나고 있는데, 어떠세요?

최정숙: 작업실에서 작업할 때는 몰입하니까 자기가 잘 안 보여요. 그냥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들어요. 그게 불확실성이에요.

어느 시점에 붓을 떼느냐, 그게 가장 관건이지요. 100호 이상의 작품을 할 때는 밸런스가 맞아야 하잖아요. 위와 아래, 왼쪽과 오른쪽. 한쪽에 너무 집중을 하면, 또 한쪽이 기울 수 있거든요. 계속 고민해요. 중간 과정의 작업과 마무리된 작품은 전혀 다른 느낌을 주거든요. 진행을 더 하다가, 이전이 더 좋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너무 욕심을 과하게 했나? 후회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런 모든 것까지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붓을 떼지 못한 건 자신이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굉장히 좋은 작업이 나오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이 작가가 성실히 했느냐 안 했느냐는 작업을 보면 알잖아요.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해주는 피드백을 들으며, 타자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봐요. 요즘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권근영: 지난번에 왔을 때 관람객 한 분이 이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는 걸 봤어요. 그림에 달은 없지만 집집마다 달을 품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최정숙: 달을 꼭 그려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구름 속에 달이 있을 수도 있고요. 빛을 느끼는 거죠. 차가운 달빛도 있고, 은총을 받는 느낌의 달빛도 있고. 다양하잖아요. 어떤 분은 고단한 느낌이 난다고도 했어요.

작가는 실재를 그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상징성이 더 중요하죠. 이 그림에는 어스름한 여명이 오는 느낌을 내보이고 싶어서 분홍빛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작가는 작품에 이유가 없는 색은 사용하지 않아요. 봄에 벚꽃은 따뜻한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잖아요. 그러한 색과 감정이 달동네에 깃들기를 바랐어요.

24년 3월 현장 이미지2

수도국산 고개길, 79×4, Mixed Medium,
Acrylic On Canvas, 2024
ⓒ우리미술관

제 그림에 등장하는 교회는 구원의 상징이에요. 달동네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잖아요.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죠.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으면 힘든 고난을 어떻게 헤쳐나가겠어요. 그런 상징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작품을 전시장에 갖다 놓으면 그다음에는 관람자가 보는 눈이 제일 정확하다고 봐요. 작품을 보면서 자신의 삶에 숨겨져 있는 스토리, 상처, 행복과 같은 것들을 작품과 오버랩하면서 결국은 관람객이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인 거죠. 관람객이 작품을 통과해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권근영: 작품에 담겨 있는 스토리도 궁금한데요, 사용한 재료도 궁금하고요.

최정숙: 여기는 제가 살았던 집이에요. 쭉 올라가면 수도국산이에요. 샛길로 193. 건국유업 망이 있더라고요. 노란 통제구역 딱지가 붙어 있고. 우리미술관 한 켠에 전시된 영상에서는 실제 살았던 집을 찾아가지만, 그림을 리얼리티로 그리지는 않았어요.

이 그림에는 천이 있어요. 엄마가 만든 베갯잇이에요. 박음질 해서 이은 흔적이 있죠. 엄마가 시집올 때 갖고 왔던 이불보, 베갯잇, 천 등을 저에게 줬어요. 그림 그리면서 걸레로 쓰라고요. 휴지는 아깝잖아요. 어릴 때 살아온 습관이 배어 있어서, 쓰던 행주를 작업실에 가져와 빨아서 쓰고 그랬죠.

근데 엄마가 주신 걸 걸레로 못 쓰겠더라고요. 어릴 때 엄마랑 광목 이불에 풀 먹이고, 방망이질했어요. 이리 접고, 저리 접고 하던 그런 기억이 있어요. 이불보라는 게 여성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와 나의 삶이었죠.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잖아요. 걸레로 쓰라고 줬지만, 차마 못 쓰고, 그래서 작품에 콜라주 했어요.

이런 연장선상에서 저는 물건이 다시 사용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인테리어 하는 곳에서 제공하는 천 샘플 있잖아요. 어디선가 생겼어요. 아까워서 작업실에 뒀다가 언제 쓸 지 몰랐는데, 이번 작업에 사용하게 되었어요.

권근영: 천과 골판지를 오려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른 집을 그리셨네요. 작은 캔버스에 담긴 작품들은 환하고, 반짝여요.

최정숙: 한 달 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수도국산 달동네 스케치를 하면서 똑같이 그리는 건 재미가 없더라고요. 작은 캔버스 안에 집을 담고 싶었어요. 어린아이들은 그림 그릴 때 집부터 그리잖아요. 집, 엄마, 아빠, 꽃, 새. 송림동 달동네를 떠올렸을 때 가족과 집이 떠올랐어요. 둥지. 바람을 피하고, 비를 피하고, 머물고, 자는 곳. 그러면서도 밝고 행복한 집을 그리고 싶었어요.

송림동 작업 이전에는 백령도 평화 미술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백령도에 할머니 집이 없어지면서 그 동네와 집을 그렸었거든요. 집을 그린다는 게 제 안에서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전부터 사용해온 재료들이 연결되기도 하고요. 직조물에 반짝이는 게 들어 있었어요. 밤하늘의 달도 은하수도 마을에 온통 내려서 그 빛을 반짝이는 돌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제가 어릴 땐 송림동에서 밤만 경험했어요. 아침에 일찍 학교 나가고, 도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아주 밤늦게 집에 들어가고. 그러니까 저에게 송림동은 밤뿐인 거예요. 사춘기 소녀에게 집은 항상 밤이었던 거죠. 이번 작업은 사춘기 시절의 나를 꺼내어 치유해주는 작업이기도 해요. 나하고의 대화인 거죠.

24년 3월 현장이미지3

송림동 달빛, 53×45.5, Mixed Medium,
Acrylic On Canvas, 2024
ⓒ우리미술관

권근영: 사춘기 시절의 나를 꺼내어 대화를 시도하는 작업,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최정숙: 송림동에서 살았던 나의 역사를, 일기를 쓰고 싶더라고요. 살아보니까 누구에게나 희로애락이 있는 것 같아요. 아픔 속에서도 이겨낼 힘이 생기기도 하고요. 저는 중학교 선생님 덕분에 사춘기 때 고통을 이겨내고 힘을 낼 수 있었어요. 꿈을 꾸게 해주셨죠.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여자도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을 해줬어요. 선생님 자신도 학생을 가르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공부를 계속해 나가셨어요. 여성의 삶에 대해 실천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셨죠. 저에게 사고를 확장해 주고 깨우쳐주는 롤모델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이, 끝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내 속에서 뭐를 더 끌어낼 수 있을지 그건 더 가봐야 알게 될 것 같아요. 제가 뭘 해낼지 모르는 거죠. 백령도 평화 미술 프로젝트를 하기 이전과 이후가 달라졌듯이, 송림동 달동네 작업을 통해 제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어요.

권근영: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최정숙: 이번 작업을 하면서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작업 생각하느라 잠이 안 오니까, 생활에 필수적인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작업에 쏟았어요. 외부 활동은 하지 않고요. 그러다가 하나가 풀리니까 다음으로 이어지고, 또 다음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하나씩 작품을 만들다 보니 40여 점을 그릴 수 있었죠.

작가는 자기 삶을 살고, 자기 일을 하는 거라는 생각을 해요. 결국은 나를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작업이라는 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자기를 해결하는 거 같아요. 작업의 주제를 바꾼다고 갑자기 변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가고 싶어요.

권근영

권근영(權根英, Kuon GunYoung)

글을 쓰고 연극을 한다. 답사, 구술, 증언 등의 채집 활동을 통해 감각하는 것들을 언어화, 무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송림1동 181번지에서 살았던 인물들을 인터뷰하여 인천in에 연재하였으며, <강화도 산책: 평화 도큐먼트>, <터무늬 있는 연극> 시리즈, <어느 여성 노동자의 길>, <극장을 팝니다>, <기후비상사태: 리허설> 등의 창작활동을 했다.

2014년~현재 15분연극제 기획, 대표
2022년 제15회 우현예술상 수상 <극장을 팝니다>
2021년 인천in 기획연재 <송림1동 181번지> 감사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