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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정우신
이름: 정우신 (鄭佑信, Jeong Wooshin)
출생: 1984년
분야: 시
인천과의 관계: 인천에서 출생과 생활
작가정보: 인스타그램
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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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 |
2016년 | 《현대문학》시 등단 |
2018년 | 시집 『비금속 소년』 발간 (파란) |
2021년 | 시집 『홍콩 정원』 발간 (현대문학) |
2022년 | 시집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발간 (아시아) |
2023년 |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
2020~현재 | 《파란》편집위원 |
2022~현재 | 인천작가회의 시 분과장 |
1.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품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대표작의 개념이 독자가 사랑하여 주는 작품일 수도 있을 것이고 제가 나름 애정을 갖는 작품일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대표작을 아직 쓰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나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 처럼 백 년이 지나도 우리의 유전자 어딘가를 떠도는, 삶에 진동을 발생시키는 작품을 쓰고 싶습니다. ‘진달래꽃’을 보면 그 당시의 향기와 분위기가 우리 앞에 되살아나듯, ‘침묵’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앞에 놓인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 대표작이라고 생각됩니다. 시집 한 권이 대표작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불가능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몇 편의 작품이 떠오르는데요, 첫 시집 『비금속 소년』에 엮인 몇 편의 작품 「풀」 「번식」 「플라즈마」 「생물 시간」 「비금속 소년」과 두 번째 시집 『홍콩 정원』의 ‘리플리컨트’ 연작, 세 번째 시집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에 녹아든 ‘당신’과 ‘산책길’에서 그 가능성의 씨앗을 봅니다. 올바른 실패. 잘 실패하였기 때문에 다음을 꿈꿀 수 있게 해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첫 시집 『비금속 소년』 ⓒ파란
두 번째 시집 『홍콩 정원』 ⓒ현대문학
세 번째 시집 『내가 가진 산책길을 다 줄게』 ⓒ아시아
2.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삶으로부터 축적된 무언가를 덜어내고 싶을 때 산책하곤 합니다. 공원을 걷는 것도 좋아하고 목적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무 약속 없이 무작정 걷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래도 목적 없이 걷는 일은 행복합니다. 물론 그것들이 바로 시로 변환되지 않습니다. 시가 되지 않는 순간이 누적되다 보면 어떤 감정이 털 뭉치처럼 모이게 됩니다. 저는 그것을 언어의 공간에 재배치하여 봅니다.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뽑아보기도 하고 다시 작게 뭉치거나 끊어보기도 합니다. 작품을 쓰다가 막히면 다시 속도를 높인 산책을 합니다. 달리기하거나, 기차를 타며 일상의 풍경을 바꿔봅니다. 평소와 다른 속도에 들어가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꿈틀거리는 것이 잘 느껴집니다. 기다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두 발이 멈칫할 때, 낡은 골목의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며 나보다 빨리 길목을 지나칠 때, 꿈인지 꿈이 아닌지 모를 사건을 경험할 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종종 영감 비슷한 것들이 찾아오는 듯합니다. 혼자이면서도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골목길 산책 ©정우신
연희공원 산책 ©정우신
3.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시인(詩人)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현대문학을 하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작가보단 시인이 되고 싶고 사업가나 기술자보단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어떤 부사와 형용사 없이 시인으로 남고 싶어요. 시인이 되기 위해선 불안과 고통이 늘 동반될 것 같습니다. 흔쾌히 저의 몸을 열어주고 그들과 동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가 열어둔 언어의 뒷문으로 누군가 찾아와 준다면 기쁘게 차를 한 잔 내주고 싶습니다.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면 더욱 좋겠지만 시를 사랑하며 삶을 살아간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좋은 시를 썼던 사람보단 쓰고 있는 사람 혹은 ‘쓸’사람으로 되고 싶습니다. 작품활동을 떠나서 시인이 되는 것은 힘겹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열릴 터널들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합니다. 마지막 터널을 지나면 마주칠 무(無)의 꽃을 훔치고 싶습니다. 사람이나 생활에 무너지지 않고 저만의 고독을 잘 가꾸어 언어로 바꾸어야 할 듯합니다. 아무에게나 보이진 않지만, 누군가는 기어코 열어보는 언어 속에 잠들고 싶습니다.
4. 앞으로의 작업 방향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인천은 구도심과 국제도시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바꿔서 이야기하면 전통과 현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이 한데 녹아있습니다.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에서 낡은 것을 찾기에 가장 훌륭한 도시가 인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주안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숭의동에서 자랐고 초등학교부터는 가정동 일대에서 지냈습니다. 인천항, 공구상가, 야구장, 시장, 목재단지, 공장 등이 떠오릅니다. 현재 새로운 건물로 가득 찬 곳곳의 공터가 오랜 놀이터였습니다. 공터를 돌던 바람과 웃음소리를 찾을 수 없지만, 함께 늙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제가 지나온 그 모든 곳이 소중한 공간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인천역부터 부개역까지 1호선 일대의 골목들과 송도와 청라의 블록처럼 놓인 건물들, 그 두 가지 길을 경유하다 보면 앞으로 써야 할 이야기들이 떠오르는 듯합니다. 공항과 항구가 자아내는 분위기도 매번 다른 것 같아 흥미롭습니다. 첫 시집 『비금속 소년』을 썼을 당시에는 송림동 주변과 현대제철이 자리한 북항 주변을 자주 맴돌았습니다. 이곳으로 사람이 올까. 사람이 떠날까. 왜 올까. 왜 갈까. 오고 가는 사람들에 대해 오랜 생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었던 장소로 기억됩니다.
인천 생활문화센터 칠통마당 걸개 시 ⓒ정우신
5. 앞으로의 활동 방향(작업방향 포함)과 계획에 대해 말해 달라.
올해 네 번째 시집이 나오는데요, 행과 연에 신경을 써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여백에도 색감과 형태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데에 애를 썼습니다. 우리의 눈에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듯이 시어와 시어 사이, 행과 연 사이에도 그런 것들이 안개처럼 흐르고 있다는 상상을 하였습니다. 결국 그 이름 붙일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의 생활과 정신을 간섭하고 있다는 가정을 하여 보았습니다. 거기서 움튼 미생물들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탐닉하는 것은 ‘언어’ 그 자체입니다. 언어의 비밀을 풀고 싶습니다. 언어가 가진 이중성―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지시하는 동시에 지시되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언어로부터 비롯되는 시공간, 행간, 감각 등을 잘 표현하고 싶습니다. 저만의 시적 언어 형성을 위한 생활을 이어 나가야겠지요. 초심으로 돌아가서 다시 다음 시집을 위해 열심히 원고를 써야 할 듯합니다.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해야 할 듯합니다.